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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막다 다중채무자 됐다, 벼랑 내몰린 자영업자·영끌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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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서울 구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30대 이모씨는 최근 저축은행에서 대출상담을 받고 깜짝 놀랐다. 생활비와 가게 운영 자금으로 1500만원을 대출받으려 했더니 9%가 넘는 금리를 제시해서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해 92만원을 갚고 있어 부담이 컸다. 직원에게 밀린 월급을 주려 지난해 6월 13.1% 금리의 카드론(장기카드대출)으로 빌린 1000만원은 1년 만에 간신히 갚았다.

2018년 편의점을 연 뒤 이씨가 금융회사에서 빌린 금액은 1억원에 이른다. 4년 만에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됐다. 신용점수는 600점대로 추락했고, 1금융권에선 더는 대출이 어렵다. 이씨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원 대신 가족이 교대근무로 일한다”며 “버티고 있지만 빚은 계속 늘어나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장기화하는 코로나19와 치솟는 대출 금리에 빚을 내서 버티던 자영업자는 물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주택을 마련한 차주(대출자)들이 한계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에 대출금리는 고공행진 중이다.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공개된 8월 기준 17개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연 5.05%다. 1년 전(연 3.71%)보다 1.34%포인트 뛰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6% 선을 다시 뚫었다. 25일 기준 4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주담대 변동금리(신규취급액 코픽스 기준) 평균은 연 4.70~5.84%다. 연말엔 일부 은행의 변동형 주담대 상단 금리가 7%에 도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는 그나마 시중은행이 대출금리를 소폭 낮춘 게 반영된 결과다. 지난 22일부터 은행별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 공시가 시작되면서 ‘이자장사’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리고, 예금금리를 올리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4일 고정형 주담대 0.2%포인트, 변동형 주담대 0.1%포인트, 전세자금대출 0.2%포인트, 신용대출 최대 0.5%포인트를 인하했다. KB국민은행은 25일부터 고정형 주담대 금리를 0.2%포인트 낮췄다.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영끌족의 이자 부담도 커졌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하면 1인당 이자 부담은 연간 16만1000원씩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한은 분석대로라면 1년간 기준금리 2%포인트 인상에 따른 1인당 이자 부담 증가액은 128만8000원에 이른다.

여기에 최근 주택시장 위축 조짐에 불안감은 배로 커지고 있다. 자칫 집을 제 값에 팔지 못하고 매달 불어난 이자만 갚아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어서다. 2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 아파트값 추이는 22일 기준 1주 전보다 0.14% 떨어졌다. 2012년 7월 2주차 이후 10년 만에 최대 낙폭이다.

‘빚내서 빚을 돌려막는’ 다중채무자가 급증하는 것도 문제다. 빚을 못 갚고 연체가 발생하면 부실화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가계대출자 중 22.4%가 다중채무자다. 2012년 이후 최고 기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변제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차주의 경우 소득 상황에 맞게 대환대출을 설계해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등 맞춤형 지원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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