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구루와 목민관 대화 | 오영훈 제주지사와 주강현 박사가 말하는 '디아스포라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22.08.24 15:00

“태평양으로 열린 남방(南方)정책의 거점, 제주”

“100년 전 일본, 중국, 동남아로 진출한 제주인 후손 네트워크 활성화”
“관광객 단순 유치보다 국적의 다변화, 인종의 다양성 확대에 역점”
“정부 SOC 프레임에서 배제된 제주에 해운, 물류 기능 강화는 필연”

8월 5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난 오영훈(오른쪽) 제주도지사와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 두 사람은 제주도가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동남아와 일본, 나아가 세계로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8월 5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난 오영훈(오른쪽) 제주도지사와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 두 사람은 제주도가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동남아와 일본, 나아가 세계로 확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도는 대한민국 역동성의 상징이다. 관계망과 변화상만을 놓고 보자면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전면적으로 개방된 고장이라고 할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200년 이상을 제주도는 조정의 출륙(出陸)금지령에 묶여 물리적으로, 또 정치·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섬이었다. 해방 후로도 오랫동안 제주도는 금단의 땅이었다가 1960년대부터 감귤 재배와 관광 등으로 육지와의 교류가 트였다. 그제야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주변 사회’에 편입됐다는 게 학계의 진단이다.

오랜 세월 외부의 힘으로 ‘간직당한’ 의식, 문화와 자연의 응축된 힘이 21세기 들어 전방위로 분출되는 느낌이다. 세계적 휴양지로 각광받는 요즘의 제주는 밀려드는 국내외 관광객 교통정리에 나서야 할 지경이다. ‘은퇴자 한 달 살기’ 등 단기 체류가 유행하는 제주도는 어느새 관광과 힐링의 아이콘이자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으로 입지를 다졌다.

제주는 새로운 꿈을 꾼다. 육지에서 보면 제주는 변방이지만 제주에서 보면 역으로 육지가 갇힌 섬과도 같다. 대한민국의 북쪽은 휴전선에 막혀 있다. 남쪽으로는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려 있다. 한반도 지도를 거꾸로 펼치면 그 최상단에 제주도가 자리한다.

이런 지정학적 인식을 기반으로 더는 자연환경에 기댄 농업과 관광 등 1차 산업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게 오영훈 제주지사의 다짐이다. 기존의 인적 네트워크를 발판 삼아 대한민국의 경제 영토를 동남아와 일본, 나아가 세계로 확장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오 지사는 이를 ‘신(新) 남방정책’이라 부른다. 한 세기 전부터 동아시아 일대로 퍼져나간 제주인들의 글로벌 커뮤니티와 공동체 의식, 즉 ‘제주 디아스포라’를 이런 역동성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또 제주의 산업지도 역시 ICT 산업과 같은 디지털 경제와의 접목을 시도한다.

해양문명사가이자 제주대 석좌교수를 지낸 주강현 박사는 제주의 오랜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에 기초한 발전 전략을 강조한다. 1980년대 초 청년 시절부터 제주의 역사, 문화, 자연을 탐사한 그는 제주도 애월에 살면서 2011년 [제주기행: 키워드로 읽는 탐라학 개론]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제주도가 천혜의 자연성이라는 기존 서사 구조에 머물 게 아니라 태평양으로 열린 세상의 연결 중심점으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8월 5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구루와 목민관 대화’에서 오 지사와 주 박사는 글로벌 원심력이 강하게 작동하는 제주도의 도약과 확장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제주에서 일어난 세계사적 사건들

제주 관광을 홍보하는 ‘제주 마르쉐 2022 in 오사카 코리아타운’ 행사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제주 관광을 홍보하는 ‘제주 마르쉐 2022 in 오사카 코리아타운’ 행사가 지난 5월 일본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제주는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몇 안 되는 지자체다. 앞으로 제주도가 보여줄 열정의 요체가 궁금하다.

