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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빈씨 떠나게한 '김민수 검사'…경찰, 언더커버로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故 김후빈씨의 휴대전화에선 “금융 범죄에 연루됐다”며 송금을 요구하는 남성과 울먹이는 후빈씨의 목소리가 담긴 통화녹음이 발견됐다.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발신인은 11시간에 걸쳐 후빈씨를 압박했다. 배터리 부족으로 통화가 끊어지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공개 수배하겠다”고 윽박질렀다. 협박을 이기지 못한 후빈씨는 은행에서 420만원을 찾아 전북 순창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결과는 사기였다. 사진 정은재씨

故 김후빈씨의 휴대전화에선 “금융 범죄에 연루됐다”며 송금을 요구하는 남성과 울먹이는 후빈씨의 목소리가 담긴 통화녹음이 발견됐다. ‘서울중앙지검 김민수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발신인은 11시간에 걸쳐 후빈씨를 압박했다. 배터리 부족으로 통화가 끊어지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공개 수배하겠다”고 윽박질렀다. 협박을 이기지 못한 후빈씨는 은행에서 420만원을 찾아 전북 순창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결과는 사기였다. 사진 정은재씨

“아직 많이 아파요….”
25일 정은재(56)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는 2020년 설 명절을 앞두고 아들 김후빈(당시 28세)씨를 잃었다. 당시 후빈씨는 ‘김민수 검사’를 사칭한 서모씨 일당에게 속아 420만원을 잃고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됐다. 사기를 당하고도 자신의 실수로 범죄자가 됐다고 생각한 그는 스스로 삶을 내려놓았다. 2년 7개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악몽은 여전히 엄마를 괴롭히고 있었다. ‘가짜 김민수 검사’ 서모씨가 항소심에서 감형받은 데다가 여전히 후빈씨와 같은 피해자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간혹 날아드는 아들 사칭 문자도 마음을 후벼판다. 정씨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지 않은 사람은 왜 속는지 알지 못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라고 울먹였다.

정은재씨는 지난 1월 아들 후빈씨를 사칭한 문자를 받았다. 이미 세상을 뜬 후빈씨의 기일 즈음이면 정씨는 매번 아들을 사칭한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사진 정은재씨

정은재씨는 지난 1월 아들 후빈씨를 사칭한 문자를 받았다. 이미 세상을 뜬 후빈씨의 기일 즈음이면 정씨는 매번 아들을 사칭한 문자를 받는다고 했다. 사진 정은재씨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1~7월 상반기 기간 보이스피싱 피해 발생 건수는 1만 41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402건에 비해 줄었다. 그러나 검찰·금감원 등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 비율은 지난해 21%에서 올해 37%로 크게 늘었다. 생활이 어려운 서민에게 “대출을 해주겠다”고 접근하는 ‘대출 사기형’이 주를 이뤘던(79%)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8대2로 격차가 있던 대출 사기형과 기관사칭형 피해액 비율도 올해는 5대5로 비등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경험하지 못한 일반인들을 노리는 방식”이라며“피해자 대부분이 주로 사회 경험이 적은 20·30세대다”라고 말했다.

위장수사 도입 추진 

보이스피싱 방식이 교묘해지자 경찰도 대응에 나섰다.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범죄에 경찰 신분을 감춘 ‘언더커버(undercover·위장수사)’ 수사관을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2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이 수사해도 잡고 보면 대부분이 심부름하는 중간책 정도다. 범죄를 설계하는 우두머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에도 위장수사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보이스피싱을 서민의 경제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7대 사기로 규정하면서 종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 이은 조치다.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보이스피싱 피해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1대 국회 전반기 행정안전위원장이었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청과 협의를 거쳐 지난 2일 디지털다중피해사기 방지 및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엔 ‘사법경찰관리는 디지털다중피해사기 범죄에 대하여 신분 비공개 수사와 신분 위장수사를 할 수 있으며 긴급을 필요로 하는 때엔 법원의 사전 허가 없이 긴급 신분위장수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장수사는 현행 법령에 근거해서만 할 수 있다”라며 “서 의원실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다면 법적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짜 김민수 검사’ 사라질까

그러나 경찰의 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대부분 총책이 중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어 추적이 어렵고 해외 수사 당국과의 공조에 검거 성공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중국 공안과의 공조해 전화금융사기로 14억원을 갈취한 조직 총책 A씨(44)를 현지에서 검거해 지난 24일 강제송환하기도 했지만, 아직 많은 사건이 ‘추적 중’인 상태다. 수사당국은 후빈씨 사건의 총책도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협력관을 중국 등에 파견해 보이스피싱 범죄 해결에 중점을 두게 했다”며 “중국 정부가 요청한 한국 내 수배자 검거 및 송환에 집중하는 식으로 공조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추적보다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에 행정력을 쏟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이스피싱 수사경험이 많은 한 경찰 간부는 “수사관에게도 보이스피싱 문자와 전화가 날라온다”며 “해외 도처에 깔린 총책을 잡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는 만큼 정부가 통신사 등과 합동으로 이런 연락을 차단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치밀해진 피싱 수법, 은행사칭 대출스팸문자신고 건수, 피싱 피해시 행동요령, 개인정보 유출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경찰청·한국인터넷진흥원·금융감독원]

최근 5년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치밀해진 피싱 수법, 은행사칭 대출스팸문자신고 건수, 피싱 피해시 행동요령, 개인정보 유출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경찰청·한국인터넷진흥원·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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