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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은밀히 숨긴 곳, 적이 스스로 알린 격…이스라엘 '인지전'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나토의 인지전 연구 보고서 표지. 나토

나토의 인지전 연구 보고서 표지. 나토

19일 대전 자운대의 육군대학에서 이승찬(준장) 총장 주관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연구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는 2부에 걸쳐 다섯 가지 주제로 육군 대학에서 교육 중인 학생 장교들이 발표했다. 세미나에는 육군 대학 학생 장교들 외에도 병과학교, 합동군사대학, 그리고 외국군 위탁교육생 등이 참석해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분석에 관심을 가졌다.

행사에 초청받은 필자는 모든 주제가 흥미로웠지만, 1부 마지막 주제였던 ‘우크라이나군의 인지전’이 인상 깊었다. 인지전(Cognitive Warfare)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권에서는 최근 들어 관련 보고서들이 나오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는 생소한 인지전

국내에선 아직 인지전에 대한 정의조차 없지만, 인간 두뇌의 취약성을 악용하여 개인을 해킹하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표현으로는 인간의 정신적 취약점을 자극하여 불안정하거나 마비시키기 위해 이해와 의사 결정 메커니즘을 변화시키는 전쟁이다. 궁극적으로 표적의 행동에 행위자의 의도를 반영시키되, 행위자의 개입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토는 인지전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에 구분하였던 하늘, 땅, 바다, 우주, 그리고 사이버의 다섯 가지 ‘영역(domain)’에 ‘인간(human domain)’을 포함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가짜 뉴스 등을 이용한 회색지대 전략이 널리 알려졌지만, 인지전은 행동의 변화까지 유도하는 보다 치밀하고 공격적인 전략이다.

인지전은 사이버, 정보, 심리 및 사회공학 능력을 통합하여 이루어진다. 나토

인지전은 사이버, 정보, 심리 및 사회공학 능력을 통합하여 이루어진다. 나토

인지전을 사용하는 것은 물리력을 활용한 전쟁 이전에 승리하기 위해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이버, 가짜뉴스 및 오보, 심리 및 사회공학을 통합하여 인지 영역을 공격한다.

SNS를 이용한 인지전

인지전은 이미 여러 전쟁에서 실행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지전 사례는 주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이루어졌다

러시아군은 2014년 크름반도와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SNS를 이용한 인지전을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벌였다. 2020년에는 아제르바이잔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Nagorno-Karabakh) 전쟁에서 자신들이 아르메니아군을 타격하는 영상을 공개하여 아르메니아군의 전투 의지를 꺾고, 국내에선 국민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하마스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하마스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

이것은 인지전의 낮은 단계로 기존 심리전과 유사하다. 더 발전된 SNS를 이용한 인지전은 2021년 5월 일어난 이스라엘군과 가자지구 하마스 사이의 충돌이었다. 5월 13일, 이스라엘 정부는 언론을 통해 가자지구에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5월 14일에는 이스라엘군이 트위터에 가자 지구 공격을 시작했다고 올렸고, 세계 여러 매체들이 이를 뉴스로 전했다.

하마스는 지상전을 준비하기 위해 지하 시설에 은폐해둔 장비를 꺼냈는데, 이 과정을 무인정찰기 등으로 지켜보던 이스라엘군에 의해 은닉 장소가 들통났다. 이어 정밀 유도무기를 사용하여 확인한 주요 거점을 타격하여 많은 피해를 줬다. 게다가 하마스가 민간인 지역에 무기를 배치하는 장면을 SNS로 공개하면서 군사 작전의 정당성을 선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인지전을 수행했다. 우크라이나는 대통령, 정부, 국방부, 심지어 각급 제대까지 SNS를 활용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어 외에 영어로 된 내용도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우리에게 멀지 않은 위협

위에 소개한 사례는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들이지만, 가까운 곳에서도 인지전은 벌어지고 있다. 바로, 대만을 상대로 하고 있는 중국의 인지전이다. 중국군은 2003년 공식적으로 인지전을 공식적인 전술로 채택했고,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대만을 향해 인지전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긴장이 높지 않은 시기에는 대만인들을 포용 방식을 사용했지만, 미국과 갈등이 격화되면서는 가짜 뉴스를 통해 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중하고, 내부 분열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8월 5일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중국 국방부

8월 5일 중국 국방부가 공개한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 중국 국방부

지난 8일, 대만 국방부는 중국 공산당이 1일부터 이날 정오까지 대만에 272건의 가짜 뉴스를 퍼트리려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가짜 뉴스를 군인과 민간인의 사기 저하(130건), 무력 통일 분위기 조성(91건), 대만 정부의 권위 공격(51건) 등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중국의 인지전은 가짜 뉴스에 한정하지 않는다. 대만 일부 도시 상공을 가로지른 탄도미사일 발사도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인지전 시도다.

중국의 인지전이 대만을 상대로 하고 있지만, 언제 우리를 향할지 알 수 없다. 중국은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 일방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된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THAADㆍ사드) 체계다.

북한도 중국의 사례를 빌어 우리에 대한 인지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행히 우리 육군은 육군비전 2050과 지상작전사령부의 정의를 통해 대비하고 있지만, 군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비가 필요한 문제다. SNS를 통한 가짜 뉴스 대응에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고, 외부 세력의 국내 여론 개입 시도도 확인해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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