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짝지근한 매콤함으로 세계인 입맛 사로잡은 K-소스 '고추장' [쿠킹]

중앙일보

입력 2022.08.23 09:42

한식의 맛 ③ 고추장

달짝지근한 매콤함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고추장. 중앙포토

달짝지근한 매콤함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고추장. 중앙포토

스파이시 허니 소스와 스리라차 소스, 트러플 핫 소스, 그리고 고추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아마존 베스트셀러 TOP 7 소스’다. 고추장은 이제 세계적인 ‘핫 소스’로 자리 잡아 글로벌 대표 핫 소스 ‘스리라차 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고추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발효식품의 건강 기능성도 있겠지만, 한 번 맛을 보면 자꾸 먹고 싶어지는 달짝지근한 매운맛도 한몫했을 것이다. K-컬처와 K-푸드를 넘어 대표적인 ‘K-소스’로 한국 장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고추장의 매력을 알아봤다.

원래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았다
‘딸의 집에서 가져온 고추장’이란 속담이 있다. 물건을 몹시 아껴 두고 쓴다는 뜻이다. ‘상추쌈에 고추장이 빠질까’란 속담은 사람이나 사물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한국 속담에 등장하는 고추장은 귀하거나 필수적인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돼왔다. 속담을 통해 한국인의 고추장 사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간장이나 된장과 달리, 고추장의 기원과 역사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기원은 16세기 말이나 17세기 초, 고추장의 주재료인 고추가 일본에서 건너온 이후 고추장이 개발됐다는 설이다. 이보다 200년 앞선 ‘초장’이 고추장의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정경란 책임연구원은 한국과 중국의 고문헌을 분석한 결과, 1433년(세종 15년)에 한의사들이 발간한 의학서 『향약집성방』과 음식까지 잘 알았던 의관 전순의가 1460년(세조 6년)에 발간한 식이요법서 『식료찬요』에 등장하는 ‘초장(椒醬)’이라는 표현이 고추장의 기원이라 주장한다.

간장이나 된장과 비하면 고추장은 역사가 짧고 정확한 유래를 알기 어렵지만, 특유의 매콤달콤한 맛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아 한국을 대표하는 소스가 됐다. 조선의 21대 왕 영조가 고추장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영조는 송이버섯, 전복과 함께 고추장을 ‘밥도둑’으로 꼽았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가 하면, 해외여행을 떠날 때면 꼭 고추장을 챙긴다.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 한식이 그리울 때 휴대용으로 만들어진 튜브형 고추장 하나면 입맛을 되찾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식의 세계화를 이끈 비빔밥. 고추장으로 맛을 낸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사진 fixabay

한식의 세계화를 이끈 비빔밥. 고추장으로 맛을 낸 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사진 fixabay

한국을 오가는 항공기의 기내식에 고추장이 제공되거나,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이 나오는 건 이제 흔한 일이 됐지만, ‘비빔밥과 고추장’ 조합이 탄생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과거에는 밥과 반찬이 한 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낼 때 ‘조선간장’으로 양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지금처럼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은 역사는 고문헌을 찾아봐도 100년이 채 되지 않은 듯하다.

1926년 11월 1일에 창간한 대중잡지 ‘별건곤(別乾坤)’에서 1929년 12월 1일에 발행한 ‘팔도명식물예찬’을 살펴보면, 지금처럼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은 것은 경상남도 진주 지역의 ‘진주비빔밥’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진주 우시장 부근에서 비빔밥을 내는 식당들이 생겨나면서 소고기 육회를 고명으로 올리곤 했는데, 이때 육회의 비린내를 잡기 위해 고추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고추장이 들어간 비빔밥이 탄생한 계기이다.

