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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결 하루 만에 다시 ‘이재명 방탄’ 밀어붙이는 민주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비대위, 부결된 개정안 꼼수 재상정 강행

구태 팬덤 정치 계속하면 민심 등 돌릴 것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이재명 사당화’ 비판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당헌 개정안이 24일 당 중앙위원회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재명 의원이 대표가 된 뒤 기소당해도 자리를 유지할 길을 열어준 ‘기소 시 당직 정지’ 개정과 당 최고 결정기구인 전국대의원회의 의결보다 권리당원 투표를 우선하는 ‘권리당원 전원 투표’ 신설 방안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비대위는 권리당원 투표 조항만 뺀 채 당헌 개정안을 재상정하기로 했다. ‘부결된 안건은 다시 표결에 부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어겼다. 게다가 비대위는 중앙위 재소집에 최소한 5일이 필요한데도 이틀 만인 26일 중앙위를 열기로 해 절차적 정당성마저 내동댕이쳤다.

민주당 중앙위까지 올라온 안건이 부결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재명 사당화’에 대한 당내의 거부 여론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민주당 비대위는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이재명 방탄용’이란 비난을 받아 온 ‘기소 시 당직 정지’ 개정안만큼은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문제의 개정안은 기소당한 당직자나 의원의 징계 처분을 취소하는 주체를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윤리심판원’에서 당 대표가 좌지우지하는 ‘당무위’로 변경해 대표의 ‘셀프 사면’이 가능하게끔 한 것이 골자다. 한마디로 국민 우롱이다. 현재 민주당 의원 20여 명이 비리 등의 혐의로 검경의 수사망에 올라 있다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들은 자신들의 사면권을 쥔 당 대표의 뜻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당 대표와 다른 의견을 내는 의원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당은 대표 1인의 독무대로 전락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백 년 집권’을 큰소리쳤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건 ‘대깨문’으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에 휘둘린 팬덤 정치로 민심이 등을 돌리게 만든 탓이 컸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성과 쇄신은커녕 ‘개딸’ 같은 강성 지지층을 업은 이재명 후보에게 방탄조끼를 입혀주고 당의 의결권까지 넘겨주려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선지 민주당 전당대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민적 관심과 열기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의원은 78%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지만, 투표율은 영남권을 빼면 대부분 지역에서 40%를 밑돌았고 텃밭인 호남권에선 35%대에 그쳤다. 당 전체 권리당원의 3분의 1(42만 명)이 포진한 호남 권리당원 3명 중 2명이 투표를 포기한 셈이다. ‘이재명의 사당’으로 전락해 가는 당의 현주소에 실망한 핵심 지지층이 경고등을 켠 결과일 것이다. 중앙위가 당헌 개정안을 부결시킨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비대위가 이재명 방탄용 당헌 개정에 매달린다면 또다시 민심의 매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