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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원 “주호영 직무 정지”…혼돈의 여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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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30면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주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뉴스1]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주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뉴스1]

서울남부지법, 이준석 가처분신청 인용

“정당민주주의 반한다”며 비상상황 부인

‘한국정치의 실패’‘정치의 사법화’ 지적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이준석 전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사실상 받아들였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는 어제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직무집행을 본안 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전국위 의결로 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주호영이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할 경우 당원권 정지 기간이 도과되더라도(지나더라도) 이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없게 돼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특히 “일부 최고위원들이 당 대표 및 최고위원회의 등 국민의힘 지도체제의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는  정당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사실상 ‘6개월 당원권이 정지된 이준석 체제’로의 복귀 결정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에 반발, 이의신청했다.

갈등 상황을 수습해가던 국민의힘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됐다. 어제 국회의원 연찬회 후에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민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당내 갈등으로 심려만 끼쳤다”며 새 출발 의지를 다졌는데 참으로 면구하게 됐다. 당장 지도부에 ‘공백’이 생겼다. 주호영 위원장만이 아니라 주 위원장이 구성한 비대위 효력도 문제가 돼서다. 국민의힘에선 위원장만 정지 상태라고 주장하지만, 법조계에선 비대위의 근거가 사라졌다고 본다. 비대위를 다시 둘 수 있는지도 모호하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다시 직무대행을 맡는 체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최고위원회의(9명)는 사실상 와해상태다. 당연직인 원내대표·정책위의장 외에 비대위 전환에 반대했던 김용태 청년최고위원 정도가 있는데, 이들만으론 의결정족수(재적 과반-출석 과반)를 채우는 게 불가능하다. 당무에 관한 어떤 의결도 못 한다는 얘기다. 재판부가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이번 판결로 ‘비상 상황’이 된 셈이다.

이런 혼란의 1차적 책임은 이 전 대표의 징계를 주도한 세력, 즉 일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정치적 무능함에 있다고 본다. 이 전 대표가 집권여당 대표다운 책임감과 포용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건 분명하다. 자신의 측근을 보내 성 접대 의혹 무마와 관련, 7억원 투자 각서를 써준 것으로 윤리위 징계도 받았다. 그렇더라도 이 전 대표를 몰아내는 과정은 거칠었고 결국 이 전 대표에게 법적 대응을 할 명분을 줬다. 급기야 재판부로부터 “정당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질타까지 들었다. 당사자들은 진정 자숙해야 한다.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혼란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당무 불개입’ 원칙만 되뇔 게 아니라, 해결 의지를 갖고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이번 판결로 이 전 대표는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얻은 승리라는 점에서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 또한 남겼다. 이번 소동의 과정에서 2030을 중심으로 한 지지자들 외엔 그를 두둔하는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이번 사태가 유감스러운 건 비단 국민의힘 내분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가 극적으로 실패한 모습”(금태섭 전 의원)이란 점에 있다.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를 법으로 풀면서 생긴 아노미다. 재판부는 ‘비대위원회 설치와 관련,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사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 비대위 설치를 허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 정당들은 비대위 전환도 법원의 눈치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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