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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에 필리핀 바람, 1호는 '코트의 여우' 유도훈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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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유도훈 감독님이 첫 만남 때 ‘우리 닮은 것 같다’고 했어요. 짧은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요. 유튜브로 감독님의 선수 시절 영상을 봤는데, 빠른 템포와 동료를 살려주는 패스 등 저랑 추구하는 농구도 닮았어요.”(대구 한국가스공사 샘조세프 벨란겔)

“제가 선수 시절 말랐을 때랑 닮았어요. 저도 짧은 머리를 좋아했어요. 본인 득점보다는 리딩, 이기는 농구에 필요한 악착 같은 수비, 팀을 독려하는 모습도 비슷해요. 저랑 눈빛도 닮지 않았나요? 하하”(한국가스공사 유도훈 감독)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만난 프로농구 대구 한국가스공사의 유도훈(55) 감독과 가드 벨란겔(23·필리핀). 둘은 국적이 다른데도 작은 키에 외모, 플레이 스타일까지 ‘닮은꼴’이었다. 키 1m73㎝ 유 감독은 1997년부터 2시즌 연속 현대 포인트가드로 우승에 일조했다. 키 1m77㎝ 벨란겔은 이날 고려대와의 연습경기에서 22분을 뛰며 9점·3어시스트·2리바운드를 올렸다. 좀 더 공격적으로 나선 24일 동국대전에서 18분23초간 17점,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8년 현대 시절 유도훈. 중앙포토

1998년 현대 시절 유도훈. 중앙포토

유 감독은 “난 선수 때 별명이 ‘코트의 여우’, ‘야마꼬(키가 작아 ‘꼬마야’를 거꾸로 부른 것)’였다. 벨란겔이 1번(포인트 가드)으로서 여우처럼 경기 흐름을 잘 읽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경기 중 마우스피스를 낀 벨란겔은 “고교 첫 해 팔꿈치에 강타 당해 안면이 골절돼 의치를 하게 됐다. 또 다른 충격에 부러질 수 있어 보호 차원에서 착용한다”면서 “난 필리핀에서 ‘더 파이어맨(fireman·소방관)’이라 불렸다. 상대팀 공격히 ‘핫’할 때 불을 끄듯 저지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필리핀 국가대표 가드인 벨란겔은 작년 아시아컵 한국전에서 종료 직전 버저비터 3점포로 81-78 승리를 이끈 바 있다. 마닐라의 아테네오 대학에서 경영과 교육 커뮤니케이션을 복수전공한 벨란겔은 2020년 필리핀대학 컵대회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 프로농구에 ‘필리핀 바람’이 불고 있다. 새 시즌부터 아시아 쿼터를 일본에서 필리핀까지 확대했는데, 10팀 중 6팀이 필리핀 선수 6명을 영입했다. 벨란겔이 ‘KBL 1호 필리핀 선수’다. 유 감독은 “새 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선수) 등 선수들 이동이 많은 상황에서, 각 팀이 취약한 가드와 포워드 포지션을 필리핀 선수들로 수급한 것 같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전력 보강이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는 가드 김낙현이 군입대하고 두경민이 DB로 떠난 공백을 벨란겔로 채웠다. 필리핀 선수들의 연봉은 세금 포함 1~2억원 수준으로 ‘가성비’가 좋다. 필리핀 선수들은 필리핀 프로농구(PBA)에서는 연봉 대신 최대 월급 42만 페소(1000만원)을 받는다. 신인선수의 최대 월급은 20만 페소(480만원)로 제한적이다. 20대 초중반 필리핀 선수들 6명이 KBL로 향했다.

벨란겔은 “필리핀 리그는 정해진 금액이 있긴 하지만, 광고와 스폰서 등 외적인 수입도 있다. 한국행을 결정한 게 금전적인 부분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농구보다는 한국농구 시스템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작년 아시아컵 한국전은 제 농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대학 감독님도 한국농구의 조직력, 작전, 패싱게임을 높게 평가해 한국농구에 대한 선호도가 있었다”고 했다.

필리핀은 영어가 공용어라서 한국팀들은 기존 통역만 써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벨란겔은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유 감독을 한국어로 “감독님”이라고 불렀다.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KBL에 오는 필리핀 선수들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에 벨란겔은 “포워드인 저스틴 구탕(25·창원 LG)은 돌파력이 우수하고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녔다. 고교 시절부터 상대해 온 론 제이 아바리엔토스(23·울산 현대모비스)는 공격력으로 자신의 농구를 풀어가는 선수다. 스몰포워드인 윌리엄 나바로(25·서울 삼성)는 블록슛과 스틸이 좋은 수비 스페셜리스트다. 긴 팔과 뛰어난 신체로 가드까지 수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필리핀 대회 결승전에서 상대했던 렌즈 아반도(24·안양 KGC)는 공수에서 제 몫을 해주며, 이선 알바노(26·DB)도 좋은 선수”라면서 “코트 밖에서 친하지만 코트 안에서 친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 코트에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고 한국에 온 뒤 미들슛을 통해 팀에 도움이 되려 한다”고 말했다.

13세 때 도대회에서 한 경기에서 무려 99점을 넣은 적도 있는 벨란겔은 CNN 필리핀과 인터뷰할 만큼 자국 내 인기 선수다. 아테네오 대학은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과 명성이 높은 학교다.

벨란겔은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농구다. 한국에서 뛸 필리핀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열정적인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 경기장을 많이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벌써부터 팬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준다”고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필리핀인은 4만~5만명 정도다.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한국프로농구 필리핀 1호 선수인 대구 한국가스공사 벨란겔(왼쪽). 유도훈 감독(오른쪽)과 작은 키와 외모는 물론 선수 시절 플레이스타일까지 닮았다. 김경록 기자

필리핀 선수들은 폭발적인 공격력과 일대일 능력을 지녔지만 ‘모 아니면 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농구의 강한 수비, 빠른 트랜지션(공수전환)에 적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유 감독은 “필리핀 농구와 한국 농구는 다르다. 여러가지 수비에 대한 주문이 많다. 대학생인 벨란겔은 한 시즌 54경기도 처음 해본다”며 “벨란겔이 1번(포인트가드)으로 볼을 끌고 가주면, 체력을 세이브한 2번(슈팅가드) 이대성이 스크린을 이용한 공격을 하기가 수월하다. 벨란겔은 아직 도화지고 내가 밑그림을 잘 그려보겠다”고 했다.

벨란겔은 “제 강점은 수비와 속공에서 풀어가는 능력이다. 한국 농구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잘하는 ‘코트의 리더’ 이대성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농구선수 출신 아버지도 ‘한국 시스템을 빨리 익히고 팀에 융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팀에 합류한지 일주일 밖에 안된 벨란겔은 훈련이 후 한국 막내 선수들과 함께 물통을 날랐다. 벨란겔은 “대구도 덥지만 필리핀 태양이 더 뜨겁다. 대구 날씨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농담도 건넸다.

▶닮은꼴 사제지간...

샘조세프 벨란겔
출생: 1999년 필리핀(23세)
포지션: 포인트 가드
키: 1m77㎝
소속팀: 마닐라 아테네오 대학-대구 한국가스공사
대표팀: 필리핀 국가대표
별명: 파이어맨

유도훈
출생: 1967년(55세)
선수 시절 포지션: 포인트 가드
키: 1m73㎝
선수 시절 소속팀: 연세대-현대(1990~2000)
감독: KT&G(2007~08)-전자랜드(2009~2021)-가스공사(2021~)
별명: 코트의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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