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또다시 지도부 공백 위기에 직면했다. 26일 법원이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에서 이준석 전 대표의 손을 들어주면서 주호영 비대위 체제가 출범 열흘 만에 좌초위기에 처했다. 당내에선 일단 ‘권성동 비대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돌아가는 방안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에 대한 '당 지도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이 구상의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향후 당 수습 계획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당 전체가 용산 대통령실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권성동 대행'체제의 근거는 “비대위원장 직무는 정지됐지만, 비대위원들의 지위나 비대위 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다수의 해석”(박정하 수석대변인)이라는 당 지도부의 판단이다. 법원이 비대위 수립에 있어 “분명한 절차적 하자는 없다”고 판단한 부분에 무게를 둬 비대위 틀을 유지하고, 주호영 비대위원장만 권성동 원내대표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겠다는 취지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헌·당규에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는 규정이 있다”며 “이를 준용해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다수 전문가와 당 내부 의견”이라고 말했다. 당 법률지원단장인 유상범 의원도 중앙일보 통화에서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형태로 법률 대리인들과 의견을 나눴고 이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대로라면 앞서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던 권 원내대표가 이번에는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여당 원톱에 복귀한다. 당내 '친(親)이준석계'와 '비윤(비 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권성동 책임론'이 가장 큰 변수다.
하지만 원내대표 경선에서 권 원내대표와 대결했고, 상임전국위 등에서 이 전 대표에게도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3선의 조해진 의원은 권 원내대표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일각에서 원내대표 인책사퇴와 신임 원내대표 선출 주장도 있다고 하는데, 현 원내대표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고 노력한 입장”이라며 “집권당이 선거 넉 달 만에 다시 원대선거를 하는 것도 사리가 아니다”라고 썼다. 권 원내대표까지 물러날 경우 당 전체가 패닉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이들이 이런 주장을 편다.
국민의힘 소속 초선 의원도 중앙일보 통화에서 “원내지도부는 별도 선출 과정을 거쳐 뽑았기 때문에 가처분 결과와 관계없이 지도부 지위를 유지한다”며 “정기국회 직전 원내대표 선거를 다시 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위 큰 틀을 유지하려는 당 지도부 움직임에 이날 이 전 대표 측 변호인단은 “과거 4사5입 개헌 때 독재정권과 같은 터무니없는 해석”이라며 “비대위 자체가 무효”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비대위 출범의 근거였던 당헌·당규상의 ‘비상상황’ 자체의 존재 자체를 법원이 부인한 만큼 주 위원장이 임명한 비대위원들도 모두 총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당연직 최고위원인 권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최고위를 다시 구성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럴 경우 기존 최고위원 중 김용태 최고위원 문제가 걸림돌이다. 앞서 비대위 구성 직전 배현진·조수진·윤영석·정미경 최고위원이 자진 사퇴했지만 친이준석계인 김 위원은 사퇴하지 않고 남았다.
향후 국민의힘 사태 수습의 방향타가 될 이른바 '윤심(尹心)'이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대구가 지역구인 주호영 위원장이 가처분 결정 직후 윤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동행한 사실이 알려져 주목된다. 주 위원장이 전할 ‘윤심'의 향배가 향후 지도부 구성에 주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당내 일각에서 힘을 얻던 조기 전당대회 개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전국위 의결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주호영이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당 대표를 선출할 경우 당원권 정지 기간(6개월)이 지나더라도 채권자(이 대표)가 당 대표로 복귀할 수 없게 돼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 전 대표가 징계 종료일인 내년 1월 8일 당 대표에 복귀하는 게 맞다는 취지다.
향후 변수는 국민의힘이 제기한 이의신청과 본안 판결 등 남은 법적 절차다. 또 당 윤리위원회에서 이 전 대표를 제명 등으로 추가 중징계하거나, 이 전 대표를 겨눈 경찰의 성상납 의혹 수사가 속도를 낼 때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는 결정적 증거가 나오면 이 전 대표는 법적 판단과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0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자신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린 당 윤리위원회 결정에 대해선 효력 정지를 요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