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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美 방역대통령 "은퇴"라고 안했다...파우치 놀라운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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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미국 대응 사령탑, 앤서니 파우치.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미국 대응 사령탑, 앤서니 파우치. 연합뉴스

“미국 공공의료의 얼굴”이라 불리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ㆍ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22일(현지시간) 올해 12월 사퇴를 공식화했다.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와, 별도의 공식 성명을 통해서다. NIAID 소장직뿐 아니라 대통령 수석 의료 고문 자리도 내려놓는다. 그는 지난 38년간 NIAID 소장으로 당시 로널드 레이건부터 현 조 바이든까지 모두 7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파우치 소장은 그러나 “인생의 새 장(章)을 열기 위해서 그만두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사퇴가 은퇴는 아님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1940년생으로 올해 82세다.

파우치 소장은 “지금도 나는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이 가득하다”며 “이젠 연방 정부라는 범주 밖에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NYT에 말했다. 구체적 사항은 밝히지 않았으나 그는 “NIAID 소장으로 배운 것을 미래 과학 지도자들에게 전수해 과학 및 공공의료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여행도 하고, 글도 쓰며 젊은 세대에게 공직에 봉사하는 것의 의미를 전파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CNN과 인터뷰에서도 “사퇴 후에 골프나 치러 다니지는 않을 것”이라고 농담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파우치 소장.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파우치 소장.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공식 사퇴 성명에서 “내가 해낸 일들이 자랑스럽고, 뛰어난 선후배 동료들과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음에 감사한다”며 “7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수많은 병마와 싸우는 것은 특권이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그의 사퇴에 대해 “파우치 박사 덕분에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미국은 더욱 강해졌다”며 “그의 헌신에 깊이 감사한다”는 성명을 냈다.

파우치 소장은 바이든 대통령과는 찰떡궁합이지만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악연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시점이었던 2021년 초,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파우치 소장을 두고 “재앙적인 존재”라고 부르며 “파우치 소장 말대로라면 이 바이러스로 50만명은 죽는다는 얘기”라고 주장했었다. 트럼프가 기자회견을 하는 현장에서 파우치 소장이 한숨을 쉬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또 “여름이 되면 코로나19는 자연 소멸할 것”이라 주장하며 “(내가) 재선하면 파우치를 해고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미국의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지난 5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100만명을 넘겼다. 파우치 소장 말이 맞았다. 트럼프도 2021년 하반기엔 뒤늦게나마 파우치 소장이 강조한 백신 개발 및 접종에 속도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뒤 쓴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 있는 파우치 소장. 팬데믹 초기인 2021년 3월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뒤 쓴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 있는 파우치 소장. 팬데믹 초기인 2021년 3월 사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파우치 소장은 굴하지 않고 반(反) 트럼프 성향이 분명한 CNN 등에 거의 매일 출연해 바이러스의 심각성을 설파했고, 거리두기 준수 및 백신 접종 등 권고 사항을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지지층에겐 비판의 대상이 됐다. 양극화된 미국의 정치 지형으로 인해 파우치 소장은 의도하지 않게 반(反) 트럼프 진영이 환호하는 정치적 인물이 된 셈이다. NYT는 “파우치 소장은 (트럼프 반대파에겐) 영웅적 존재이기도 했으나, 공화당 측엔 미친 듯 날뛰는(amok) 관료 같은 존재였다”고 분석했다.

파우치 소장은 트럼프 지지층에선 비판받았지만, 팬데믹에 맞서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이달 9일 시애틀 구장에서 시구자로 초청된 현장. AP=연합뉴스

파우치 소장은 트럼프 지지층에선 비판받았지만, 팬데믹에 맞서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이달 9일 시애틀 구장에서 시구자로 초청된 현장. AP=연합뉴스

세계적 인지도는 팬데믹으로 얻었지만, 그는 평생 각종 바이러스와 싸워왔다. 그는 성명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부터 에볼라바이러스와 지카바이러스”등을 기억에 남는 병마로 언급했다. 그러나 가장 큰 과제는 역시 코로나19였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도전 과제는 코로나19”였다며 “하루에 3~4시간도 못 자는 일이 허다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NIAID 소장으로 조직의 성장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파우치 소장의 재임 초기 NIAID (연간) 예산은 3억5000만 달러(약 4693억원)에 불과했으나 이젠 60억 달러가 넘는다”고 전했다. 20배 넘는 성장세다. NIAID라는 조직의 성장에도 파우치의 족적은 크다. WP는 “파우치라는 인물은 미국 공공의료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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