오영훈 제주도지사_ 코로나19 팬데믹 대전환의 시대라는 얘기를 하는데 우리 제주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가진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기반해 현재 좌표를 분명히 해야 할 때가 왔다. 제주의 역사는 1919년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해녀항일운동, 4·3 등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여정이었다. 그 역사적인 일을 함께해낸 제주인의 강인한 DNA는 제주가 한반도의 변방이 아니라, 인류의 가치를 이끄는 세계사의 중심임을 증명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_ 제주인 불굴의 DNA에서 새로운 제주의 미래를 찾자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제주도는 ‘섬-해양 문명’의 원형질을 간직하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모여드는 문명의 용광로 같은 성지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런 고유의 자산과 새롭게 융합된 문화 다양성을 바탕으로 태평양으로 나가는 관문으로서의 제주 역할에 주목할 때가 왔다.

제주의 미래는 과거와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제주의 역사, 정서의 요체를 설명하자면?

오 지사_ 제주는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상 강국 탐라국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 들어 공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주민들이 섬을 이탈하자 조정은 허가 없이 육지를 왕래할 수 없도록 출륙금지령을 내렸다. 근대에 와서는 4·3이라는 질곡이 강요된 섬이다. 제주는 이런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고장이다. 4·3만 해도 평화의 역사로 전환시키면서 세계인들에게 공존과 관용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전 세계의 모든 변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곳 제주에서도 제주의 방식과 형태로 벌어진 것 같다. 제주의 관점에서 보면 특수한 사건이지만 인류사에 투영해보면 보편적인 현상이 되는 일들이 제주에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제 관점이 변하고 있다. 서울 중심으로 보면 제주는 변방이지만 태평양에서 보면 제주는 한반도의 전진기지다. 섬과 바다를 씨줄로, 역사를 날줄로 교직하는 스케일로 제주도의 꿈과 이상을 사고(思考)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제주 인구 25%가 일본 거주

6월 15일 싱가포르와 제주를 잇는 스쿠트항공 TRB12편을 타고 제주국제공항에 입국한 싱가포르 관광객들이 오영훈 당시 제주지사 당선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6월 15일 싱가포르와 제주를 잇는 스쿠트항공 TRB12편을 타고 제주국제공항에 입국한 싱가포르 관광객들이 오영훈 당시 제주지사 당선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주 전 교수_ 100년 전 일제강점기 제주인들이 먹고 살 길을 찾아 일본, 중국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근 현대 격변을 겪으면서 제주는 엄청난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국에 사는 공동체)의 본산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해외에 나간 수많은 제주인과 그 후손, 현지의 한인 사회가 지금도 건재하다. 디아스포라는 가난과 비극의 산물이긴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제주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초석이 된다는 양면성도 지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의 군수산업 인력 부족을 메우고자 한반도 주민들이 일본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에서도 많은 분이 일본으로 가서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일부는 공부도 하고 돈도 벌었다. 그분들이 나중에 제주 근대화의 디딤돌이 됐다. 일본에서 번 돈으로 제주에 와서 학교를 짓고 감귤 묘목을 재배하는 등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분들이 많았다. 해외로 뻗어나간 제주인과의 교류와 협력은 제주도에 새로운 발전의 기회를 제공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제주 사람들은 제주도와 오사카를 마치 이웃집 드나들듯이 자주 왕래했다고 [문화인류학자의 자기 민족지 제주도]의 저자 유철인 전 제주대 교수는 기록한다. 1934년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제주 사람은 약 5만 명이며 당시 제주도 총인구의 25%에 이른다는 일본 통계도 있다. 유 전 교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제주 사람의 생활권이었다. 유 전 교수는 “오사카의 제주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주택 사정이 열악하고 생업에 종사하느라 자식을 고향에 있는 부모나 친척에게 수년 간 맡겨놓는 일이 제법 많았다”고 썼다.

오 지사_ 그래서 제주는 다양성의 고장이라고 불린다. 유무형의 자원도 엄청나다. 제주에는 1만8000의 신이 있어 ‘신들의 고향’이라고도 불린다. 제주의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됐다. 또 4·3 과정을 화해와 상생으로 극복해내는 등 세계 시민들에게 보편적 평화의 메시지를 발산한 곳이 제주다. 다양성 존중의 정신이 근저에 깔린 제주이기에 더 보편적인 가치에 충실할 수 있고 그게 제주 지향점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나아가 제주의 정신이 세계적으로 뻗어갈 토대가 된다고 하겠다. 특히 제주는 남방(南方)정책 주역을 자임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가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로 가는 남방정책을 추진했는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발전을 선도하는 제주 신(新)남방정책의 전진기지로서 제주의 위상을 프로그램화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신남방정책은 제주 외연 확장의 포석인가?

