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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도시락, 오마카세 순례…자산 격차 큰 MZ세대 씀씀이도 극과 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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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호 02면

MZ세대 소비와 투자 풍속도 

지난 23일 저녁 서울 강남구의 한 일식집에서 셰프가 스시 오마카세(맡김 차림)를 준비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지난 23일 저녁 서울 강남구의 한 일식집에서 셰프가 스시 오마카세(맡김 차림)를 준비하고 있다. 윤혜인 기자

#“짠테크 2년 차입니다” 직장인 강하은(29·가명)씨는 지난해 3월부터 짠테크를 시작했다. 짠테크는 인색하다는 뜻의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소비를 줄이고 돈을 모아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씨는 월 용돈 30만원으로 식비·교통비·문화생활비·미용·의류비를 해결한다. 데이트 비용과 경조사비는 별도로 금액을 정해 빼둔다. 나머지 월급은 분산해 투자하거나 저금한다.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고 있고, 재택근무일이 많아 식비와 교통비가 적게 든 덕분이다. 강씨는 “약속이 있을 땐 돈을 안 아끼지만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고, 회사에서 통신비가 지원돼 조금 빠듯해도 할만하다”고 밝혔다.

#직장인 김민지(31·가명)씨는 최근 고급 코스 요리를 먹는 재미에 빠졌다. 최근 두 달간 찾은 오마카세(맡김 차림) 식당만 10곳이다. 가격대는 5만원 안팎부터 20만원대까지 이른다. 오마카세는 ‘맡기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주방장에게 모든 음식을 맡긴다는 의미다. 김씨는 “단순히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취미라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도, 크게 부담되지도 않는다”며 “유명 오마카세 식당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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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내 소비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짠테크 열풍과 명품·프리미엄 상품을 향한 열망이 공존한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를 맞아 짠테크를 시작한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경기 침체로 짠테크를 시작한 20·30대가 많아졌다”며 “특히 젊은 세대는 검색 능력이 뛰어난 만큼 할인율이 높은 방법을 쉽게 찾고, 앱테크를 적극 활용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MZ세대는 명품·프리미엄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했다.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가의 상품에 아낌없이 돈을 쓰기도 하는 MZ세대 소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월 최소 생활비로 소비 통제, 할인 방법 공유
짠테크에 돌입한 청년들은 월 최소 생활비를 정해 소비를 통제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짠테크를 시작한 직장인 이모(25)씨의 월 생활비는 50만원. 서울 거주 1인 가구의 식비 부담을 고려한 하한선이다. 식비·교통비·미용비·교육비·경조사비 등 일상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소비를 생활비로 해결한다. 이씨는 “작고 소중한 월급을 마주하다 보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짠테크를 시작했다”며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단 10원도 소중히 쓰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계부를 공개하는 등 이행 과정도 공유한다. 자신의 소비를 돌아보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금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다. 강씨는 인스타그램(계정명 ‘재탴러 곰람쥐’)에 하루 소비 내역, 월 결산 등을 올리고 있다. 각종 포인트 및 할인 쿠폰 활용법도 공유한다. 심지어 하루 지출액 0원을 인증하는 ‘무지출 챌린지’도 확산하고 있다. 종합커뮤니케이션그룹 KPR 부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소비 행태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무지출’ ‘무소비’ 언급량은 지난해 하반기 1만1364건에서 올해 상반기 1만4819건으로 30% 증가했다.

적은 금액이라도 아낄 수 있거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앱테크가 대표적이다. 푼돈 모으기 취급을 받았던 앱테크는 최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앱테크는 앱 내 출석체크·퀴즈풀이·이벤트 등을 활용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 및 적립금을 모으는 재테크 방법이다. 강씨가 앱테크에 활용하는 앱은 40개에 달한다. 그는 “금액에 집착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하면 30분도 걸리지 않는다”며 “결제 시 포인트를 현금처럼 활용할 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출석체크 방식을 선호하는 이씨는 17개 앱을 활용하고 있다. 이씨는 인스타그램(계정명 ‘재테크하는 돈실먼지’)에 참여하고 있는 앱테크 목록을 정리해 짠테크 중인 팔로워들의 참여도 독려하고 있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물가 상승으로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하며 식비를 줄이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청년도 증가했다. 월 구독료를 내고 할인가에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편의점 구독 서비스 이용자가 늘어난 게 대표적이다. 지난 7월 이마트24의 구독 서비스 이용은 전월 대비 135% 증가했다. 이용자의 절반(49%)이 20·30대다. 편의점 간편식 매출도 올랐다. 이달 들어 도시락 매출은 GS25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42.5%(20일까지), 세븐일레븐은 40%(23일까지)나 상승했다.

