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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키우는 건 아이 아닌 양육자" 소아정신과 교수의 일침

중앙일보

입력 2022.08.25 06:00

만 14세, 11세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최근 두 아이 모두 색약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첫째 기석(가명)이가 크게 좌절하고 있어요. 기석이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했거든요. 색약이면 조종사가 될 수 없거든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이것저것 권해봤는데, 아이는 자포자기한 것 마냥 매사에 심드렁합니다.
아이가 방황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속상합니다. 어쩌면 아이보다 제가 더 마음이 아픈지도 모르겠어요. 노력을 해보고 안 되는 것과 시도조차 못하는 건 천지차이잖아요. 예민한 아이라 더 깊이 상처 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시련이 닥칠 때마다 무기력하게 허송세월을 보내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부모로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양육자 대부분이 아이 때문에 걱정한다고 말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걱정을 만드는 건 아이가 아니라 양육자 자기 자신이죠.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윤고은(가명)씨의 고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육자는 자신의 문제를 아이의 문제로 치환하며, 고민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건데요. 신 교수는 “아이는 그저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그걸 양육자가 쓰나미로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양육자가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지금 닥친 게 쓰나미가 아니라 돌멩이가 일으킨 작은 물결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돌멩이도 치울 수 있고요.

아이는 양육자를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양육자는 스스로 문제를 키우는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죠. 신의진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양육자는 휩쓸리지 말고, 굳건하게 버텨야 한다”며 “양육자가 의연한 모습을 보일 때 아이의 불안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강조했습니다. 불안이 사라져야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게 가능하고, 그래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윤고은씨와 신의진 교수의 상담은 지난 1일 줌을 통해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hello! Parents는 윤고은씨의 동의를 얻어 상담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아이가 유독 크게 낙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아이에게 양육자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처는 무엇일까요? 이번 상담에 그 답이 있습니다.

꿈 잃자 자포자기한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신) 아이가 요즘 아주 힘들어 하나 봐요.
윤) 아이보다 엄마인 제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제가 공감 능력이 높은 편이라 그런가 봅니다. 아이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신) 아이가 어떻길래 어머니가 이렇게나 힘들어하는 거죠?
윤) 게임만 계속해요. “파일럿이 될 수 없으니까 이제 눈을 보호할 필요가 없잖아”라고 하면서요. 공부할 필요가 없다면서 학교도 다니고 싶지 않대요. 중퇴하고 검정고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도 하고요.
신) 아이가 생각보다 힘들어 하는군요.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나요?
윤) 아니요, 워낙 늦게 잠드는 편이에요. 뒤척이다 깨기도 자주 하고요. 편식도 심해 달고 짠 음식을 좋아해요.
신) 예민한 아이군요.
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절망을 느끼는 걸까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같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것 외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제가 잘 대처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이런 일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시련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뭐라고 조언하고, 어떻게 이끌어줘야 할까요?

아이가 좌절해도, 부모는 의연해야

신) 어머니 심정이 충분히 이해 갑니다. 저 역시 쉽지 않은 아이를 키웠거든요. 제 큰 아이는 틱 장애, ADHD 같은 정신과 진단만 해도 여러 개를 받았습니다. 이 아이를 기르면서 저 속이 까맣게 탔어요. 다행히도 지금은 정말 착하고 독립적인 청년으로 자랐지만요.
윤) 교수님 책을 읽었어요. 큰 아들이 아프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신) 아이에게서 틱 유발 유전자를 빼줄 수도 없잖아요.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결론은 ‘일희일비 말고 버티자’였어요.
윤) 버틴다고요?
신) 아이들이 실망하고 의기소침한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때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게 엄청 도움 됩니다. ‘네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엄마는 네 편에 서있어 주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죠. 그렇지 않아도 괴로운 아이 옆에서 엄마까지 걱정을 늘어 놓으면, 아이는 더 괴로워요. 굳이 엄마까지 부추길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윤) 전 그동안 슬픔을 부추기고 있었네요.
신) 살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기잖아요. 그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쁜 결과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선 안 됩니다. 얼마든 좋아질 수 있어요. 그걸 믿는 게 바로 긍정의 힘입니다. 그런 힘을 아이에게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엄마가 옆에 있다고 알려주면 됩니다.특히 기석이처럼 예민한 아이에겐 이 방법이 정말 효과적이에요.
윤) 예민한 아이에게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 따로 있는 건가요?
신) 불안감이 높은 아이들은 부모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옆에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면 안정감을 느낍니다. 어머니는 기석이에게 “이거 해볼래? 저걸 해볼까?” 하셨잖아요. 그런 식의 다른 제안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에요. 위안을 주니까요. 무엇보다 부모가 의연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별일 아닌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나?’라고 생각합니다.
윤) ‘엄마가 내 일에 관심이 없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죠?
신) 말씀드렸듯이 “네 옆엔 엄마가 있어.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도 널 보호할 거야”라고 안심은 시켜줘야죠. 그러면서 묵묵히 지켜 봐주는 거죠.
윤) 생각해보니 저 어렸을 때 엄마가 이렇게 말해주면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아요.

