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약사 줄섰다"더니 백신 지연…文정부 함구한 비밀 파헤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020년 12월 9일(현지시각) 마스크를 쓴 시민이 ‘과학이 이길 것’이라는 표어가 걸린 미국 뉴욕시 화이자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AFP

2020년 12월 9일(현지시각) 마스크를 쓴 시민이 ‘과학이 이길 것’이라는 표어가 걸린 미국 뉴욕시 화이자 본사 앞을 지나고 있다. AFP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19 백신 수급ㆍ관리에 대한 감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백신 수급 지연 사태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방역당국이 제약사와의 비밀유지 조항을 이유로 함구해온 백신 계약·수급 과정의 전말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美·英·日 앞다퉈 백신계약하자 韓 “여유있다”

백신 수급 지연 문제는 2020년 질병관리청이 글로벌 제약사와 코로나19 백신 공급 계약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제기됐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화이자사는 2020년 11월 7일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이 95%의 효능을 보였다는 임상 3상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이미 같은 해 8월 백신 1억 회분, 20억 달러(2조 6820억원)짜리 선구매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임상 발표 후 미국 외에 유럽연합이 3억 회분, 일본이 1억2000만 회분, 영국ㆍ캐나다ㆍ칠레 등이 1000만 회분 이상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백신 계약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우리 정부는 다른 나라의 부작용 실태를 살펴본다며 백신 계약을 미뤘다.

코로나19 백신 1억회 분 이상 구매 국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

코로나19 백신 1억회 분 이상 구매 국가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 듀크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정부의 백신 공급 접근법이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다는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WSJ은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오히려 그쪽(제약사)에서 우리에게 빨리 계약을 맺자고 하는 상황”이라고 밝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과 함께 한국이 상대적으로 감염 통제가 잘 되는 편이라 백신 효과를 지켜볼 여유가 있다는 국내 전문가 발언을 실었다.

K-방역 내세우다 11월 말 첫 계약 

정부는 2020년 11월 27일이 돼서야 아스트라제네카(AZ)와 첫 백신 구매 계약을 완료했다. 방역당국은 같은 해 12월 8일 ▶AZ 2000만 회(1000만명)분 ▶화이자 2000만 회(1000만명)분 ▶얀센 400만 회(400만명)분 ▶모더나 2000만 회(1000만명)분 등 총 4400만 명분을 선구매했다고 밝혔다. 이때도 박 장관은 “일단 물량은 조기에 확보하더라도 접종에는 신중하자는 것이 기본 전략”이라며 도입 시기는 2~3월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8일 현지시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2020년 12월 8일 영국의 1호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AP

2020년 12월 8일 영국의 1호 코로나19 백신 접종자. AP

2020년 12월에 접어들자 의료계에선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나치게 매몰돼 백신 도입 결정이 늦었다는 쓴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K-방역’ 성공 사례로 내세우면서 홍보에 몰입하고 있던 터라 백신 수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감염병 상황을 대입해보면 결국 게임체인저는 백신인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게 의아하다”라고 비판했다.

화이자·모더나 수급 지연으로 상반기 AZ 중심 접종

2021년 백신 도입 현황 및 계획.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21년 백신 도입 현황 및 계획.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초기 백신 물량 확보 실패는 화이자ㆍ모더나 공급 물량 지연으로 이어졌다. 화이자ㆍ모더나로부터 백신 물량은 확보했지만, 일찌감치 계약서를 찍은 나라에 비해 한국은 백신 공급에서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선 “AZ 백신 위탁 생산시설이 국내에 있고, 보관ㆍ유통 장점이 커 화이자ㆍ모더나보다 AZ 선구매에 공들였는데 결과적으로 나쁜 선택이 됐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실제 화이자ㆍ모더나 백신 공급 지연으로 한국은 2021년도 1ㆍ2분기 접종 계획을 AZ 백신 중심으로 짤 수밖에 없었다.

3분기에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때도 화이자ㆍ모더나 백신의 수급 지연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 28일 스테판 방셀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직접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당초 예정된 3분기가 아닌 2분기부터 2000만명 분량(4000만 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2분기에 실제 들어온 물량은 11만 회분 정도였다.

이후에도 백신 물량을 두고 정부는 “차질없이 도입될 테니 안심하라”는 메시지를 냈으나 수급 지연이 반복되며 현장에선 혼선이 이어졌다. 백신 보릿고개로 2차 접종 시기를 미뤄야했다. 55~59세 연령층의 경우 예약자가 몰리면서 확보된 물량이 소진돼 하루 만에 사전예약을 종료한 사건이 발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