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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여소야대라는 냉정한 시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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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당선되더라도 2년 내내 야당과 싸우게 될 겁니다. 그러다 2024년 총선에서 다행히 다수당이 된다면 남은 3년 간 해보고 싶은 것 좀 해볼 수 있겠죠.”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던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그는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합부동산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완화가 ‘부자감세’라며 회의에 불참했다. 기재위 구성 상 국민의힘 단독 처리는 불가능하다. 김성룡 기자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종합부동산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대해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부세 완화가 ‘부자감세’라며 회의에 불참했다. 기재위 구성 상 국민의힘 단독 처리는 불가능하다. 김성룡 기자

 아니나 다를까 새 정부 출범 이후 여야는 끊임없이 대립 중이다. 대선이 0.73%포인트 접전으로 치러진 데다 차기 총선에 국회의원들의 생사가 달려 있으니 쉽사리 갈등이 줄어들 것으로 보기 어렵다. 민주당에서 대선 경쟁자였던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로 뽑히는 수순이고 최고위원들도 강성 인사들이 우위를 보이고 있어 향후 대여 공세는 더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국정과제 법제화 없인 무용지물
국민 지지 필수인데 또 악재 돌출
대통령과 내각, 야당과 대화해야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에서 여소야대는 빈번했다. 소수 여당으로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됐다. ‘DJP 연합’으로 시작한 김대중 정부 때 과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은 총리 인준을 거부했고, 정권이 야당 의원을 여당으로 데려와 과반을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여소야대 국회에서 탄핵에 직면했다가 역풍이 분 총선에서 여대야소를 맛봤다. 하지만 지금은 ‘의원 빼 오기’ 같은 인위적 정계 개편이 사라진 시대다. 이런 목적으로 검찰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압박했다가는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왼쪽)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우선실천단 제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왼쪽)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우선실천단 제3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정부에 여소야대라는 조건은 냉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대선 때 공약을 발표하고 인수위원회를 거쳐 출범 100일을 맞은 정부가 국정과제를 내놓았지만, 국회에서 법제화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인 게 대다수다. 당장 정부가 1주택자 종부세 공제 기준을 14억원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에 민주당이 반대한다. 이를 다룰 기재위 26명 중 국민의힘 의원은 10명뿐이라 단독 처리는 불가능하다. 법무부가 시행령을 고쳐 ‘검수완박’(감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되돌렸다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여권은 그래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야당이 무리한 반대에 나설 경우 이를 극복할 힘은 여론의 지지 밖에 없다. 취임 초기 국정 지지율 폭락이 심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속히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하면 집권 초기 황금기를 허송세월 하는 것은 물론이고 총선 결과가 나쁘면 말 그대로 ‘식물 대통령’이 될 위험이 따른다.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이 과감하고 신속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준석 전 당 대표가 윤 대통령을 ‘신군부’에 비유하며 갈등하고 있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건재한 여당 지도체제의 운명은 판사의 손에 달려 있다. 경호상 대외비인 대통령의 지방 방문 일정이 부인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을 통해 버젓이 공개되는 요지경이 여전하다. 이러니 정권 차원의 다짐에도 근원적 처방을 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진표 의장을 비롯한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초청, 만찬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김진표 의장을 비롯한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초청, 만찬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이 앞장서 야당에 손을 내밀고 대화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일 때 건강보험 개혁입법(오바마 케어)을 통과시켰지만,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을 빼앗기면서 동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집권 2기에 치러진 2014년 중간선거에선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석권했다.

 여소야대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민 개혁 등에 행정명령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입법과 같은 효과를 내는 대통령의 행정명령 제도가 한국에는 없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야당과의 긴밀한 스킨십이다. 오바마는 취임 후 일주일 만에 의회를 찾아 공화당 지도부를 만나고 자주 통화했다. 당장 효과가 나진 않았지만, 여야 의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TV로 슈퍼볼을 함께 봤다. 공화당 하원의장과 협치를 하자며 골프를 함께 치거나 공화당 의원들과 백악관 만찬 회동을 하는 등 야당을 향한 정치에 공을 들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설전을 벌였다. 김성룡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왼쪽)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설전을 벌였다. 김성룡 기자

 야당 설득에는 여당 지도부와 장관도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관련 수사나 감사가 다수 진행되면서 민주당이 ‘정치 보복’이라고 반발하는 만큼 진실 규명 작업은 신속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야당 측의 견제가 집중되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국회 법사위 등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야당 의원들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모습도 바람직하지 않다. 새 정부가 지지율 회복으로 고전하는 와중에 야당과의 설전에서 잘했다며 청사에 트럭으로 배달된 꽃다발을 보고 흐뭇해 할 때인가. 국정을 맡긴 국민에 대한 소임을 실천하려면 집권 핵심은 냉철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로 여소야대라는 냉정한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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