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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8조 송금…프랑스선 본인이 "돈세탁 아니다" 증명해야 [Law談-김영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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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프랑스 파리 지방법원 예심 수사 판사실에서 연수를 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는 특이하게 중죄 등 주요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는 수사 판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수사 판사의 수사는 한국 검사의 수사와 비슷하다.

해외송금. pixabay

해외송금. pixabay

하루는 지도 수사 판사가 장시간 통화를 하고 나서는 “내용을 설명해주겠다”며 필자를 불렀다. 요지는 “벨기에 검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자금 세탁 등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프랑스에 잠입했으니 프랑스 내 피의자의 계좌를 동결하고 피의자의 소재지를 파악해 체포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치 서울에 있는 검사가 부산에 소재한 검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유럽은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기본협약 외에도 범죄인 인도 및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베네룩스조약, 자금세탁방지에 관한 협약 등에 기초해 국가 간 실질적인 수사 공조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것이 일정 부분 현실적으로 가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초국가적 범죄(transnational crime)에 대한 국가 간 협력은 어제오늘 주장된 의제가 아님에도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하고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그 사이 범죄는 갈수록 국경을 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본시장 범죄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그로 인한 범죄 대응의 공백이다. 시세 조종성 주문이 쏟아지고 그것이 인적 분할 시 특정 주주에게 유리한 분할 비율 형성을 도모한 것으로 의심되더라도 해당 주문이 해외에서 제출됐다면 더 이상의 수사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호재성 정보를 이용해 불법적인 이득을 취득했거나 허위 정보를 인터넷에 흘려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더라도 당해 주문이나 정보가 국외에서 유입된 경우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준수 금융감독원(금감원) 부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준수 금융감독원(금감원) 부원장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 상황'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반면 범죄로 인한 이익은 세탁을 거쳐 해외로 빠져나가기 일쑤이다. 얼마 전 ‘국내 은행들에서 해외로 송금된 불분명한 자금이 총 8조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는 언론 보도를 봤다. 그중에는 정상적인 거래 결제 대금도 포함돼 있겠으나 신용장도 없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이체된 자금이 무역법인 계좌로 모인 뒤 해외로 송금된 사례가 상당수여서 범죄 수익의 세탁 및 해외 빼돌리기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가격 폭락으로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테라와 루나 발행사 테라폼랩스가 지난 2019년 4월. 법인 앞으로 테라 10억개(당시 환율로 1조 5600억원 상당)를 사전 발행했다고 하는데 사전 발행된 코인이 어디로 유통됐는지, 얼마나 현금화됐고, 현금화된 돈은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추적하는 것도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수사 사항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루나 코인의 거래지원 종료 예정 안내 화면이 나온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루나 코인의 거래지원 종료 예정 안내 화면이 나온 모습. 연합뉴스

결국 금융·증권범죄의 결정적 동기는 ‘돈’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막대한 이득을 환수하지 못한다면 범죄의 발본은 요원하고 처벌 효과도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범죄 행위 못지않게 범죄를 통해 얻은 수익을 세탁하고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정한 대응이 필요하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자금세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가상자산 사업자를 포함해 금융회사에 불법의심 거래내역 등을 보고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나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프랑스는 자금 세탁에 대처하고자 2013년 형법을 개정해 범죄 수익으로 의심되는 자금이 발견됐을 때 그것이 범죄와 무관함을 당사자가 입증하도록 입증 책임을 전환했다. 한국도 프랑스의 입법적 고민을 진지하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금세탁범죄에 대한 국가 간 공동대응은 이제 필수가 됐다. 한국은 1991년 4월부터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시행해 형사사건의 수사나 재판과 관련한 외국 간 공조의 법적 근거를 이미 갖춘 상태이다. 하지만 실효적인 국제 공조는 법률이나 국가 간 근사한 선언만으로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상대국의 실리 추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별 사건마다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유관기관의 전문인력을 모아 별도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테라·루나 사건에서부터 가시적인 노력과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로담(Law談) 칼럼 : 김영기의 자본시장 法이야기

주식인구 800만, 주린이 2000만 시대.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알아두면 도움되는 자본 시장의 현안을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장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제안도 모색합니다. 암호화폐 시장 이야기도 놓칠 수 없겠죠?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변호사

※김영기 법무법인 화우 파트너 변호사.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자본시장법)/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대검찰청 공안3과장/전주지검 남원지청장/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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