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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허준이와 임윤찬이 부럽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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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사람은 살면서 누구든 힘든 일을 겪는다. 재난이나 질병, 가족의 죽음 같은 것부터 며칠 밤새워 쓴 보고서를 직장상사로부터 퇴짜맞는 것까지 우리가 경험하는 역경이나 좌절은 무수히 많다. 다만 어떤 이는 그 어려움에 굴복하여 스스로 깨져버리는 유리공이 되지만, 또 어떤 이는 난관에 부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고 더 높이 튀어 오르는 고무공 같은 사람이 된다. 요즘같이 변화무쌍하고 거친 세상에서 점점 더 움츠러드는 우리 모습을 보며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능력 ‘회복탄력성’에 관심이 집중된다.

회복탄력성이 작동하는 기제를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크고 작은 좌절을 겪었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격적 행동이 발동한다. 만일 그 공격성이 내부로 향하면 자기학대 또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외부로 향하면 타인에 대한 적대적 행동으로 표출된다. 좌절을 겪을 때마다 자신이나 타인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삶은 성공적이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좌절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마음의 근력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부모부터 달라져야 자녀도 행복
입시경쟁에 올인하면 불안 가중
아이들 ‘마음의 근육’ 키워줘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럼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일부 작용하지만 많은 부분은 후천적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역경을 헤쳐나가는 강인함 자체보다 어려운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배우고 개발할 수 있다. 따라서 회복탄력성은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부모의 교육방식과 학교생활을 통한 경험과 관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들 부모가 특별한 방식으로 자식을 대했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재능을 북돋워 주거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위대한 과학자로 존경받는 아인슈타인이지만 어린 시절 담임교사는 학업 지진아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라며 끊임없이 격려했다. 그가 고등학교 중퇴자이며 대학에 힘들게 들어가서도 성적이 좋지 않아 취직하기 어려웠지만 “너는 남과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을 거다”라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격려가 인생의 나침반 구실을 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 가운데 아인슈타인과 달리 부모의 따뜻한 격려를 받지 못한 사람도 많다.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들던 시절 학교 선생님들이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못 싸 오거나 상급학교 진학이 막힌 학생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고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특히 학교 교육의 역할과 가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났다. 학교가 문을 닫자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였고 연쇄적으로 사회적 기능에 차질을 빚었다. 더군다나 취약계층의 자녀들은 열악한 비대면 수업 여건으로 학력이 저하됨은 물론 학교 급식을 받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런데 부모의 관심과 격려가 자식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이어진 곳이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 경제적 파산 상황에 내몰린 부모가 극단 선택을 하면서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면서, 또는 자녀의 꿈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이 의사 만들려고 ‘초등생 의대반’ 학원에 보내는 우리의 부모들을 보면서 말이다. 자식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이 자녀를 과잉 경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우리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점수가 뒤처지는 과목을 학원에서 보충해 전체 평균 점수를 올리려 한다. 학생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하지만 자녀교육으로 명성 높은 유대인 부모는 아인슈타인 부모가 그랬듯이 뒤처지는 과목은 무시하고 아이가 잘하는 과목을 더욱 북돋워 주어 그것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게 한다.

초·중등학교 시절 교육의 목표는 대학 입학이라는 정점을 향해 달리고 대학교육 시절에는 취업에 매달린다. 지금 청년들은 앞선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학교에서 점수경쟁을 치르고 사회에 나왔지만 수시로 바뀌는 성공방정식에 어떻게 적응하고 돌파구를 마련해나갈지 망막하다.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행복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이들의 삶이 활기차고 즐거울 수 있으려면 인생을 역경으로부터 지켜줄 마음의 근력을 키워줘야 한다. 수학자 허준이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부럽다면 학원에 등록하는 것보다 자녀가 꿈꾸도록 기다리는 부모 연습을 권하고 싶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