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특별 인터뷰 | 박재근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이 말하는 ‘초격차’ 유지 방안

중앙일보

입력

“반도체 신기술 확보하려면 ‘칩4 동맹’ 가입 불가피”
미·중 모두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원해… 양국 설득해 실리 챙겨야
반도체도 균형 발전 중요… ‘부울경’에 반도체 밸류체인 구축 필요

박재근 한국반도체 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미국 주도의 ‘칩4 동맹’ 가입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우리 정부가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 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미국 주도의 ‘칩4 동맹’ 가입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우리 정부가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정부 주도의 ‘칩4’가 화두다. 칩4는 미국이 자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을 바탕으로 생산 능력 상위 3개국과 결성하고자 하는 기술 동맹이다. 그 이면에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미국은 퀄컴 등의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분야 1위 자리를 두고 경쟁 중이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강국이다. 대만과 일본은 이른바 ‘칩4 동맹’ 참여를 일찌감치 확정했다. 반면 한국은 참여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예비회담 참여 의사만 밝혔을 뿐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수출 의존도 때문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반도체 산업 신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칩4 동맹 가입이 필수적”이라며 “미국에 요구할 부분은 당당히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을 설득하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우리 정부가 최대한 실리를 챙기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며 “수도권 외에 자동차 부품 산업이 발달해 있고 반도체 인력도 풍부한 부산·울산·경남에 차량용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8월 11일 한양대 한양종합기술원(HIT)에서 박 교수를 만났다.

대세는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들. /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는 삼성전자 직원들. / 사진:삼성전자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미국의 부가가치 높은 주력 산업이 정보기술(IT) 분야다. 또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진입이 가속화하면서 엄청난 새로운 시장이 열릴 전망이다. 미국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 시대도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거센 추격을 해오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자국의 반도체 수급마저 불안해졌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미국의 대표적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에 차질이 빚어졌다. 미국은 결국 중국의 반도체 추격을 뿌리침과 동시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칩4 동맹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그만큼 미국에 위협적인가?

“현재 전 세계에서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국가가 중국이다. 글로벌 반도체의 약 70%를 중국이 소비한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하면서 반도체를 들여다가 스마트폰·TV·컴퓨터를 만들어 수출한다. 데이터센터도 만든다. 그런데 거기에 사용하는 반도체는 다 수입을 해서 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14년에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유다. 2014년 시작해 10년 뒤에 중국산 반도체의 글로벌 점유율 7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전 세계 반도체의 70%를 직접 생산해 중국산 반도체를 각국이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비전이었다. 수십조원을 투자했다. 현재 중국이 미국처럼 반도체 설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이유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칩4 동맹에 대만과 일본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다.

“‘반도체 및 과학법’이라는 당근을 통해서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지원 390억 달러, 연구 및 노동력 개발 110억 달러, 국방 관련 반도체 제조 20억 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든 대만의 TSMC든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25%의 세액 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반도체의 12%를 생산하고 있다. 이를 10년 뒤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관련해 각국 기업이 미국의 생산 시설에 투자하면 그만큼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거스를 수 없다면 흐름에 따라야

반도체 장비 내부를 살펴보고 있는 SK하이닉스 직원들. /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장비 내부를 살펴보고 있는 SK하이닉스 직원들. / 사진:SK하이닉스

대만도 한국처럼 중국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과 일본은 전 세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의 약 50%를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기업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소부장을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 자체를 할 수가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칩4 동맹에 가입해야만 소부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재원도 미국이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대만이 거절할 이유가 없다.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과 일본에서 소부장을 공급받아 반도체를 생산하고, 제품을 미국에 제공해달라는 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장하는 안정적 반도체 공급망 확보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TSMC와 삼성전자에 미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물량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자체 생산량을 늘리려는 이유는 뭔가?

“세계 반도체 매출액의 45% 정도를 미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점유율은 12% 정도밖에 안 된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설계에 주력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설계를 잘하는 반도체 강국인 셈이다. 반면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생산 강국으로 꼽힌다. 미국 팹리스의 70% 이상이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하지만 대만 TSMC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해 점령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세계 연간 스마트폰 판매량이 몇 대일 것 같나? 13억 중국 인구만큼 팔린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 10억 대 정도 팔린다. 스마트폰을 10억 대 생산하려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도 10억 개가 필요하다. 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에 자율주행차가 있다. 자율주행차에는 AP가 3개 장착된다. 메타버스와 자율주행 드론 등에도 AP가 1개씩 들어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P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 AP 시장을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퀄컴은 물론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까지 AP를 직접 설계한다. 다만 생산은 못한다. 생산은 TSMC나 삼성전자가 맡아왔다. 미국이 자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파운드리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문제는 반도체 및 과학법에 ‘세제 혜택을 받은 기업은 10년간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을 신설, 확장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붙었다는 점이다.

