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융시장 뒤흔들 '티턴산 계시'…'잭슨홀 미팅' 세계가 숨죽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학자가 모여 통화와 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이 열리는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국립공원 내의 잭슨홀. 사진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티턴산의 모습. [AP=연합뉴스]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과 경제학자가 모여 통화와 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이 열리는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국립공원 내의 잭슨홀. 사진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티턴산의 모습. [AP=연합뉴스]

 ‘8월 티턴산의 계시.’

암호 같은 이 말은 세계금융시장의 방향을 바꿔 온 강력한 주문이다. 신탁이 내리는 곳은 미국 와이오밍주 티턴(Teton) 국립공원의 잭슨홀(Jackson Hole). 1982년부터 매년 미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주최하는 ‘세계 중앙은행 총재 연찬회’, 이른바 ‘잭슨홀 미팅’이 열리는 곳이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티턴산을 배경으로 잭슨호를 내려다보는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매년 각국 중앙은행 총재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경제학자 등 150여명이 모여든다. 25~27일(현지시간) 열리는 올해 잭슨홀 미팅도 마찬가지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석한다.

시장이 잭슨홀 미팅을 앞두고 조바심을 내는 건 이곳에서 세계 경제 흐름을 바꾼 주요한 발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헬리콥터 벤’으로 불린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2007년과 2010년, 2012년 미팅 때 양적 완화(QE)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뿐만 아니다.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도 2014년 잭슨홀 미팅에서 통화 완화 정책을 예고한 뒤 대규모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재정 위기에 시달리던 유로존 구하기에 나섰다. 재닛 옐런 전 Fed 의장(2016년 “금리 인상 근거 강화”)과 스탠리 피셔 전 Fed 부의장(2015년 “선제적 통화정책 정상화”)도 잭슨홀 미팅에서 신호를 준 뒤 4개월 뒤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티턴산의 계시’를 기다리는 금융시장 관계자와 투자자가 숨죽여 지켜볼 행사는 26일(현지시간) 파월 Fed 의장의 연설이다. 예정된 주제는 ‘경제 전망’이지만, 긴축의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파월과 Fed의 속내를 엿볼 수 있어서다. 미국의 긴축 속도와 강도는 달러 강세와 자금 유출 등으로 이어지며 세계 경제에 연쇄적으로 파문을 일으킨다.

세계 경제에는 이미 조금씩 불안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속 경기 둔화 가능성도 커지며 유럽에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인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요 도시 봉쇄 등의 후폭풍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자 기준금리를 내리며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원화가치 하락으로 몸살 중이다.

25일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총재가 “한 금통위원이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만 Fed로부터 독립적이지 않다’고 말했다”고 소개한 것도 ‘달러 신전’ Fed의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장이 우려하는 건 경기 침체 우려에도 Fed가 상당 기간 긴축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않을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하며 ‘피크 아웃(정점 통과)’에 대한 기대감에도, 현재의 경제 상황이 ‘거인의 발걸음’(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뗀 Fed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AFP=연합뉴스]

이런 두려움을 부추긴 건 24일(현지시간) 닉 티머라우스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의 기사다. 지난 6월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달리 Fed의 0.75%포인트 인상을 족집게처럼 맞춘 뒤 ‘Fed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리는 티머라우스는 인플레이션 고착화 가능성을 지적하며, Fed 인사들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Fed가 인플레 통제에 실패할 수 없다”며 ‘인플레 파이터’로의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파월의 ‘페드 피벗(pivot·태세 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 23일 Fed 대표적 매파인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가 강연에서 “마음속 가장 큰 두려움은 이 인플레이션이 우리와 시장의 평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경제에 자리 잡았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인플레를 다시 낮추기 위해 내 예상보다 아마도 더 오랫동안 공격적이어야 할 것 같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높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한다(higher for longer)’는 정책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잭슨홀 미팅의 무대에 오르는 파월이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낼 가능성은 작다. 무엇보다 물가 전망과 관련한 지난해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보였던 판단 오류(“인플레이션은 일시적”)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결국 연설 이후에도 파월과 시장 사이에 ‘숨은 의미'를 찾으려는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웰스 파고의 크리스토퍼 하비는 24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잭슨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며 “매파(통화 긴축)들은 매파적 발언에 집중하고, 비둘기(통화 완화)파는 그 반대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수 있단 말이다. 윤소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잭슨홀 미팅은 ‘페드 피벗’을 바라는 시장과 태세를 바꾸지 않는 Fed와의 간극을 인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

◇잭슨홀(Jackson Hole)=미국 와이오밍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 있는 계곡이다. 티턴산과 빙하호를 품고 있다. 지형이 움푹 파여 구멍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잭슨홀(Jackson Hole)로 불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