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강원도 영월에서 개막한 ‘동강국제사진제’에서였다. 낯익은 이가 예서 제서 신출귀몰하듯 나타나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이었다.
흔히 그를 ‘걸어 다니는 미술백과사전’ ‘미술계 114’
‘움직이는 미술 자료 컴퓨터’라고 한다.
안 가는 곳이 없고, 안 만나는 사람이 없으며, 안 모으는 자료가 없기에 그를 이리 별명 지어 부르는 게다.
별명답게 그는 동강사진제가 열리는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의 미술 자료 수집 삶은 자그마치 반세기에 이른다. 그가 반세기 동안 모은 자료는 우리나라 미술사와 다름없다. 돈으로 셈할 수 없는 한국 미술사의 희귀 사료 또한 그득하니 말이다.
그의 별난 인생은 2013년 금성출판사판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2016년엔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예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수상 인터뷰에서 그가 미술 자료에 빠지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 “어릴 때부터 우표, 담뱃갑, 껌 상표 등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어요.잡지에 나온 세계 명화를 오려 모은 것이 미술과의 첫 만남이었고요. 이렇게 모은 것을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가 보여 드렸죠. 그 인연으로 1981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서 일하게 됐지요.”
이렇듯 취미가 ‘아키비스트(archivist·보존기록물관리사)’라는 직업이 된 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된 박물관까지 만든 소회는 이렇다.
- “화랑과 신문사 등을 돌며 쪼가리 카탈로그까지 살뜰히 챙겼지요. 폐지 수집상으로 오해받을 만큼 메고 든 가방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죠. 그렇게 무리한 탓에 목 척추 종양 수술을 두 차례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쓰레기가 될 뻔했던 어제의 자료가 오늘의 한국 미술사가 되고, 나아가 내일의 한국 미술사가 될 테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미술계 넝마주이’를 자처하며 그가 살려낸 건 우리의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