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틱톡…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들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이들 기업을 키운 ‘재물신(神)’이 있다는 것.
차이충신(蔡崇信)은 오랜 기간 알리바바 CFO로 지내며 알리바바가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마다 투자자를 유치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세워 '알리의 재물신'으로 불렸다. 그와 비슷하게, 류츠핑(劉熾平) 총재는 대량의 투자를 유치해 텐센트를 지금의 'IT 공룡'으로 만들었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 업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류츠핑을 가리켜 '위대한 비즈니스 분석가'라 말하며 '그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할지 알고 있다'고 호평하기도 있다.
샤오미 회장 레이쥔(雷軍)이 데려온 저우서우쯔(周受資)는 샤오미를 3년 만에 상장시켰으며, 이후 틱톡의 모기업인 바이트댄스의 CFO로 이직, 그곳에서 투자 유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이 투자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중국을 대표하는 IT 기업들도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더한 역경을 겪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에서 ‘재물 삼신(三神)’이라 불리며 칭송받는 이들에 대해 살펴본다.
마윈의 마음을 움직인 ‘알리의 재물신’
차이충신이 알리바바에 끼치는 영향력은 마윈만큼 막강하다. 그 역시 마윈처럼 알리바바의 관리 업무에서 자리를 내줬지만, 아직 그룹 이사회에서 집행부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사내에서는 마윈과 차이충신을 가리켜 ‘알리바바의 영원한 파트너’라 부르기도 한다.
2022년 알리바바 재무보고에 따르면 차이충신은 1.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 알리바바 그룹 CEO인 장융(張勇)을 포함한 고위급 관리직보다 많은 수준이다.
마윈이 알리바바의 대표로 지내며 인재 유치에 한창이던 시절, 그는 타지 사람을 고용할 생각이 없었다. 2018년 여름 다보스 포럼에 참가했을 때 마윈은 상하이 사람은 전문 관리직엔 익숙하지만 혁신과 모험 정신이 부족하고, 대만 사람은 말만 많고 일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윈의 이 같은 생각은 차이충신과 장융 등을 만나며 바뀌게 된다. 차이충신은 ‘홍콩에 살면서 상하이 사투리를 구사할 수 있는 대만인’으로 마윈의 초기 인재 채용 기준에 적합하지 않았다.
1999년 5월, 대만 친구의 추천으로 차이충신은 항저우(杭州)로 건너가 마윈을 만나게 된다. 당시 차이충신은 스웨덴 투자사인 인베스AB(Investor AB)에 다니고 있었다. 알리바바는 아직 법인 등록도 못 한 작은 규모의 회사로 B2B 영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던 때였다.
차이충신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 당시에) 이미 마윈의 비전을 감명 깊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 후, 부인과 함께 두 번째로 마윈을 만났을 때 알리바바에 합류하기로 했다. 합류 이후 차이충신은 알리바바의 회사등기를 도왔다. 또 주주를 정하고 지분을 나누는 등 알리바바가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차이충신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윈이 자신의 약점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특히 마윈은 한배를 탄 직원들과 부를 공유한다는 점에 감동 받았다”고 전했다. 마윈은 차이충신의 ‘참신한 경력’을 높게 평했다. 차이충신은 재무 관리에 능통하면서도 변호사로 일하며 회사 설립과 자금 융통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차이충신이 알리바바에 합류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골드만삭스, 인베스터AB, 싱가폴TDF(Singapore TDF) 등 투자기관으로부터 500만 달러(65억 4550만 원)를 유치했다. 2000년,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사장인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가 마윈을 만나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했을 때도 차이충신이 뒤에 있었다.
손정의는 원래 4000만 달러(523억 7600만 원)를 투자하려고 했으나 추후 3000만 달러(392억 8200만 원)로 내렸다. 그러나 알리바바는 이보다 더 낮은 금액을 요구하며 최종적으로 2000만 달러(261억8400만 원)를 투자했다. 투자금을 낮춘 것은 차이충신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는 한 번에 너무 많은 투자금을 유치할 경우 알리바바의 주식 가치가 희석될 것을 우려, 마윈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충신은 이후 8200만 달러(1074억 3640만 원)의 투자금을 추가 확보해 야후차이나를 인수했다. 이는 알리바바 사업 발전에 전환점이 되었다. 2007년, 홍콩에 상장시킨 데 이어 2014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알리바바가 몸집을 키우자 차이충신은 전략투자팀을 구성해 본격적으로 외부 투자에 나섰다. 치차차(企查查)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알리바바가 투자한 기업은 433곳으로 투자비는 총 8276억 9000만 위안(160조 5801억 3690만 원)에 이른다. 투자를 받아 크게 성장한 만큼, 좋은 기술, 좋은 역량을 가진 기업에 아낌없이 투자해 알리바바만의 ‘투자지도’를 만든 것이다.
수익률보다 가치를 보고 투자한다는 차이충신,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알리바바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마화텅의 ‘제갈량’
2003년, 마화텅(馬化騰)은 류츠핑과 처음 만났다. 골드만삭스에 몸담고 있던 류츠핑이 텐센트의 상장 주관사로 골드만삭스를 택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서였다. 류츠핑은 발 빠르게 텐센트의 SNS인 QQ 계정을 만들어 명함에 자신의 QQ 계정을 인쇄해 전달하는 등 기지를 발휘해 마화텅의 호감을 얻었다.
