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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而立 한중수교 30주년] “보편성 가진 문화교류는 지속성·공감성 두 마리 토끼 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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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수교 30주년 인터뷰 뮤지컬 ‘상하이 1934’ 만든 유인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

유인태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올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뮤지컬 ‘상하이 1934’를 선보였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영화 황제 김염과 중국 국가 작곡가 니에얼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아래 사진은 뮤지컬 포스터와 주한중국문화원. [사진 주한중국문화원]

유인태 전 예술의전당 사장이 올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뮤지컬 ‘상하이 1934’를 선보였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조선인 출신 영화 황제 김염과 중국 국가 작곡가 니에얼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아래 사진은 뮤지컬 포스터와 주한중국문화원. [사진 주한중국문화원]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친근하다. 또 우호 교류의 역사가 수천 년 동안 이어지며 풍부한 문화·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양국의 문화 교류는 일찍이 국적과 민족을 초월해 서로 융합하고 함께 발전하며,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명의 발전과 번영에 공헌했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자 ‘한중 문화교류의 해’를 마무리하는 해이다. 두 나라 정부와 민간은 계속해서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전개해 양국 각 분야 교류 협력의 품격을 높여 새로운 자세로 수교의 해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여섯 번째로 설립한 문화원인 ‘주한중국문화원’은 2004년 설립 이래 한국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중국 문화를 홍보하고 전시하는 데 힘쓰며 한중 문화교류의 다리를 놓고, 매년 100여 건의 각종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한중국문화원의 중요한 파트너 유인택 전 예술의전당 사장을 만나 한중 문화 교류에 대한 소회와 기대를 들어봤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이자 한중 문화교류의 해이다.
“그 어느 때보다 뜻깊은 해인데 코로나19 팬데믹에 얼어붙은 국제정세로 잔치 분위기가 아니라 못내 안타깝다. 돌이켜 보면 한중 관계는 수천 년 전부터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밀접하게 흘러왔다. 가깝게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상해 임시정부가 중국에 있었고, 항일독립운동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동지적 관계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때부터 이데올로기의 차이 때문에 1992년까지 불과 약 40여년 단절돼 있었던 셈이다. 한자문화권이자 유교문화권인 두 나라는 수교 이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특히 경제적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였다. 또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반도에서 중국은 북한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한중 관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관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화적으로는 어떤 관계인가.
“1990년대 한국의 K-팝 아이돌 가수들이 중국에 진출해 한류 시동을 걸고, 뒤이어 드라마 등 대중문화가 급속도로 중국에 진출했다. 한류를 통해 중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많이 이해하게 됐다. K-팝, TV 드라마, 게임, 영화 등 문화산업의 ‘수출’이 급격히 늘어났고 덩달아 K-푸드, K-뷰티, 관광 분야가 성황을 이뤘다. 그런데 최근 국제적 정치외교 등의 문제로 한중 문화교류가 큰 어려움을 겪고, 한국 문화의 중국 진출이 대폭 줄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시장경제로 접근하는 한류의 한계를 보게 됐다.”
연극 무용 전통음악 같은 공연예술, 미술, 서예, 문학 등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순수 문화예술 교류는 어땠나.
“문화는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일방적으로 흐르면 부작용이 나타난다. 한때 우리는 미국과 일본 문화 홍수 속에 ‘문화 식민지화’ 운운하며 민족문화를 강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는 상호 균형 있게 교류해 양국 국민이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0여년 전 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당시 학생들이 바로 요즘 흔히 말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였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 역사의 기초를 모를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는 무지한 수준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50·60세대인 내 세대는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 환경에서도 중국 한자는 물론 세계사 시간에 중국 역사와 지리를 달달 외웠었다. 더욱이 사회에 진출하면 소설 ‘삼국지’는 기업경영 필독서로 인식하고 있었고, 나 역시 세 번이나 읽었다. 따라서 중국인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당송원명청’ 같은 중국 역대 왕조를 줄줄이 읊고, 일제강점기 때 중국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을 이야기하며 공감대를 이루고 친숙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2015년 대학로에 동양예술극장을 경영하던 당시 젊은이들이 들끓는 대학로 한복판에 재한국 중국문화원과 협업해 중국영화를 무료 상영하는 ‘중국영화 상설관’을 세계 최초로 개관, 영화를 좋아하는 미래 세대들에게 영화를 통해서라도 현대의 중국을 이해하도록 했다.”
자국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편향적인 교류로는 확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맞다. 과거에는 흔히 국가 간 문화교류를 할 때 국악이나 사물놀이 같은 전통 민속 예술 작품과 관련 단체를 파견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형식이 아닌 이야기의 교류가 필요하다. 세대, 국경을 넘어서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로 콘텐트를 개발,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지속성과 공감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극장인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있으면서 2년 전부터 한중수교 30주년에 대비해 양국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공연을 만들었다. 바로 뮤지컬 ‘상하이 1934’이다.”
어떤 작품인가.
“일제강점기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리던 중국 상하이 영화계에서 유일하게 영화 황제 칭호를 받았던 배우 김염과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작곡가 니에얼의 우정과 영화 이야기를 다뤘다. ‘상하이 1934’는 일본에 의해 조작된 105인 사건에 연루돼 중국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김일순의 아들이자 김규식의 조카였던 조선인 김염과 중국 쿤밍에서 봉건주의 타도를 외치며 블랙리스트에 오른 니에얼이 운명적으로 상하이에서 만나 예술적 동지이자 영혼의 친구로 발전·성장해 가는 드라마다. 김염과 니에얼이 중국 영화계에서 주목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 1932년은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해이기도 하다. 일본이라는 거대 악의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영화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외쳤던 청년들과 영화인들의 이야기 ‘상하이 1934’는 국내 공연을 통해 한국 관객은 물론 중국 유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최근 얼어붙은 국제정세로 한중관계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한중수교 30주년을 계기로 ‘상하이 1934’와 같은 공연예술 등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상호 교류한다면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이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40여년 전 중국과 미국이 ‘탁구’로 얼어붙은 외교관계를 풀었듯이, 양국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예술콘텐트를 교류해 상호 이해와 신뢰관계를 다지는 것은 양국의 우호 관계 회복은 물론 국익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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