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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지겨운 ‘똑딱이’생활…왜 공 넣는 재미부터 안 가르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퍼즐] 서지명의 어쩌다 골퍼(3)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온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그 말처럼 누군가의 일상에 하나의 운동이 그 중심에 들어온다는 것 역시 생각보다 실로 엄청난 일이다. 일상을 이루는 시간표가 달라지고 쇼핑리스트가 달라지고 챙겨보는 콘텐츠며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달라지고 몸의 자세가 달라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꾸준히 하는 것 이상의 방법이 없다. 골프 역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려면 짧게라도 매일 갈고닦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물론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 가까우면 한 번이라도 더 가겠지 싶어 회사 근처에 골프 연습이 가능한 곳으로 헬스장을 등록했다. 근무 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짧게라도 채를 휘두르다 오거나, 퇴근 후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잠시라도 들르기 위해 애쓴다. 하루를 이루는 24시간 중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은 골프에 쏟는 셈이다. 더불어 동선도, 먹는 것도 변화한다. 골프연습장 근처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해결하는 횟수가 늘어간다.

실내 골프연습장 전경 사진 서지명

실내 골프연습장 전경 사진 서지명

쇼핑리스트의 변화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어느 날부터 내 PC와 스마트폰 화면이 골프 관련 용품 광고판으로 뒤덮인다. 내가 골프화며 골프웨어며 골프용품을 검색한 탓이다. 내 마음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너 이거 필요하잖아’, ‘너 이거 사고 싶잖아’하며 쇼핑을 자극한다. 골프 초반엔 주로 골프화며 골프웨어에 탐닉한다. 평소 입어본 적 없는 화려한 컬러와 짧은 치마에도 눈길이 간다. 왜 골프장에 빨간바지, 체크바지, 줄무늬 바지의 아저씨가 많았는지 십분 이해 간다. 매일 입는 똑같은 검, 회, 남색 수준의 옷에서 벗어날 기회인 셈이니까.

골프채를 감싸는 각종 골프용품들, 이것도 참 요물이다. 채끼리 부딪치면 상할 수 있기에 채마다 각각의 옷을 입히기 마련인데, 귀여운 것 천지다. 골프웨어에 탐닉하던 시절을 지나 골프채에 빠지게 되면 좀 골치 아프다. 워낙 고가인 탓이다. 어떤 취미이건 ‘장비 빨’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듯이 골프 역시 이런 수순을 밟게 된다. 나는 다만 어느 순간 몸 대신 채 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골프채를 바꾸고 싶다는 신호다.

생전 본 적 없던 골프뉴스를 챙겨 보게 된다. 덩달아 다양한 골프선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박세리, 미셸 위, 박인비 선수처럼 전 국민이 다 아는 정도의 선수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골프 스윙만 보고도 선수 이름을 맞히기에 이른다(는 건 약간 뻥). 골프채널 번호를 외우게 되고(다행히 2개밖에 없어서) 유튜브 채널로 골프 레슨이며 좋아하는 선수의 브이로그 등도 챙겨 본다. 일상을 이루는 큰 축이 바뀌는 셈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에 하나의 운동이 들어온다는 건 그야말로 삶이 뒤바뀌는 엄청난 변화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번에 골프가 엄청 재미있고, 잘 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였다. 골프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찾은 곳은 골프연습장. 헬스장 귀퉁이에 스크린골프 시설을 두고 연습할 수 있는 곳이었다. 골프 연습을 하면서 헬스장 시설도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좋아 보였다(당연하게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시설이니 뭐니 해도 가까워야 자주 연습할 테니 회사 근처가 좋겠지. 행여나 골프가 재미없으면 헬스장만 이용해도 손해는 아닐 거야’라는 안일한 마음이었다.

3개월 정도면 라운딩을 나가기에 무리가 없을 거라고 했다. 일단은 3개월을 등록했다. 골프선생님(프로)은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아이언7번 채를 쥐여 주더니 흔히 말하는 똑딱이 연습만 주야장천 하게 했다.

‘하아, 지겹다.’

되든 말든, 공이 앞으로 가든 옆으로 가든 다른 사람들처럼 채라도 뻥뻥 좀 휘둘러보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골프에 있어 ‘똑딱’의 원리가 왜 중요한지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골프가 진심으로 재미있어지고 열정이 생길 때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꼭 골프에 입문할 때 똑딱이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처음에 왜 꼭 골프의 심오한 논리부터 배워야 하냔 말이다. 일단 재미부터 느끼게 해주는 식이면 좋겠다. 외국에서는 그린 위에서 홀에 공을 넣는 것부터 시작해 재미를 먼저 느끼게끔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홀에 공을 넣는 재미부터 알게 되면 잘 치고 싶어질 테고 원리가 궁금할 테고 똑딱이의 지난함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될 텐데.

처음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뒤 3개월간의 기억은 거의 없다. 가기 싫다, 재미없다,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가만히 있는 작은 공을 놓고 ‘똑딱’ 거려 봤자 도무지 운동 같지도 않았다. 재미도 없고 지쳤다.

어휴, 큰일이다. 똑딱똑딱.

골프 업체 광고의 한 장면

골프 업체 광고의 한 장면

골린이 Tip

골프를 배울 때 똑딱이는 왜 필요할까?

‘언제까지 똑딱이만 하게 할 거야?’
한 골프업체 광고에서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똑딱이’란 쿼터 스윙을 말한다. 멋지게 휘두르는 풀 스윙의 절반의 절반, 그러니까 1/4에 해당한다. 어깨와 팔의 모양이 삼각형을 유지한 채 스윙하는 것으로 클럽의 헤드 움직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똑딱이 스윙은 풀스윙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다. 똑딱이 스윙 기간을 거쳐 하프스윙, 풀스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골린이 입장에서는 골프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냥 딱 때려 치고 싶게 만드는 지겨운 인고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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