날로 높아지는 고추장의 인기  
사실 글로벌 소스 시장에서 된장, 간장, 고추장의 경쟁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장 특유의 냄새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고, 발효식품의 특성상 수출도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최근 K-팝, K-드라마 등 K-컬처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K-장’에 관한 인식도 달라졌다. 한류 열풍에 코로나-19가 겹치며 ‘집밥 트렌트’가 생겼고, 홈 쿠킹 수요가 증가하면서 발효식품의 건강함이 보도자료 등을 통해 알려지자 우리 장이 점차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소식은 지난 5월 고추장과 된장이 한복‧소주‧막걸리‧김밥 등과 함께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인정하는 ‘니스(NICE) 공식 상품 명칭’에 등재됐다는 것이다. 니스 공식 상품 명칭은 WIPO에서 인정하고 91개 회원국이 가입해 활용하는 국제 통용 상품 명칭이다. 여기에 등재되면 해외에서도 이 명칭에 해당하는 상품을 지정해 상표로 등록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니스 공식 상품 명칭에 등재한 우리 고유 상품 명칭으로는 김치(2005년)와 불고기(2015년), 비빔밥(2016년) 등이 있는데, 올해 고추장과 된장 등 총 6개 명칭이 추가됐다. 이는 K-컬처 등으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K-고추장 어디까지 왔니?  
뜨거운 인기만큼이나 해외에서는 고추장을 사용한 메뉴도 늘고 있다. 고추장 빵이 등장하는가 하면, 해외 유명 햄버거 체인에선 고추장을 소스로 한 고추장 햄버거 메뉴가 출시되기도 했다. 미국 햄버거 체인점 ‘쉐이크쉑버거’는 미국 내 160여 개 매장에서 K-치킨버거를 판매하는데, 고추장 소스와 참깨로 양념치킨 맛을 내며, 잘게 썬 백김치를 넣은 한국식 메뉴를 선보였다.

고추장마요 소스로 양념치킨 맛을 낸 쉐이크쉑의 K-치킨버거. 사진 SPC

고추장마요 소스로 양념치킨 맛을 낸 쉐이크쉑의 K-치킨버거. 사진 SPC

영국의 경우, 시골 마트에서도 고추장을 찾기 어렵지 않을 정도로 거의 모든 슈퍼마켓에서 고추장을 팔고 있다. 영국의 유명 요리연구가 나이젤라 로슨은 BBC 특집방송에서 한국의 고추장이 세계를 접수하고 있다면서 고추장의 유래와 효능, 순창 고추장 명인과의 인터뷰까지 깊이 있게 보도한 적 있을 정도다.

한국인 셰프(박웅철)가 운영하는 영국 런던의 레스토랑 ‘솔잎(Sollip)’은 질 좋은 신선한 영국 식자재를 주로 사용하지만, 요리에 한국 고추장을 첨가하거나 한국적인 재료를 가미해 서양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서양식 육회에 6개월 이상 숙성한 약고추장을 쓰거나, 샌드위치에 감태 등을 활용한 요리가 대표적이다. 솔잎은 2022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1스타를 받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많이 모여 있는 런던에서, 한국인 셰프가 미쉐린 가이드에 등재되는 것을 넘어서 별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뉴욕 맨해튼의 한식 레스토랑 ‘제주 누들바(Jeju noodle bar)’도 있다. 제주 누들바는 고추장 불고기, 고추장 볶음 등 고추장 소스로 볶은 다진고기를 활용한 고추장 메뉴들이 유명하다. 워낙 인기가 좋아서 식사시간마다 거의 만석이 되며, 레드와인과 함께 고추장 메뉴로 식사하는 뉴요커가 많다고 한다.

이렇듯 한식의 근간인 고추장이 해외시장에서 얻고 있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요즘이다. 이 같은 한류의 열기를 토대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하기 위해 한식진흥원과 문화재청은 장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결과는 유네스코 사무국의 심사를 거쳐 2024년 연말에 결정될 예정이다. ‘전통 장 담그기 문화’가 국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고추장뿐만 아니라 된장, 간장까지 세계적인 소스로 정식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임경숙 한식진흥원 이사장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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