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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예영준의 시시각각

'서른통(痛)' 앓는 한ㆍ중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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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서른이 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청춘의 종언이어서가 아니다. 두 발 단단히 딛고 일어서야 할 나이(三十而立)임에도 머리와 가슴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나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화려했던, 혹은 멋모르고 행복했던 청춘의 끝자락에서 맞닥뜨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풀어낸 김광석의 노래('서른 즈음에') 가사처럼 24일로 수교 30년을 맞는 한·중 관계도 ‘서른통(痛)’의 지점에 와 있지 싶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중국은 일본이나 북한보다도 더 싫어하는 나라로 나타났다.

한반도 통일, 비핵화 역할에 기대 #중국이 부응해왔는지 따져볼 때 #상황 변화 걸맞는 관계 설정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천안문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난 뒤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한·중 간) 논의가 조속히 시작될 것”이라고 한 게 7년 전 일이다. 한반도 통일 논의 약속이 사실이었다면 대통령으로선 입 밖에 내지 말았어야 할 천기누설이었지만, 실상은 희망 섞인 일방적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시 주석의 의례적인 외교 수사가 기대를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1992년 8월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수교문서에 서명하고 교환한 뒤 악수하는 장면 [중앙포토]

1992년 8월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지천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수교문서에 서명하고 교환한 뒤 악수하는 장면 [중앙포토]

 따지고 보면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역할에 기대를 건 건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의 일관된 철학이다.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와 방중을 마친 뒤 소집한 북방정책 보고회의에서 “우리는 이미 민족통일 과정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세기 안에 적어도 남북연합이 실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저자세 외교’ 논란을 무릅쓰고 중국에 다가서려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언행은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기억 속에 생생하다. 북한 비핵화, 더 나아가 남북통일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중국이 우리의 기대에 부응해 왔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제는 희망 섞인 기대감을 털어내고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과연 중국은 한반도 통일을 원하는지 아니면 현상 유지를 원하는지가 그 첫째 질문이다. 만일 중국이 통일을 원한다면 중국이 그리는 통일과 한국이 원하는 통일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도 따져봐야 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바탕으로 정교한 대중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난 30년간 누려온 한·중 관계의 호시절이 지나갔다는 말은 특히 경제 분야에서 딱 들어맞는 평가일 것이다. 초(超)격차는커녕 한국이 비교우위를 누리는 분야도 이젠 반도체를 빼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5월부터 대중 무역수지가 사상 처음 적자로 돌아선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시장점유율은 1%로 곤두박질했다. 삼성 휴대폰이 같은 처지가 된 건 5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이젠 절대우위라 믿었던 한국산 화장품마저 밀려나고 있다. ‘사드 보복’ 핑계 댈 것 없이 순수한 경제논리로만 따져도 중국은 더 이상 한국 기업에 만만한 곳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쉬운 선택이었을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도 이제 유효기한을 다했다.

 돌아보면 30년 전 한국의 전략적 선택은 옳았다. 냉전의 최전선을 지키던 한국은 북방외교로 비로소 활동무대를 전(全)지구로 넓힘으로써 세계화의 조류에 동승할 수 있었고, 한·중 수교로 그 대미를 장식했다. 중국이란 시장을 통해 창출한 경제적 이익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했거나 훨씬 더 늦춰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30년이란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한국이 30년 전의 한국이 아니듯 지금의 중국은 1992년 수교 협상 테이블에서 대면한 중국이 아니다. 과거 30년간의 한·중 관계를 지탱해 온 인식으로는 미래 30년을 이어갈 수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며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30년간 외면의 눈부신 성과에 함몰된 나머지 내면의 근원적 질문에 소홀했거나 유보해 왔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