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 파티' 당당했던 女총리, '관저 사진'엔 고개 숙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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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사진은 찍지 말았어야 합니다."  

산나 마린(37) 핀란드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자신의 친구들이 관저에서 찍은 부적절한 사진에 대해 사과했다. 반면 그는 지난 18일 영상 유출로 공개된 자신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에 대해선 "나는 여가 시간에 친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합법적인 일을 했다"며 당당했다.  

파티 영상 유출과 부적절한 관저 사진으로 잇따른 논란에 휩싸인 마린 총리. 그는 두 사안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고 각기 다른 대응을 한 것일까. 이번 논란은 공직자의 사생활과 적절한 처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촬영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의 모습. 그는 파티를 즐기는 영상이 유출되고, 친구들이 관저에서 찍은 부적절한 사진이 유포돼 논란에 휩싸였다. AP=연합뉴스

지난 5월 촬영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의 모습. 그는 파티를 즐기는 영상이 유출되고, 친구들이 관저에서 찍은 부적절한 사진이 유포돼 논란에 휩싸였다. AP=연합뉴스

핀란드의 작가이자 커뮤니케이션 박사인 마리아 헤이노넨은 23일 CNN 기고에서 마린 총리의 파티 영상 속 모습에 대해 "핀란드인들은 이를 비난하기는커녕 일부 사람들은 마린 총리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롤모델로 보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촬영에 응한 파티 영상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판단력 부족'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총리의 사생활이 아닌, 이를 관리하는 방식이란 의미다.   

마린 총리 "판단은 국민 몫"...핀란드 내 여론은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파티 영상이 유출된 다음 날인 지난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파티 영상이 유출된 다음 날인 지난 1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린 총리는 핀란드 가수, 방송인 등 유명 인사들과 격정적으로 춤을 추며 파티를 즐기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후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품위를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마린 총리는 "숨기는 것도, 숨길 것도 없다"며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2022년엔 의사 결정권자들도 춤추고 노래하고 파티에 가는 것이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며 일국의 총리도 여가 시간을 즐기는 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사적으로 촬영된 해당 영상이 공개될 줄 몰랐다"고 안타까움을 표명하며 "그것(파티 모습)에 대한 판단은 유권자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제기해 응한 마약 검사에선 음성 결과를 받았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파티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 18일(현지시간)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파티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유튜브 화면 캡처

헤이노넨은 "마린 총리는 정치인도 삶의 평범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줬다"며 "정치인들도 잠시 긴장을 풀고 쉴 수 있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는 말을 실천했다"고도 평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핀란드 내 여론조사(성인 1275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마린 총리는 파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는 응답 비율(21%)보다 '총리도 여가 시간에 쉬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이 42%로 더 높았다.  

"男정치인 골프와 비슷한 것" 

마린 총리는 2019년 12월 34세에 총리직에 오르며 당시 세계 최연소 현역 총리 기록을 세웠다. 2020년 오랜 연인과 결혼해 네 살 딸을 두고 있다. 그는 어린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생활고를 해결했고, 20대 초반 대학생 신분으로 사회민주당(현 집권 여당) 모임에 참여하며 정치 경력을 쌓았다고 한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운데)가 지난 6월 스웨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석해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왼쪽), 요나스 가르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운데)가 지난 6월 스웨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석해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왼쪽), 요나스 가르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는 총리가 된 이후 지난 3년간 코로나19 대응을 포함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단 평가를 받는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핀란드가 지난 수십 년간 고수해온 군사 중립 정책을 깨고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신청을 주도했다. 마린 정부에 대한 핀란드 내 지지율은 55%로 높은 편이다. 독일 빌트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정치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헤이노넨은 "마린 총리는 취임 초기 전통적으로 나이 든 남성들이 지배해 온 거친 정치 세계에서 총리직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이란 경멸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침착함과 전문성으로 이를 이겨냈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번 논란은 마린 총리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커졌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멜라니 맥앨리스터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젊은 여성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다"며 "마린의 파티는 평범한 것이며 나이 든 남성 정치인들이 골프를 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패션잡지 '트렌디'가 지난 2020년 게재한 산나 마린 총리 화보. 인스타그램 캡처

핀란드 패션잡지 '트렌디'가 지난 2020년 게재한 산나 마린 총리 화보. 인스타그램 캡처

소셜미디어엔 마린 총리를 옹호하는 여성 연대·지지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산나와의 연대'와 같은 해시태그를 붙이고 여성들이 춤을 추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앞서 지난 2020년 마린 총리가 가슴이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찍은 패션 화보가 논란이 되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그를 지지하는 핀란드 여성들은 그와 비슷한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응원했다.

"문제의 본질은 사생활 관리 미숙과 비상사태 대처"  

그러나 헤이노넨은 마린 총리가 이번에 유출된 영상이 촬영되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영상이 마린 총리가 모르게 찍힌 게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린 총리는 카메라를 응시한 채 도발적인 춤을 췄다"고 짚었다.

이어 "만약 그 영상이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온라인 계정에 공유가 되더라도 유출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며 "마린 총리의 판단력 부족과 순진함이 논란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17일 핀란드 의회에서 나토 가입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투표가 이뤄진 날 의회에 참석한 마린 총리의 모습(가운데).EPA=연합뉴스

지난 5월 17일 핀란드 의회에서 나토 가입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 투표가 이뤄진 날 의회에 참석한 마린 총리의 모습(가운데).EPA=연합뉴스

마린 총리가 관저 사진 논란엔 고개를 숙인 것도 사생활 관리 미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사진은 그의 친구이자 유명 여성 인플루언서 두 명이 관저에서 상의를 거의 벗은 채 촬영한 것으로 소셜미디어에 번져 논란이 일었다. 마린 총리는 이 사진엔 등장하지 않았으나 "지난달 초 록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친구들을 관저로 불러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사진은 그때 찍힌 것"이라며 사과했다.  

헤이노넨은 또 "마린 총리가 파티 등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 만약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그가 바로 대처할 수 있느냐와 같은 문제 제기는 적절하다"고도 했다.    

마린 총리는 지난해 12월 코로나19에 감염된 각료와 밀접 접촉한 뒤 업무 전화기를 집에 두고 새벽까지 클럽에서 친구들과 춤을 추느라 격리 권고 문자를 받지 못한 일도 있었다. 당시 그는 "내가 잘못했다. 나는 상황을 좀 더 신중하게 고려했어야 했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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