“어렵게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25% 세제 혜택을 받는다고 치면 42억5000만 달러 정도 된다. 그런데 세제 혜택을 받으면 중국에 더는 공장을 짓지 못하게 된다. 다만 한국도 무기가 있다. 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D램이 그 무기다. D램 없이는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도 못 만든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이 세계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거의 절반을 생산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약 42%를 중국 시안 공장에서 생산한다. SK하이닉스도 D램의 약 47%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나 SK하이닉스의 D램도 중국의 IT 업체에 공급된다. 그렇다면 기업들 입장에서 결론은 간단하다. 미국에 투자를 하되 세제 혜택을 받을지 말지만 고민하면 된다는 얘기다.”

유럽도 ‘반도체 주권’ 확보에 총력

박재근 한국반도체 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며 “자동차 부품 산업이 발달해 있고 반도체 인력도 풍부한 편인 부산·울산·경남에 차량용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 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균형 발전이 중요하다”며 “자동차 부품 산업이 발달해 있고 반도체 인력도 풍부한 편인 부산·울산·경남에 차량용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기업들은 미국에 투자하되 세제 혜택만 받지 않으면 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스마트폰 신규 모델을 출시하려면 반도체 성능도 그만큼 더 향상돼야 한다. 반도체 칩의 성능을 향상시키려면 기존에 사용하던 반도체 장비나 소재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결국 장비의 성능을 높이려면 미국과 일본에서 반도체 소부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에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 중국에 새 공장을 지을 수 없을뿐더러 기존 공장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없다. 그러면 중국 사업은 접어야 하나? 한국은 반도체 총생산량의 약 60%를 중국에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한국이 중국 공장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으면 자국의 노트북 제조업체, 스마트폰 제조기업, 데이터센터 모두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국은 전 세계 TV 수출 2위 국가다. 스마트폰 생산량은 세계 1등이다. 데이터센터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없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다.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 중국이 칩4 동맹 가입 여부를 두고 한국을 거세게 압박하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

“맞다. 칩4 동맹은 정부 간에 결정하는 일이다.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산업 성장률은 2030년까지 매년 7~8%를 기록할 전망이다. 반도체 생산량이 그만큼 더 증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반도체 소부장의 업그레이드가 필수다. 소부장의 50%를 미국과 일본에서 제공받아야 한다. 칩4 동맹에 가입해야만 소부장의 안정적 확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칩4 반도체 동맹에 동참하지 않으면 기술력도 업그레이드할 수가 없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미국에 당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칩4 반도체 동맹에 가입하는 만큼 동맹국으로서 제대로 대우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세제 혜택을 받더라도 중국 공장 신설이나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해달라고 미국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또 중국 정부에는 칩4 동맹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중국의 IT 산업 등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설득해나가는 게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할 일이다.”

자동차 산업이 주력인 유럽은 반도체 주권 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유럽도 글로벌 반도체 생산점유율을 현재 9% 수준에서 2030년까지 2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최근 이탈리아가 미국 인텔과 5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탈리아는 인텔 투자 금액의 40% 정도를 세액 공제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자동차는 세계적으로 1년에 3억5000대 정도 팔린다. 요즘은 차량용 반도체 칩이 부족해 신차 판매량이 2억5000대 수준까지 떨어졌다. 내연기관차에는 반도체 칩이 약 100개 들어간다. 최고급 차 기준이다. 전기차에는 400개가 쓰인다. 2025년이면 완전 자율주행 단계인 5단계의 전 단계인 3단계 자율주행차가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3단계 자율주행차에는 반도체 칩이 2000개 들어간다. 특히 자율주행차에는 스마트폰에 사용하는 AP가 3개 들어가야 한다. 결국 AP를 확보하지 못하면 자동차 회사들도 생산을 못한다는 얘기다. 유럽도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하면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인력 양성 지휘한 중국·대만

미국은 물론 유럽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인데, 한국의 상황은 어떻다고 보나?

“미국은 25%, 유럽은 40%의 세제 혜택을 반도체 기업에 제공한다. 한국도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이번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 특별위원회가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 비율을 기존 6%에서 20%까지 확대하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다. 미국의 세액 공제 비율보다는 못하지만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전기 요금 등의 공장 운용 비용을 감안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수치다.”

