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음 생엔 부잣집에서…” 수원 세 모녀 빈소, 시민들이 지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가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세 모녀의 장례는 수원시 공영장례로 치러진다.연합뉴스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가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세 모녀의 장례는 수원시 공영장례로 치러진다.연합뉴스

“다음 세상엔 꼭 부잣집에서 태어나시길…”

25일 오전 수원 세 모녀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 특실. 조문을 마친 이영기(68)씨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한참을 울먹였다.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에 사는 이씨는 세 모녀의 빈소가 차려졌다는 뉴스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달려 장례식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뉴스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많이 울었다”며 “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하게 살길 바란다. 다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제단엔 위패만, 상주석엔 수원시 공무원

지난 21일 수원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의 제단엔 영정 없이 위패 셋만 덩그러니 올려져 있었다.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는 무연고자는 고인의 사진을 전해줄 친지나 지인이 없으면 이름만 새겨진 위패를 모시기 때문이다. 세 모녀는 2년여 전 병을 앓던 아들과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남은 친척들은 부담감 등을 이유로 이들의 시신 인수를 사양했다.

수원시가 전날 이들의 장례를 대신 치르기(공영장례)로 하면서 수원시 공무원들이 상주를 자임해 조문객을 맞았다. 수원시 관계자는 “보통 무연고자 공영장례는 10시간 이상 애도할 수 있는 빈소를 차린 뒤 발인하는데 이번엔 고인이 셋이라 삼일장을 치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건희 여사가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례 이틀째인 이날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치권 등에서 보낸 조화와 조기가 오전부터 빈소를 채웠다. 김건희 여사도 이날 오후 세 모녀의 빈소를 찾았다. 김 여사는 제단에 헌화한 뒤 추모행사를 맡았던 원불교 교무(성직자)들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원불교 관계자는 “김 여사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종교인들께서 대신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문을 마친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가가 충분히 챙기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굉장히 가슴이 아프게 생각한다”며 “관련 부처에서도 관련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자체와도 잘 협조해서 정부가 마련한 (복지) 혜택을 (국민이)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전에 빈소를 찾은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가 거의 해소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 정말 죄송하고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복지 정책 전문가와 일선 현장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분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촘촘하게 (복지)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깝다” 빈소 찾는 시민마다 눈물

시민들은 암과 희귀병을 앓으며 빚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진 세 모녀의 안타까운 사연에 눈물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초로의 한 남성 조문객은 “숨진 딸들의 나이가 우리 딸과 비슷해 더 마음이 아팠다”며 “그동안 우리 사회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세 모녀의 사망에) 나도 책임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 서울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의 빈소. 암ㆍ희소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은 지난 21일 수원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모란 기자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의 빈소. 암ㆍ희소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은 지난 21일 수원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모란 기자

경기복지시민연대 유덕화 공동대표는 “시민단체로서 지역사회 돌봄을 미리 예방하지 못해서 반성하고 사죄하러 왔다”며 “왜 계속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마음이 아프다. 내가 잘 못 한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든다”고 연신 눈물을 쏟았다. 일부 시민들은 “세 모녀의 장례에 써 달라”며 수원시에 준비한 부조금을 내밀었다. 그러나 공영장례는 부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 탓에 전달하진 못했다.

수원시는 전날에만 50명의 시민이, 이날 오후 2시 현재 70~80명의 시민이 조문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공영장례는 대부분 일반 조문객이 거의 없어서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만 참석해 장례를 치르는데 세 모녀 사건은 언론을 통해 알려져서 그런지 전날부터 빈소를 찾아 애도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고인들의 가는 길이 외로울 것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세 모녀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의식이 열렸다. 수원시는 종교단체와 협약을 맺고 고인의 종교가 확인되면 해당 종교에서 추모의식을, 종교를 알 수 없는 사망자는 분기별 담당 종교가 추모의식을 한다. 세 모녀는 종교가 확인되지 않아 원불교 경인교구에서 추모식을 담당했다. 실타원 김덕수 원불교 경인교구장은 “(세 모녀가) 살아 생전에 가졌던 한을 모두 잊고 해탈에 도달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서 원불교 경기인천교구 주관으로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암ㆍ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빈소에서 원불교 경기인천교구 주관으로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수원시는 다음날인 26일 오전 발인을 마친 뒤 오후 1시 수원시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고 연화장 내 봉안담에 이들의 유골을 봉안할 예정이다.

김동연, 복지 핫라인 만들기 위해 휴대전화 공개

세 모녀 사건 이후 각 지자체는 복지 사각지대 찾기에 나섰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지) 핫라인을 만들겠다. 힘드신 분들은 연락해달라”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010-4419-7722)를 공개했다. “‘명예사회복지공무원제’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명예사회복지공무원제는 2018년 증평 모녀 및 구미 부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의 위기가구를 발굴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김 지사는 “수원 세 모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꼼꼼히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추석 직후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였던 화성시는 정명근 시장 특별 지시로 ‘고위험가구 집중발굴 TF’가 꾸렸다. 주거불명 등 이유로 복지서비스 '비대상'으로 등록된 1165가구와 건강보험료나 전기료를 장기 체납한 8952가구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