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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알면서도 당하는 금리의 역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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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빚투’ ‘영끌’이 회자한 건 불과 3~4년밖에 안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세적으로 나타난 역사적 저금리의 끝단을 장식한 말들이다. 빚내고, 영혼을 끌어모아 투자했다는 표현이다. 이 말 자체에 파국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본격적 금리 인상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동시에 주식·부동산·코인 등 곳곳에서 거품이 빠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의 모습. 연합뉴스

과도한 돈 풀기 정책이 거품 키워
'빚투'라는 용어 자체가 위험 예고
앞으로 같은 실수 되풀이 말아야

왜 거품은 늘 반복되는데도 피하지 못할까. 빚이 쌓이면 이자 부담이 커지고, 돈이 많이 풀리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상식에 주목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이성보다는 동물적 충동이 앞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분석 모델은 무력해지기 일쑤다. 지난해 미국이 대규모 경기부양에 나서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고 했다가 예측에 실패한 이유다.

자신들의 전망이 수시로 빗나간다는 것을 경제학자들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연초 경제성장률 예측치와 연말의 실제치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증권시장의 주가 전망은 더 심하다. 어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가 오늘 폭락하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온갖 비관적 해설을 갖다 붙이며 설명을 바꾼다.

역동적 경제 상황을 설명하려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해졌다. 20세기 말부터 기존 경제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등장한 행동경제학이 대표적이다. 이미 노벨 경제학상의 단골 주제가 됐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먼은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다. 인간은 똑같은 금액인데도 손실 가능성이 있으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상식적인 것이지만 기존 경제학에서는 주목하지 못했던 일이다.

타인의 선택을 슬며시 유도한다는 내용의 『넛지』를 펴낸 리처드 세일러 역시 2017년 행동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행동경제학의 범주에서 경제를 설명하는 경제학자가 근래 적지 않다. 기존 경제학이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다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감성을 중시한다. 감성 능력은 알려진 지 오래됐고, 감성 전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명쾌하게 증명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기에 이성보다는 직관이나 감성·감정이 앞서는 때가 많다. 과도한 빚을 내면 언젠가 금리의 역습을 당할 것이란 걱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원동력인 욕망과 부화뇌동의 인간 심리가 어우러져 감당하지 못할 빚을 낸 사람이 많다. 몇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은 과도한 부채는 언제든 부메랑이 될 수 있고, 부동산 불패 역시 금리 충격 앞에선 맥없이 무너진다는 냉엄한 현실이다.

경제위기에 버금가는 최근 글로벌 경제 불안 역시 거품 경제를 붕괴시키는 계기가 된다. 지금의 세계적 금리 인상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정쟁과 포퓰리즘에 휘둘려 방만한 재정과 과도한 저금리를 지속시킨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나타나자 2020년 3월부터 막대한 재정 확장과 함께 제로금리에 나섰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파로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리면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전 세계가 올해부터 앞다퉈 금리 인상에 나섰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경고한 대로 돈줄의 고삐를 조이는 타이밍을 놓쳤다.

저금리는 부동산시장을 달구고 코인시장에서 일확천금의 꿈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금리가 급등하자 거품이 꺼지고 있다. 경기 하강 와중에 주택담보대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가계는 불어난 대출이자 상환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집값 하락으로 전셋값이 집값에 육박한 깡통전세도 속출하고 있다. 저금리의 역습이다. 교훈 한 개는 꼭 얻어야 한다. 다시는 저금리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