류츠핑의 뜻대로 텐센트의 상장 주관사는 골드만삭스로 낙점되었고 2004년 6월, 텐센트는 홍콩에 상장했다. 마화텅은 류츠핑을 가리켜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카드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 강인한 자”라고 말했다.
마화텅은 IT 전문가만 모인 텐센트의 발전을 걱정하며 글로벌 사업을 경험한 류츠핑을 텐센트에 합류시켰다. 그는 텐센트의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지내며 미래 전략, 인수합병, 투자 관리 등 업무에 매진했다. 류츠핑은 수익 목표 설정 등 미국 기업의 표준 관행을 텐센트에 도입했다. 텐센트에 ‘5개년 사업 계획’을 도입한 것도 류츠핑이다.
텐센트 굴기의 역사를 조망한 ‘텐센트전(騰訊傳)’에서 저자는 류츠핑의 말을 인용해 “그와 마화텅이 자주 앉아 토론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여러 전략 사례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며 회사의 미래를 그려나간 것이다.
2006년 2월, 류츠핑은 텐센트 총재 자리에 오른다. 2005년 10월 두 번째 조직 개편을 시행한 텐센트는 포털, 온라인 게임, 검색엔진,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뻗는다. 이후 5~6년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3Q대전’ 이후 진일보한 개방에 나섰다. 3Q대전은 중국의 대표적 인터넷 백신업체 치후360과 텐센트의 ‘시장의 지배적 지위 남용’을 둘러싼 소송전으로, 중국 인터넷 분야에서 ‘세기의 대결’로 일컬어진다.
2011년 텐센트는 위챗을 세상에 선보였고 이후 시나닷컴, 다중뎬핑(大衆點評), 징둥, 58퉁청(58同城) 등 여러 기업에 투자한다. 다만 알리바바와 달리 이후 실제 경영은 각 파트너사에 맡기고 텐센트는 가장 잘하는 분야에만 집중한다.
2020년 1월 16일 열린 ‘텐센트 투자 IF(Insight & Forecast) 컨퍼런스’에서 류츠핑은 당시 텐센트의 투자기업은 누적 800개를 넘었으며 그중 70여 개가 상장에 성공, 160여 개 기업은 시총(혹은 기업가치) 10억 달러(1조 3115억 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에 해당한다고 공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힐하우스캐피털의 창업자인 장레이(張磊)의 말을 인용해 “이러한 텐센트의 투자 전략은 모두 류츠핑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전했다.
날개 꺾인 샤오미 끌어올린 ‘구세주’
2015년, 샤오미는 예상 목표량에 못 미치는 7000만 대의 스마트폰을 출하하며 난관에 부딪쳤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은 샤오미의 투자자였던 저우서우쯔를 CFO로 영입한다. 당시 그의 나이 32살 때의 일이다.
저우서우쯔는 싱가포르 사람으로 23살에 골드만삭스에 입사, 4년 후 DST에 들어가 베이징 지사에서 일하며 징둥, 샤오미, 알리바바, 디디추싱, 진르터우탸오 등에 투자했다. 저우서우쯔는 DST에 몸담을 당시 중국 모바일 인터넷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매년 약 350명의 창업자를 만났다. 레이쥔은 저우서우쯔의 선견지명과 성실함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2017년 말, 샤오미가 상장한다는 소식에 업계가 들썩였다. 저우서우쯔도 덩달아 바빠졌다. 매일 15시간을 일했다. 샤오미의 IPO 당시, 저우서우쯔는 차이충신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당시 차이충신은 발행가보다 낮은 주가를 견딜 수 있을만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답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말은 사실이 되었고, 상장 후 샤오미 주가는 오랜 기간 발행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저우서우쯔는 CFO로 지내며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주로 샤오미 생태계 및 산업사슬 투자를 담당했다. 이 기간 후베이(湖北)샤오미창장(長江)산업펀드를 설립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저우서우쯔가 CFO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샤오미는 270여 개 기업에 투자했으며, 그중 샤오미 생태계에 속한 화미커지(華米科技), 윈미커지(雲米科技) 등은 상장에 성공했다.
이후 레이쥔은 저우서우쯔가 샤오미의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는 데 매진하기를 바랐으나, 저우서우쯔는 샤오미를 떠나 바이트댄스 CFO로 옮긴다. 이 덕분에 그는 고향인 싱가포르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우서우쯔는 바이트댄스 창업자인 장이밍(張一鳴)이 그린 미래 전략을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바이트댄스에서 선보인 앱(APP)의 성장 궤도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보기술 투자자 중 하나인 유리 밀러(Yuri Milner)를 설득해 바이트댄스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그리고 2022년 3월, 저우서우쯔는 틱톡 CEO로 임명됐다. 이와 관련해 장이밍은 “저우서우쯔는 우리 사업·팀·문화에 매우 익숙하다”며 “그가 DST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우리(바이트댄스)의 가능성을 눈여겨봤으며, DST가 투자하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틱톡(바이트댄스)까지 중국 인터넷 거물이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는 데에 차이충신, 류츠핑, 저우서우쯔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업계 전문가들이 “각 기업이 현재의 자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이들과 같은 자본을 굴리는 ‘재물신’이 ‘필수’”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