오 지사_ 앞서 언급한 탐라국은 해상 중개무역의 거점이었다. 이런 역사를 이어받고 제주가 지닌 지리적 이점을 살려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제주 경제의 외연을 확대하고 제주인들의 활동반경을 키울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태국을 필두로 동남아 직항이 증가하는 추세에 비례해 제주를 찾는 동남아 관광객 수도 늘고 있다. 문화·사회 교류라는 면에서 동남아와의 접점 확대는 남방정책의 또 다른 청사진이 될 수 있다. 특히 제주의 게임 기업들도 동남아 국가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적절하게 대응하면 상호 발전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주 전 교수_ 제주에는 원래 덕판선, 덕판배라고 제주 특유의 배가 있었다. 험한 파도를 넘어 운항하는 데는 아주 견고하고 빠른 배가 필요했다. 출륙금지령 이후 큰 배를 만들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은 그 원형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사실 덕판선은 말을 실어낼 정도로 아주 스케일이 큰 배였다. 덕판배의 강제적 소멸이 상징하듯이 우리는 역사적으로 묶이고 축소되었던 해양성을 되살려내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 시대의 전환점, 혁신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발단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주변부에서 비롯된 변화의 동력이 중심부를 바꾸는 것이다. 세계와의 접점을 이루는 제주도 역시 정체된 대한민국에 영감과 자극의 출발점이 될 듯하다. 오 지사께서 말하는 신남방정책은 과거 정부의 시책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닌, 새 시장으로 부상하는 동남아를 향한 과감한 도전이다. 나아가 중국에 편중된 해외 관광객을 동남아로까지 넓게 확산하자는 방향 전환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최근 개설에 합의한 제주-싱가포로 노선은 제주와 동남아 허브공항의 연결을 상징하는 뜻깊은 사례다.

“제주, 헌법에 보장된 이동권 크게 제약받아”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

오 지사_ 그 기조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게 뭔가, 무엇을 선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관광만 해도 제주는 단순한 양적 관광에서 질적 관광으로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다른 시·도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우리는 그 단계를 초월했다. 관광객 국적의 다변화, 인종의 다양성 확대에 역점을 둔다. 또 보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자기 내면의 성숙을 끌어내는 관광을 추구한다. 제주를 찾는 분들이 한라산과 오름, 바다 등지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소중한 힐링 기회를 갖길 바란다. 제주가 세계의 관광 트렌드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 전 교수_ 이 자리를 빌려 제주도의 바다 자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정부에서 많은 권한을 이양받았는데 바다 영역에서는 자치권을 온전하게 가져오지 못했다. 제주도가 육지 중심의 법제에 묶여 있다 보니 수온 변화에 따른 어종과 어획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 제주도의 면적은 작지만, 바다 영토는 한반도 전체 바다 영토의 대략 20%를 차지한다. 지금 제주도의 해양 권한이란 게 연안항 관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관련 사무와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물류가 제한되다 보니 제주 사시는 분들이 늘 느끼듯 물가가 비싸다. 배송 서비스도 취약하니 택배비도 육지보다 높은 편이다. 총체적인 ‘바다 자치’의 실현이 시급한 상황이다. 다행히 오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국회 해양문화포럼의장이자 농림해양수산위원으로 활동했기에 바다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가 각별하다.

“제주 신항만에 화물 선석, 표준 컨테이너 설치해야”

오영훈 제주도지사.

오영훈 제주도지사.

오 지사_ 대한민국 17개 시·도가 있는데 내륙의 16개 시·도는 한반도의 일부로 연결돼 있어 고속도로, 철로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제주도는 섬으로 육지와 떨어져 있어 대한민국이 제공하는 ‘간접자본’의 프레임에서 빠져 있다. 섬이다 보니 이동성도 떨어진다.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일정한 이동 규모와 유동성이 필수적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철도, 고속도로 같은 교통편이 없다 보니 비행기나 배편을 이용해서만 육지로 나가야 한다. 운송 수단 제약은 필연적으로 물류 부족과 비용 상승을 부른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다른 곳보다 크게 제약받는 제주의 현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를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동성을 보장하자면 제주와 육지를 잇는 배편이라도 충분히 운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는 국가의 예산을 여타 시도와의 형평에 맞춰 제주에 투여해야 한다.