자신을 먼저 다스려라,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신)잘 버티려면 어머니가 먼저 자기 불안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해요. 걱정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걱정해야죠. 그런데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어머니 정신 건강만 해칠 수 있어요. 불안도 더 커질 거고요.
윤) 맞아요. 순간순간 울컥 짜증 나고, 잠도 잘 못 자요.
신) 이미 중증이신 것 같아요.
윤) 최근에 정신과 상담도 받기도 했습니다.
신) 잘하셨어요. 어머니 문제부터 해결해야 아이 옆에서 버티는 엄마가 될 수 있어요.
윤) 제 문제와 상관없이, 아이 옆에서 버티는 엄마가 되어 줄 수는 없을까요?
신) 글쎄요, 그게 가능할까요? 스스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데,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어요. 아이들은 모든 걸 부모로부터 배웁니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죠. 만약 어머니가 문제를 회피하면 아이들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건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문제가 생겼으니 일단 해결부터 하자”라고 강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도 그렇게 할 거고요.
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이 올까 싶네요.
신) 보세요, 또 걱정부터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날이 오겠느냐고 걱정하면 안 와요. ‘그런 날이 오게 하려면 내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야 하나’ 생각하세요. ‘혹시 우리 아이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게 있나’ 이런 것도 찾아보시고요. 불안한 생각이 들면 ‘아이고, 내가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하면서 떨쳐내야 합니다.
윤)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신) 어머니 스스로 조절이 안 된다면, 꼭 전문가 도움을 받으세요.
윤) 열심히 치료받겠습니다. 저 자신뿐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요.

문제 키우는 건 부모, 자기객관화 하라 

신) 제가 어머니에게 강하게 말하는 건 스스로 극복이 어려운 수준까지 갔다는 판단이 들어섭니다. 다른 이유도 하나 있어요. 부모들이 대부분 자신의 문제를 아이의 문제로 치환하는 경향이 있어서죠.
윤) 제 문제를 아이의 문제로 치환한다고요? 무슨 뜻일까요?
신) 아이 걱정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는 양육자는 자신이 아이 때문에 걱정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걱정은 아이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양육자 스스로 하는 거예요. 아이는 작은 돌멩이 하나 던졌을 뿐인데 이걸 쓰나미로 부풀리는 건 양육자라는 말입니다. 
윤) 제가 문제를 키웠다는 건가요?
신) 큰 아이 키우면서 저라고 걱정 안 했겠습니까. 저도 별생각을 다 했어요. 쓰나미가 정말 많이 왔어요. 그런데 전 정신과 의사잖아요. 정신 분석이나 심리 치료의 원리를 잘 알기 때문에 남들보다 쉽게 폭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정신 분석과 심리 치료의 가장 기본이 뭔 줄 아시나요? 바로 ‘자기 객관화’입니다. 자기 객관화가 뭔지 비유를 해드릴게요. 일단 내 마음속 쓰나미를 가라앉혀 잔잔하게 만듭니다. 불안을 없애는 작업이에요. 그다음 돌을 던진 아이를 다시 봅니다. 그럼 쓰나미가 아니라 그저 돌멩이 하나가 만든 크지 않은 파도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물결을 만든 돌멩이의 크기나 모양도 제대로 보이고요. 돌멩이를 객관적으로 봐야 치울 수도 있는 겁니다.
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렇게 실천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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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 예민한 아이, 회복탄력성 낮을 수도 

신) 마지막으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기석이는 편식도 심하고, 잠도 늦게 자잖아요. 예민한 기질의 아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런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낮은 경우가 많아요. 어려운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여기에 적응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약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윤) 그런 게 아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나요?
신) 그럼요. 색약이라 파일럿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다’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근데 예민한 아이들은 이렇게 넘기기가 힘든 거죠.
윤) 그렇군요.
신) 혹시 아이가 학업에 어려움을 느끼진 않았나요?
윤) 초등학교 저학년 땐 학업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는데요. 고학년이 되고 나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수업 따라가는 것도 어려워하고요.
신) 기석이는 심리 검사를 꼭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인지 수준과 정서 상태가 걱정돼요. 지능(IQ)도 좀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고요.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색약 판정까지 받으니 아이가 자포자기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바꿔 말하면, 아이가 의기소침하고 우울해 하는 직접적 원인이 색약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윤)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신) 심리 검사를 했는데 만약 인지 능력이 괜찮다, 그런데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정서 문제입니다. 정서는 쉽게 말해 감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와 끈기가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단단한 정서 상태에서 나옵니다. 기복이 별로 없는 안정적인 감정 상태 말입니다. 그래서 기석이처럼 예민해 마음이 잘 흔들리는 아이들은 머리가 좋아도 공부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나 못해” 그러면서 물러납니다.
윤) 아, 그렇군요. 정말이지 기석이가 딱 그래요.
신) 이런 경우 감정을 조절을 할 수 있게 치료하면 많이 좋아집니다. 그러면 지능도 같이 올라가고요.
윤) 교수님께서 생각지도 못했던 포인트를 짚어주신 것 같아요.
신)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가 그동안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라도 빨리 소아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아이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자신감을 찾을 거고요. 그 뒤에 장래에 대해 고민해보면 잘 풀릴 겁니다. 힘내세요, 어머니.

신의진 교수의 총평 및 솔루션

① 양육자는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걱정은 문제의 크기도 키우죠. 문제를 키우는 건 양육자 본인일 수 있어요. 내가 그렇지 않은지 객관적으로 살펴보세요.
② 아이가 낙심한다면, 뭔가를 해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그런 상황에 휩쓸리지도 말고요. 의연하세요. 그러면 아이는 ‘별일 아닌데 내가 유난인가?’라고 생각할 거예요. 불안도 현저히 줄어들고요.
③ 기질이 예민할수록 ‘회복 탄력성’이 낮을 수 있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높다는 건데요. 이런 아이라면 병원에서 심리 검사를 꼭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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