9960원에 구매한 계란·애호박·콩나물·두부 등 4가지 식재료로 계란 장과 말이, 애호박 전과 무침, 콩나물 무침과 볶음, 두부조림까지 총 7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2시간 30분 동안 만든 반찬은 사흘간 6끼에 걸쳐 먹을 수 있었다. 윤혜인 기자

9960원에 구매한 계란·애호박·콩나물·두부 등 4가지 식재료로 계란 장과 말이, 애호박 전과 무침, 콩나물 무침과 볶음, 두부조림까지 총 7가지 반찬을 만들었다. 2시간 30분 동안 만든 반찬은 사흘간 6끼에 걸쳐 먹을 수 있었다. 윤혜인 기자

온라인에서 ‘n만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 콘텐트도 인기다. 저렴하게 구입한 몇 가지 식재료로 다양한 밑반찬을 만들 수 있어서다. 기자는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참고해 반찬을 만들어봤다. 9960원으로 계란·애호박·콩나물·두부 등 4가지 식재료를 구매했다. 계란 장과 말이, 애호박 전과 무침, 콩나물 무침과 볶음, 두부조림까지 총 7가지 반찬을 만들 수 있었다. 만드는 데 2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반찬은 사흘간 6끼에 걸쳐 먹을 수 있었다. 식재료를 나눠서 요리하면 더 오래 먹을 수도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식비를 확실히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백화점 명품 매출의 절반은 MZ세대가 차지
일부 MZ세대가 절약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명품·프리미엄 시장은 MZ세대의 구매력에 주목하고 있다. 취향에 맞는 제품에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고,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소비 성향 때문이다. SNS 인증샷도 촉매제 역할을 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오마카세가 대표적이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오마카세 게시물은 53만개에 달한다. 가격대가 일반 음식점 단일 메뉴의 몇 배, 몇십 배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힘들 정도로 인기다. 일부 식당 예약은 한 달 전에 마감된다. 지난 23일 압구정역 부근 한 스시 오마카세 관계자는 “이미 지난 1일에 9월 예약이 마감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스시 오마카세를 운영하는 한완희 오너셰프는 “최근 20·30대 고객이 확실히 많아졌다”며 “오마카세 식당이 많이 생겼지만, 수요가 많아 웬만큼 인지도 있는 식당은 거의 만석”이라고 밝혔다.

서울 시내 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이 명품 브랜드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이 명품 브랜드 매장 오픈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국내 명품 브랜드 사이에서도 MZ세대는 큰손이다. 지난해 명품 3대장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를 비롯한 주요 명품 브랜드의 국내 매출은 역대 최고였다. 루이뷔통코리아의 매출은 1조4681억원으로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샤넬코리아와 에르메스의 매출 역시 전년 대비 각각 32%, 26% 올랐다. 2030의 영향이 컸다. 회계법인 삼정KPMG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45.4%, 신세계백화점 50.5%, 현대백화점 48.7% 등 지난해 백화점 명품 매출의 절반을 MZ세대가 이끌었다.

MZ세대 소비 양극화 현상의 원인은 뭘까. 우선 자산 및 소득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30이 가구주인 가구의 자산을 살펴보면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35.27배에 달한다. 근로소득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이들은 고학력이지만, 정규직 일자리와 가처분 소득이 이전 세대보다 적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격차가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일부가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여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미래의 결혼 등을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현재를 즐기는 삶을 사는 것 역시 자산 격차가 초래한 현상이다.

‘극과 극’ 현상은 최근 여름휴가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두드러진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20대 10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휴가 계획이 없다고 답한 이들(25.1%)은 가장 큰 이유로 비용부담(44.4%)을 꼽았다. 반면 휴가를 떠날 것이라 답한 상위 30%의 평균 휴가비는 125만8000원으로 집계됐다. MZ세대의 소비엔 노력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격차가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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