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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일찍 재개됐어야 마땅한 한·미 연합 훈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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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트럼프 "전쟁 게임" 명명은 해악

준비태세 약화는 북·중·러만 이득  

실전 훈련,북한 도발 셈법에 영향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최대 규모의 실기동 훈련을 동반하는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 프리덤 실드)훈련이 이번 주 시작됐다. 4년 만이다. 북한이 격하게 반응했고 한국 내 일부의 비판 목소리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UFS 훈련이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더 밀착시키거나 북한의 핵실험 재개를 촉발하는 역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 안보에 있어 일방의 행동은 언제나 상대방의 반작용을 불러오기 마련이지만, UFS 훈련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를 강화하는 일이다. 훈련 재개에 따른 리스크는 작고, 이점은 적어도 4배는 된다.

한미 연합 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훈련이 시작된 22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이번 UFS는 4년 만에 재개되는 야외 실전 기동 훈련이다. [뉴스1]

한미 연합 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훈련이 시작된 22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헬기가 비행하고 있다. 이번 UFS는 4년 만에 재개되는 야외 실전 기동 훈련이다. [뉴스1]

무엇보다 애초에 취소해선 안 될 훈련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과의 소위 '전쟁 게임(war games)'을 그만두겠다고 해 미국 국방부와 의회, 미국의 동맹국들을 경악하게 했다. 훈련 중단으로 인한 외교적 실익은 차치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방식은 많은 해악을 끼쳤다. 훗날 트럼프는 이것이 푸틴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고 실토했다. 한·미 간 준비태세와 동맹 통합의 약화로 이득을 보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 뿐이다. 트럼프가 북한·러시아·중국의 프로파간다 언어를 차용해서 한·미 간 정례 연합훈련을 '전쟁 게임'으로 치부한 것 자체로도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폐해를 만회하기 위해 훈련은 더 빨리 재개했어야 했다.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한·미 간 연합 훈련 중단은 실전 상황에 대한 양국 군 준비 태세의 약화를 의미한다. 특히 미군에게 한국군과의 야외 훈련은 필수적이다. 지난 4년간 미군 고위 인사들과 연합훈련 중단 이슈를 얘기할 때마다 필자는 준비 태세 약화에 대한 미군 내 우려가 큰 것을 느꼈다. '파잇 투나잇(We fight tonight)'은 한·미 연합사의 임전 태세 모토다. 훈련 중단이 길어지면서 ‘오늘 밤’이 아니라 내일 밤이 되어도 전투태세를 갖추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커졌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반 훈련은 전력의 기술 및 전술 역량 증대, 병참과 전투 관련 기타 부문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장점이 있지만, 실제 전시 상황을 가정한 야외 기동 훈련을 대체할 수는 없다.
셋째, UFS 훈련 재개는 북한과 중국·러시아의 기대치와 셈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북한은 더 큰 레버리지를 가지려는 차원에서 한반도 안보를 취약하게 할 각종 도발 카드를 굴리고 있다. 사이버 공격, 서해 상에서의 군사 훈련, 핵 실험, ICBM 시험 발사 등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한·미는 당연히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인데, 북한은 자신이 주도해 긴장 수위를 통제하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한·미 양국이 자신보다 더 겁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면 미국이 개입하거나 전쟁으로 발전시키기에 애매한 '회색지대 전략'을 시도하거나 비대칭적(핵·화학·생물 무기, 탄도미사일, 사이버 등)도발에 의지할 가능성이 크다. UFS 훈련 재개는 전시 상황에 대한 한·미의 준비 태세 강화는 물론, 북한의 도발 이후 긴장 상황에서 한·미가 제어권을 놓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도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고 공격 시 패배시키기 위한 UFS 훈련 범위에 중국·러시아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지만, 이번 훈련 재개는 두 나라의 기대치에도 영향을 끼친다. 중국의 목표는 한국을 지정학적으로 중립화시키고 일본과 호주를 고립시키며 대만을 포위하는 것이다. 중부 유럽에서의 실지회복을 꾀하는 러시아는 미국의 동맹 체제가 어떤 형태로든 약화하길 호시탐탐 노린다. 훈련 재개로 한·미는 동맹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더 중요한 건 윤석열 정부가 한반도의 대외 환경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는 점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오래전 재개했어야 마땅한 이유들이다. 물론 대가는 있다. 북한은 격분했고 중국은 한·미 동맹을 이례적으로 세게 비판했다. 두 나라와의 관계는 더 경색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국익을) 희생한 걸까. 윤석열 정부의 관계 개선 제안을 벌써 걷어찬 북한은 앞서 문재인 정부의 전례 없는 유화정책에도 그 어떤 보답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쟁 게임" 명명은 해악 #준비태세 약화는 북·중·러만 이득 #실전 훈련,북한 도발 셈법에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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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