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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사라져가는 제주푸른콩장…이걸 찬물에 풀어 마셔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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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강병욱의 제주 식재료 이야기(2) 

된장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식재료 중의 하나이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된장찌개, 회식 때 빼놓을 수 없는 삼겹살은 항상 된장과 함께 먹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고 친숙해진 이 된장은 알고 보면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발효 음식 중 하나이다.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콩이라는 친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데, 이 콩도 알고 보면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콩의 품종은 매우 줄어 10여 종 미만(서리태 콩, 왕태 콩, 울타리콩, 돈부콩 등)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 콩들 중 제주도에서 자라는 푸른콩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주푸른콩은 제주 남부 서귀포 일대에만 자라는 토종 종자 콩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누런색의 콩이 아닌 제주 푸른 콩은 이름과 같이 푸른 색색을 띠고 있다. [사진 강병욱]

제주푸른콩은 제주 남부 서귀포 일대에만 자라는 토종 종자 콩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누런색의 콩이 아닌 제주 푸른 콩은 이름과 같이 푸른 색색을 띠고 있다. [사진 강병욱]

제주푸른콩은 제주 남부 서귀포 일대에만 자라는 토종 종자 콩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누런색의 콩이 아닌 제주 푸른 콩은 이름과 같이 푸른 색색을 띠고 있다. 제주푸른콩은 제주 지역에서도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예를 들어 장콩, 독새기콩, 콩섶, 푸린독새기콩 등이다. 푸린독새기콩의 의미를 풀어보면, 푸른 달걀 콩이라는 말이다. 푸린은 푸른, 독새기는 달걀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제주푸른콩을 실제로 손으로 만져보면 보들보들한 느낌이며, 마치 제주 해변에 있는 이쁜 조약돌을 보는 거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콩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 만주 일대다. 특히 콩의 유적이 발견된 남만주 일대는 고조선의 옛 영토였다. 수천 년 전부터 콩을 재배했던 우리 민족은 콩을 가공해 다양한 먹을거리를 개발했다. 콩에 관한 이야기는 옛 문헌에도 많이 나와 있는데, 1429년 편찬된 『농사직설』에는 콩 재배 기록이 남아있고, 『산가 여록』에는 장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으며, 『증보산림경제』에는 콩으로 메주를 띄우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고구려 유적인 『안악 고분』에도 우물가에 장독대가 나란히 있는 벽화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콩은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함께한 식재료임을 알 수 있다.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 민족은 콩과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단순히 콩을 까 쪄 먹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숙성해 발효한 된장을 만드는 과정으로 발전시켜왔다. 된장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장문화가 중국에도 전파되어, 그 맛을 본 공자가 장을 먹어 보고 쓴 글을 소개하려고 한다. 유가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의 ‘향당편’에는 “장이 없으면 먹을 수도 없다. 오미를 고르게 하고 오장을 기쁘게 함으로써 안락을 얻기 위함이고, 장에는 음식이나 여러 약물의 독을 물리치는 힘이 있기 때문이며, 약으로 치는 것이 콩장이며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다‘라고 설명이 나와 있다.

푸른콩을 사용해 만든 푸른콩장은 일반 판매되는 된장에 비해 큼큼한 특유의 향이 나지 않으며 술향과 약간 단맛이 돈다. [사진 강병욱]

푸른콩을 사용해 만든 푸른콩장은 일반 판매되는 된장에 비해 큼큼한 특유의 향이 나지 않으며 술향과 약간 단맛이 돈다. [사진 강병욱]

푸른콩을 사용해 만든 장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우선 일반 판매되는 된장에 비해 큼큼한 특유의 향이 나지 않으며 술향과 약간 단맛이 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된장찌개는 육수에 된장을 넣고 오랜 시간 끓이는 방식인데, 그 이유는 일반 된장에서 나오는 큼큼한 맛을 없애기 위해서 열을 가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찬물에 장을 풀어서 냉국으로 여름철 많이 먹는다. 어르신에게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니 밭일을 하던 도중 목이 마르면 장을 푼 차가운 냉국에 약간에 식초와 채를 썬 오이를 넣어서 먹으면 막걸리 먹는 것보다 시원하고 탈수 증상을 막아주신다고 하셨다. 장을 찬물에 풀어서 먹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은 두려움과 장 특유의 냄새 때문에 긴장했지만 새로 접해보는 맛이었다. 여기서 좀 더 다른 방식을 소개하면, 회를 넣어서 드신다고도 하셨다. 푸른콩으로 만든 장은 갚은 맛과 향, 단맛까지 처음 접해보는 식감과 맛이었다.

이처럼 신비하고 전통이 깊은 토종 종자인 푸른콩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실제로 제주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방문하면 다양한 콩과 쌀이 나오지만 푸른콩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할머니에게 여쭤보면 아는 분도 계셨지만 모르는 분도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좋은 제주의 식재료인 푸른콩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제주도에서조차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사건으로는 1970년대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1970년대부터 서귀포는 돈이 되는 감귤 농장이 대거 들어섰다고 한다. 자식 대학에 보내려면 다른 작물을 고생해 키우는 것보다 감귤 나무 한 그루 심어 감귤을 팔아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래서 땅이 있는 사람들은 기존의 작물들을 갈아버리고 모두 감귤 나무 심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런 연유에서 여러 토종 작물들은 사라져갔고 우리가 흔히 제주도 하면 감귤이 떠오르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또한 현재 한국은 콩 소비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며 그 또한 많은 GMO 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우리의 전통 콩은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제주푸른 콩장의 향이 배면 좋을 것 같아 삼겹살에 제주 푸른 콩장을 3시간 정도 재워두었다. 재워둔 삼겹살을 팬에 넣어 강불에 살짝 구워주고 슬라이스해 각각 조금 더 구워줬다. 완전히 익은 삼겹살을 한입 입에 넣으니 향긋한 향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일반 된장과는 달리 향과 식감이 좀 더 부드러워졌고, 마지막 큼큼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았다.

콩으로 만든 장에는 예로부터 ‘오덕’이 있다고 했다. 다른 맛과 섞여도 제맛을 잃지 않아 ‘단심’,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아 ‘항심’,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해 주니 ‘불심’,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 주므로 ‘선심’,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므로 ‘화심’이라 하였다. 하나의 식재료에도 이런 뜻 있는 의미를 부여했던 우리의 조상들을 떠올리며,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토종 작물들을 더욱 보존하고 지속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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