얼마 전 발행된 책 [운전하는 철학자]에서 정치학 박사이자 모터사이클 정비사인 매슈 크로퍼드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에게 이동의 자유란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자유이자 기본적인 동물적 쾌락의 최소 조건”이라고 했다. 제주인들이 콕 찍어 말은 못해도 그동안 느꼈을 답답함, 무력감이 이 지역의 저변 정서에 깔렸을 법도 하다.

주 전 교수_ 해상 운송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 수도권에서 제주로 오는 배편이 사실상 끊겼다. 최근에 인천-제주 카페리 노선이 복원되기는 했지만 한국의 소득 수준으로 볼 때, 누구나 쉽게 타기는 어렵다. 게다가 아직도 사람들에게는 세월호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 웬만한 수준의 배가 아니면 타길 꺼려 한다. 수도권에 나라 인구의 절반이 산다. 이분들이 제주로 오자면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육상을 통해 목포나 완도로 와서 페리를 이용해야만 한다. 인천항이든 평택항이든 크고 안전한 최신 여객 전용 쾌속선을 띄우고 정부가 비용을 일부 보전해야 하는데도 해양수산부는 이에 미온적이다. 육지에 사는 분들은 KTX, GTX 등 각종 교통 인프라 혜택을 누리는 반면, 제주는 국가 인프라에서 소외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오 지사_ 제주항에는 화물을 선적하는 화물 선석(선박 계선 시설을 갖춘 접안장소)이 없다. 신항에도 크루즈 선석만 반영됐을 뿐이다. 제주 입장에서는 제주 주민의 편의를 증진할 생필품을 원활하게 공급받는 화물 설비가 더 절실한데도 말이다. 제주 신항만 개발 계획에 화물 선석을 포함하는 쪽으로 설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화물 선석을 둘 정도로 제주의 물동량이 많지 않다는 입장인데, 역으로 생각해보면 화물 선석이 확보돼야 물동량도 늘어나는 법이다. 그래야 환적항으로서 제주의 기능도 기약할 수 있다. 화물 선석이 갖춰지면 중국 화물선이 제주를 거쳐 일본으로 갈 수 있지만, 현행 구조로는 제주에 올 이유가 없다. 화물 선석이 없으면 수출하는 기업들도 부담스럽다. 원자재와 완제품을 오로지 비행기로만 실어 날라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화물 선석 확보는 제가 공약한 20대 상장기업 육성·유치의 요인이기도 하다.

주 전 교수_ 정부가 스마트 컨테이너 물류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도 유독 제주에는 인색한 느낌이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관광으로 가야 하는 제주는 선진형 신항만을 간절히 원한다. 항만 규모를 무작정 키우자는 게 아니다. 작지만 스마트한 항만을 만들어 환경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지속 발전이 가능한 항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와 독일 함부르크는 첨단 시스템을 적용한 스마트 항만을 통해 세계의 물류와 관광을 휘어잡고 있다.

오 지사_ 삼다수의 중국 수출을 예로 들자. 2020년 기준으로 대(對)중국 수출량이 45t에 그쳤다. 제주에서 부산항을 거쳐 중국 상하이로 가야 한다. 물류 이동 거리가 멀어지고 비용도 더 든다. 제주에 화물 선석이 있고 표준 규격 컨테이너가 갖춰진다면 중국 직항 비용은 줄고 수출량은 늘릴 수 있다. 45t이 아니라 4500t도 수출할 수 있다. 어제 제주 삼다수 공장을 방문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자기도 맛이 좋아 삼다수만 찾는다고 하더라. 중앙정부는 항만과 물류 시스템의 선진화, 스마트화를 요청하는 제주민의 여망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 등 미래산업기술의 전진기지 제주

오영훈(왼쪽) 제주지사와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는 “제주도의 해양 자치권 및 이동성 강화가 지역 발전의 선결 과제”임을 강조한다.

