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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입학’ 무엇이 문제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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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지난해 출생아 수 26만 562명.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책 제목처럼 이는 ‘정해진 미래’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을 알 수는 없겠지만 26만 명이란 숫자가 가져올 결과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지난 2016년 출생아 수가 40만 6243명인 것과 비교하면 5년 만에 14만 명 이상 감소했다. 앞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지금과 같은 규모를 유지할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고교, 사교육 기관, 대학도 인구 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설익은 발표로 ‘정책 참사’ 자초
초등 입학보다 고교 졸업 당겨야
고교학점제 시행, 개혁의 계기로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8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8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2분기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동의 수인 합계출산율이 0.75명으로 떨어졌다. 보통 4분기엔 출생아 수가 줄어든다. 이미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71명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올해 4분기엔 0.6명대 숫자를 볼 가능성이 있다.

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지만 당장 이민을 늘리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출산율을 끌어올릴 대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기존의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거론되는 게 지금보다 사회 진출 연령을 앞당기는 것이다. 낙마한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꺼내 들었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도 따지고 보면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데다, 치밀한 준비도 없이 2025년 시행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큰 반발에 직면했다. 시행은커녕 공론화도 제대로 못 한 채 포기했으니 ‘정책 참사’라 할 만하다.

통계청의 월별 출생아 수 동향을 보면 12월 출생아가 이듬해 1월보다 20~25% 적다. 임신과 출산 시기를 정확하게 조절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12월보다는 1월 출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왕따 문제와 발달 격차 등의 우려를 가진 학부모에게 급작스럽게 만 5세 입학을 제시했으니 반발의 강도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저출산 상황에서 사회 진출 연령을 앞당기는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해 볼 과제다. 사회 진출 연령을 당기는 방법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만 있는 게 아니다. 고교 졸업 시기를 당길 수도 있다.

지금 고교는 냉정하게 보면 3학년 1학기가 끝이다. 대학 입시를 위한 내신 성적이 3학년 1학기까지 반영되기 때문이다. 3학년 2학기는 입시의 시간이다. 지난해 고교생의 상급학교 진학률은 73.7%다. 나머지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고교 3학년 2학기를 입시의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마침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된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듣고 일정 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하는 제도다. 물론 고교학점제가 조기 졸업을 위해 마련된 제도는 아니다. 학기별로 최소 이수 학점을 둔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 시행을 계기로 원하는 학생은 좀 더 일찍 고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 19세인 민법상 성인의 연령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 만 18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는데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성인 연령이 만 18세다. 이웃 나라 일본은 만 20세였지만, 올해 4월부터 이를 18세로 낮췄다.

만일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고교를 졸업하면 9월에 시작하는 외국 대학에 바로 입학할 수도 있다. 고교 졸업이 빨라지면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마련한 중간보고서엔 “국내 교육기관이 채택한 3월 시작 2개 학기제에 대한 근본적 재고가 필요하다”며 “긴 겨울 방학을 없애고 9∼11월, 12∼2월, 3∼5월 진행되는 3개 정규 학기로 학사 일정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교육계 내에서도 기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이런 요구를 반영하고 이해 관계자를 설득해 제도화하는 것이 중앙 정부의 역할이다. 방식도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시·도 교육감에게 자율권을 주고 원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각론은 다를 수 있지만, 지금보다는 교육 시스템이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교육 개혁은 어려운 과제다. 학교 관계자의 반발도 크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지지도 얻지 못하면 시작도 못 한다. 만 5세 입학 파동이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