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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승리와 친윤의 패배…여권서도 "윤핵관 2선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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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당 민주주의에 반(反)한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의 전 과정을 이렇게 판단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신청한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에 대해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 집행정지를 결정하면서다. 법원의 판단은 내용으로 볼 때 이 전 대표의 ‘100 대 0’ 완승이라는 평가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온다. 반면 비대위 전환을 주도하며 ‘이준석 몰아내기’ 의혹을 받던 ‘친윤(친 윤석열)계’는 일단 ‘법률적’ 명분은 잃게 됐고, ‘정치적’ 명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법원은 비대위 전환의 근거였던 당 ‘비상상황’이라는 판단이 일단 문제라고 봤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으려면 ‘당 대표 궐위 또는 최고위원회의 기능 상실에 준하는 경우’가 발생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 직후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 상태라고 정의했고, 자신은 권한대행이 아닌 직무대행을 맡았다. 비대위 전환을 주도했던 권 원내대표 스스로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는 자충수를 뒀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비상상황의 다른 조건인 ‘최고위 기능 상실’의 경우에도 사실상 친윤계가 자승자박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봤다. 권 원내대표 등은 배현진 최고위원 등 최고위 과반이 사퇴 의사를 표명해 최고위 기능이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일 최고위에 권 원내대표와 배 최고위원 등 4명이 참석해 비대위 전환을 위한 최고위 의결을 했다. ‘기능 상실’을 주장하고는 스스로 최고위 핵심 ‘기능’인 의결을 한 것이다. 법원은 “(최고위) 기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6일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마무리 발언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전반의 과정에 대해 법원은 “(비상상황을 가져올) 외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기보다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셀프 비상상황’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 9일 전국위에서 주호영 위원장을 임명 결의한 부분에 대해선 당헌뿐 아니라 정당법, 헌법까지 거론하며 “위배된다”,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당내 민주주의 문제 이상의 위법, 위헌 문제까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법원 결정은 비대위 전환을 주도한 친윤계에겐 정치적인 치명타다. 정당 민주주의, 절차적 정당성, 정치적 명분 모두 문제가 있다고 법원이 봤기 때문이다. 친윤계와 주 위원장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비대위 전환은 정당 내부의 자율적 의사결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정당 활동의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정도가 지나쳤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 지도부는 이 파국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자칫 책임론의 대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 전 대표는 비대위 전환을 밀어붙인 친윤계의 배후로 윤 대통령을 지목해왔다. 지난달 26일엔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권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노출됐고, 이후 국민의힘은 비대위 전환을 위한 페달을 밟았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직무 정지된 적이 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이 전 대표가 승자의 입장이 됐다.

법원이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한 26일 오후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법원이 국민의힘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 확정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국민의힘을 상대로 제기한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한 26일 오후 주호영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 전 대표는 내년 1월 대표직 복귀 가능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과실도 얻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의 판단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사법부가 정당 민주주의를 위반한 헌법 파괴 행위에 내린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국민의힘은 법원의 결정을 엄중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한동안 정치적인 목소리를 줄이고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예정돼 있던 방송 인터뷰도 취소했다. 경찰 수사와 국민의힘 내부의 여론 등을 고려한 행보로 분석된다.

국민의힘은 혼란 상황에 빠졌다. ‘주호영호’ 비대위는 출범 열흘 만에 좌초 위기다. 주 위원장은 “정당 자치라는 헌법정신을 훼손한 것”이라며 “매우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만나서는 “편향성 있고 이상한 결과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내린 황정수 수석부장판사와 함께 근무한 이력이 있는 한 부장판사는 “황 판사는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고 오히려 안정추구형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상범 의원은 “법원 결정은 비대위원장 직무집행만 정지한 것이어서,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대위는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대위 발족, 비대위원들의 임명도 유효하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법원의 인용 결정문의 핵심은 ‘비상상황이 아니므로 비대위 설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대위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위법”이라는 취지의 가처분 결정 불복 이의신청서를 서울남부지법에 제출했다. 당은 급박한 상황을 고려해 토요일인 27일 의원총회를 열 예정이다. 당 수습 방안이 논의될 예정인데,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권 원내대표의 퇴진 문제가 될 전망이다. 당 내에서도 “권 원내대표의 퇴진 없이 심기일전이나 면모일신, 안정적인 수습이 가능하겠냐”는 여론이 작지 않다. 대통령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윤핵관들이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로 한 관계자가 들어서고 있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주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동취재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실로 한 관계자가 들어서고 있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황정수)는 이날 이준석 전 대표가 당 비대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주 위원장의 직무 집행을 본안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동취재

◇시험대 오른 사법 적극주의=이 전 대표의 정치적 승리와 별도로 법원이 보여준 사법 적극주의적 태도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가처분 심문에 출석하며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금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려는 삼권분립의 위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삼권분립이 설계된 원리대로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달라”고 말했다. 법원은 이날 결정에서 “(정당의) 민주적 내부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규제가 불가피하게 요구된다”며 사실상 이 전 대표의 주장을 수용했다. 이른바 사법 적극주의다.

그러나 사법부가 정당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런 모습에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민의힘의 이의신청 결과에 따라, 본안판결 결과에 따라 또 어떻게 국민의힘이 흔들릴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 대해 금태섭 전 의원은 “한국 정치가 극적으로 실패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당 내부 의사 결정의 정당성 여부를 사법부 판단에 맡긴다는 건 그 정당이 안에서 많이 곪아있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정치의 사법화 문제가 지속하는 데 대한 후폭풍과 역풍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현직 판사는 “정치 실종 혹은 정치의 사법화란 말이 나오지만, 이는 사법으로 정치 문제를 끌고 온 정치권의 책임 아니겠냐. 사법의 영역으로 정치가 오면 정치적 허용의 공간과 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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