정부가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 15만 명을 양성하기로 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인력난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늘 걸림돌이었다. 늦긴 했지만 정부가 반도체 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다만 꾸준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반도체학은 실습이 중요한데 기자재가 굉장히 고가다. 따라서 정부의 교육 시설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지속돼야 한다. 이 예산이 동반되지 않으면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에서 조사한 자료가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동부하이텍, 매그나칩스 그리고 기타 소부장 업체들의 연간 채용 규모를 조사해보니 1만 명이 훨씬 넘었다. 그런데 그중 반도체학 전공자 비율은 20%가 채 안 됐다. 삼성전자만 지난해 6000명 정도를 뽑았다. 대만 TSMC는 올해 8000명을 채용한다. 그런데 8000명 모두 반도체학 전공자를 뽑는다고 한다.”

대만의 반도체 인재 양성 비결은 뭔가?

“정부 주도로 10년 전부터 반도체 인력난 해소에 나섰다. 예산을 투입해 많은 대학에 학과를 만들어 반도체 전공자가 1년에 1만 명씩 배출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전자공학과나 재료공학과 등을 반도체학과 중심으로 개편했다. 기업과 협력해 대학원에 반도체 계약 학과를 가장 많이 만든 곳이 대만이다. 1년에 1만 명씩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만 기업도 채용을 하는데 한국은 1만 명을 뽑으면서 반도체 전공자는 20%도 안 된다. 경쟁력이 있겠나? 중국도 시진핑 주석이 2014년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반도체 인력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1년에 인력을 20만 명씩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기업들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한국은 팹리스 수가 지난해 말 기준 120개 정도다. 중국은 2810개나 된다. 인력 자체가 부족한데 산업 저변이 확산될 수 있겠나? 그런 차원에서 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에 나선 것은 굉장히 잘한 부분이다.”

다만 정부의 인력 양성 방안을 두고 지방대학들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학부 정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규제를 완화해 반도체학과를 증원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 한해 정원을 한시적으로 늘리는 ‘계약정원제’에 대해 지방대학들은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만 늘려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인데,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부가 지방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을 더 늘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관련 예산도 지방대학에 더 많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계약정원제는 대학 균형 발전을 위해 오히려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계약정원제는 대학이 이미 설치된 학과 안에 별도의 정원을 한시적으로 추가해 운영하는 유연한 형태의 정원 제도다. 기존 반도체 계약학과는 기업이 학생의 학비 전액을 지원해야 해 부담이 컸다. 반면 계약정원제는 기업이 학비를 지원하는 대신 취업을 보장하는 제도다. 수도권 대학은 물론 지방대 졸업자도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들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동등한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다.”

한국도 정부의 꾸준한 지원 뒷받침돼야

현재 반도체 계약학과 현황도 궁금하다.

“삼성전자는 카이스트(100명), 성균관대(70명), 연세대(50명), 포항공대(40명)에 채용 조건형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한양대(40명), 고려대(30명), 서강대(30명)를 지원한다.”

반도체학과에서는 어떤 학문을 배우는 건가?

“반도체학은 학문적으로 굉장히 깊이가 있고 분야도 넓다. 반도체 칩 하나 만드는 데 최소 3개월,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5개월씩 걸린다. 1000개 이상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학 전공자는 깊고 넓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물리학과 수학이고, 빅데이터를 활용해야 하는 만큼 코딩도 반드시 배워야 한다. 1~2학년 때 이들 학문에 대한 기초를 충실히 닦고 3~4학년은 반도체 회로 설계, 반도체 소자 설계·공정·재료 분석 등을 배우는 커리큘럼이다.”

학생 수가 늘면 교수도 증가해야 하지 않나?

“교육부가 전임교원 강의 비율을 충족시키기 위해 반도체 산업 현장 전문가를 교수 자원으로 활용하는 등 겸임·초빙 자격 요건을 완화하기로도 했다. 또 사실 그 문제는 학부 정원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보통 학부 졸업생의 70~80%가 취업을 하고 나머지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 가운데 일부가 또 취업을 하고 일부는 교수 자원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한 묘안이 있다면 말해달라.

“반도체 산업에도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 수도권 대비 임금과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부산·울산·경남, 이른바 부울경에도 반도체 공장을 지을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스마트폰이나 TV 등에 사용하는 IT 제품 중심의 반도체를 주로 생산한다. 이러한 반도체는 인건비 등이 많이 들더라도 마진이 워낙 높으니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상대적으로 저가다. AP의 경우 반도체 칩 1개에 8만원씩 한다. 반면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2000~3000원 수준이다. 한국은 이 차량용 반도체를 죄다 수입한다. 중국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차량용 반도체의 수급이 불안해 완성차 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차량용 반도체 분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침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자동차 부품 산업이 활성화한 곳이다. 반도체 인력을 키우는 좋은 대학도 많다. 포항공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부산대, 경북대 등이 대표적이다. 차량용 반도체 밸류체인을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본다.”

- 글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 사진 정준희 기자 jeong.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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