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한국 정치수준이었다…국회 운영위 한심한 6시간 54분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2022.08.25 02:00

업데이트 2022.08.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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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앞줄 가운데)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앞줄 가운데)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회 운영위원회는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함께 국회의 핵심 상임위로 꼽힌다. 통상 여당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여야 원내수석부대표가 간사를 맡는다. 여야의 리더들이 운집한 이 상임위에 대한민국 국정을 주도하는 용산 대통령실의 참모들이 23일 총출동했다. 여야의 방패와 창, 그리고 대통령실의 국정운영 비전이 충돌하는 멋진 한판을 기대했지만, 그들이 함께 만든 6시간 54분의 합주는 실망 그 자체였다. 야당의 무딘 창끝, 흘러간 녹음기만 틀어댄 여당의 응수, 정치적 감수성 떨어지는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가세한 C급 퍼포먼스에 “한국 정치 수준이 딱 이 정도”라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①무딘 野의 창끝

야당의 질의는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헛방으로 시작됐다. 신임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불러 세운 그는 “재산 축소 신고 때문에 선관위에서 고발됐잖아요. 그렇죠?”라고 물었다. 6·1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 후보였던 김 수석은 약 16억원의 재산을 신고누락했고, 이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인해 선거일에 각 투표장에 게시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김 수석을 고발한 적이 없다. 김 수석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 않다”고 답해도 강 의원은 막무가내였다. 김 수석이 답변을 하려고 하자 강 의원은 “들어가라”고 말을 막았다. 사실 고발은 민주당이 했다. 강 의원은 결국 30여분 뒤에 “정정하겠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공동취재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공동취재

강 의원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고인돌을 모른다고 면박을 주다가 웃음을 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세계 최대 고인돌이 있었던 것 아냐”고도 물었는데 김 실장이 갸우뚱하자 강 의원은 “실장님, 도대체 아는 게 뭐냐”고 했다. 김 실장이 “제가 고인돌까지 어떻게 알겠냐”라고 답하자 회의장에서 웃음이 터졌다. 강 의원은 청와대 보존의 필요성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데, 경남 김해의 세계 최대 고인돌 훼손 사건과 청와대 사이엔 직접적인 관련성이 크지 않았다.

야당 내부에서도 “솔직히 한 방이 없었다”는 평가가 주였다. 민주당은 대통령 관저 공사 수의계약 논란,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 대통령 취임식 참석자 초청 명단 삭제, 건진법사 이권 개입 의혹을 따져 물었다. 도돌이표 질문이 반복되자 김대기 실장이 “아까 드린 말씀을 또 드릴 수밖에 없다”고 멋쩍어 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됐다. 의원들의 질문은 윽박지르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②시종일관 文만 때린 與

윤석열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는데도 국민의힘의 ‘믿을맨’은 문재인 전 대통령뿐이었다. 전 정부의 실정을 들추며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 모든 정력을 소진했다. 윤 대통령 취임 100일이 지났지만, 모든 걸 “문재인 때는 더 했다”로 돌파하려 했다.

윤두현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자녀는 이중국적에 수십차례 가까운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민심을 외면하고는 낙마 장관이 적었다고 한다. 내로남불이며 적반하장”이라고 말했다. 전 정부의 인사 문제가 현 정부의 인사 난맥상의 면죄부가 되는 것이 아닌데도 이런 주장을 반복했다.

권성동 운영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운영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적채용 논란을 ‘전 정부도 마찬가지’ 프레임으로 물타기 하는 질의도 있었다. 조은희 의원은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등 신종 정경유착 범죄에 연루된 문재인 청와대 인사들의 사적 채용에 대해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금희 의원은 김정숙 여사의 지인 디자이너 딸이 청와대에 채용된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불법적 특혜채용은 반드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낮은 지지율의 이유를 엉뚱한 곳에서 찾기도 했다. 홍석준 의원은 “세계 G7(주요 7개국) 지도자들 (모두) 지지율이 낮다. 글로벌 경제가 굉장히 나빠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경우는 12%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과도한 재정정책을 펴서 국가부채 등 상당히 악영향이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과거 집값 폭등의 이유를 묻는 말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부동산값이 다 뛰었다”고 답변했던 문재인 정부 사람들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③현안 숙지 못한 비서실장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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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비서실장의 태도는 비교적 차분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8·15 집회 주동자를 ‘살인자’로 불렀던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김 실장을 비교하며 자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하지만 김 실장은 현안과 국정의 디테일에 준비 안 된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 “건진법사 전성배를 아는가. 대통령실에서 기업에 조심하라는 ‘워딩’을 줬다고 하더라. 공문인가 구두인가”라고 묻자 김 실장은 “모른다.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 (해당 보도를) 보내달라”고 답했다. 관련 내용은 이달 초 이미 보도된 내용인데 대통령비서실을 총괄하는 그는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다.

김 실장은 야당이 대통령취임식 참석자 명단을 요청하자 “개인정보라고 이미 다 파기를 했다고 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야당이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 기록물은 보관돼있다”고 지적하자 “모르겠다”고 답하는 장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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