오영훈(왼쪽) 제주지사와 주강현 전 제주대 석좌교수는 “제주도의 해양 자치권 및 이동성 강화가 지역 발전의 선결 과제”임을 강조한다.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은 국가적 현상이자 지자체 입장에서는 인구 유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청년들을 제주에 정착시킬 구상이 궁금하다.

오 지사_ 그건 청년 일자리 창출에 달려 있고, 청년의 거취는 제주의 미래에 직결된다. 저는 ICT(정보통신기술) 등 유망 기술, 미래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제주 유치에 혼신을 힘을 보태고자 한다. 제주가 청정한 자연에 걸맞은 미래산업기술의 작은 전진기지가 되길 희망한다. 사원 주거비, 회사의 물류비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산업생태계 육성에 필요한 스마트 산업단지도 조성하겠다. 해상 운송 활성화와 이동성 확보가 전제돼야 이런 일자리 창출 작업에도 탄력이 붙는다.

주 전 교수_ 제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가슴이 아려왔다. 공무원, 금융기관, 학교 외에는 변변히 취직할 만한 데가 없더라. 정규직으로 취업할 기업 자체가 드물며, 취업 상태도 임시직으로 떠도는 경우가 많다. 제주에 조성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제학교는 그림의 떡이다. 돈이 없어 자녀를 보낼 엄두도 못 낸다. 현지인은 들어가지도 못할 학교에 땅이나 내줄 바에야 국제학교는 왜 유치했느냐는 푸념도 한다.

미래 산업이라면 요즘 블록체인, 메타버스 산업도 주목을 받는다. 블록체인 기술이란 게 탈(脫)중앙 분산 관리를 모토로 한다. 이들 기업이 그들의 이상대로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방에 분산하는 것도 지역발전, 지방자치에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다.

오 지사_ 제주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블록체인 기술뿐 아니라 디지털 자산 육성 차원에서도 접근할 문제라고 보인다. 제주도의 미래는 굴뚝산업보다는 바이오 같은 생명과학이나 해양산업에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수소경제와 생약 기반 바이오, 시스템 반도체, 에너지산업 등 새로운 미래 신산업 육성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나아가 디지털, 미래 모빌리티, 항공우주, 바이오헬스 산업을 주요 타깃으로 잡고 있다.

“연간 1500만 관광객 제주 ‘인구압’ 높여”

제주에는 주민등록 인구 70만 명에다 ‘한 달 살기’ 등 단기 체류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80만 명이 상주한다고도 추정한다. 제주 상주인구 100만 시대가 곧 온다고 하는데 제주도는 이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나?

주 전 교수_ 세계적으로 모든 섬의 미래는 ‘인구압(人口壓)’의 적정성에 좌우된다. 제주도는 인구 압력이 증가하는 중이다. 연 1500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 규모가 적정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지속가능성이다. 기후변화, 온난화, 제주의 지질 자원을 고려해 제주도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총량 개념을 추산하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 인위적으로 개인의 거주와 이동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면 가격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정하게 제어되는 결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환경보전분담금 도입도 중요하다고 본다. 제주도 국민 1인당 생활 쓰레기 발생량이 전국 평균보다 25%가량 더 많다.

오 지사_ 자연환경 보존과 관리 차원에서는 관광객이 넘쳐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다. 적정한 수준에서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며 이와 함께 세계적인 관광지로서 좌표를 확고히 하는 것도 숙제다. 나아가 행정의 효율성과 주민의 참여를 기하기 위해 제주형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2006년에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4개 시·군 체제가 폐지되고 하나의 광역 행정체제로 통합됐다. 현행 제주와 서귀포라는 2개 행정시의 단체장은 임명직이다. 주민의 참여도는 낮아지고 도지사의 권한은 비대해졌다. 분권 자치 시대를 맞아 도지사의 권한을 내려놓는 대신 새로운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하고자 한다. 제주는 섬이라 내부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지역적 구분도 엄연하다. 이를 해결하는 데 도지사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법과 제도 지원도 절실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오 지사는 오는 9월 3~4일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리는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에 관심을 쏟아달라고 당부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현기영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은 제주 4·3평화재단과 제주시가 공동 기획·제작했다. 오 지사는 “전석 무료 공연으로 이뤄지는 행사에 수도권 주민을 정중하게 초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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