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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아깝다’는 영화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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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현목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팀장

정현목 문화팀장

극장가의 가장 뜨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여름은 영화사가 가장 경쟁력 있는 작품을 일주일 간격으로 내놓고 격돌하는 최고 성수기다.

21일 현재 성적표를 보면, 이순신 장군 자체가 장르인 ‘한산:용의 출현’과 이정재 배우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각각 670만, 300만 관객을 넘어서며 동반 흥행하고 있다.

초반 관람평에 무너진 두 작품
작품 메시지, 기술적 성취 매도
비난과 비판은 구분해서 써야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외계+인’. [사진 CJ ENM]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외계+인’. [사진 CJ ENM]

반면 충무로 최고 흥행사로 불리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152만), 송강호·이병헌·전도연 초호화 캐스팅의 ‘비상선언’(200만)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퇴장하는 모양새다. 두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들 영화를 향한 거센 비난은 합당한 비판을 넘어선 느낌이다. 물론 흥행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신파’라고 비판받는 ‘비상선언’은 정말로 억지 눈물과 감동을 쥐어짜는 작품일까. 영화에서 기내 테러로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 또는 노출된 승객들은 인접 우방국은 물론, 우리 정부와 국민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 이후 이들의 선택과 땅 위에 남겨진 가족들의 반응은 분명 눈물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신파라기보다 불과 몇 년 전 있었던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 보균자 취급을 당하며 입국 반대 여론과 시위에 마음고생 했던 중국 우한 교민들 말이다. 영화는 국민적 트라우마 또한 건드린다.

국토교통부 장관(전도연)은 여객기 착륙에 반대하는 정부 인사에게 “협조를 안 한다고 물러서요? 공권력이라도 동원하셨어야죠. 공무원은 책임지라고 있는 사람들이라고요”라고 일갈한다. 공권력 ‘부재’ 속에 300명의 소중한 생명을 떠나 보내야 했던 세월호의 비극을 소환해내는 장면이다. 감독은 ‘위기에 빠진 국민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어디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비상선언'. [사진 쇼박스]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비상선언'. [사진 쇼박스]

후반부 급강하하는 몰입도, 메시지 과잉 등을 지적할 순 있다. 하지만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이 녹아있는 영화를 감성팔이 신파로 규정짓는 건, 부당한 낙인에 불과하다. 영화가 신파에 기대려 했다면 더 손쉬운 방법이 있었을 터다.

여름 대작 중 가장 먼저 개봉한 SF 액션영화 ‘외계+인’은 ‘돈 아깝다’라는 혹평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산만하고 지루한 면은 없지 않다. 하지만 서울 도심에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외계인끼리 격투를 벌이는 장면 등을 보면 우리 영화의 VFX(시각효과) 기술이 할리우드에 견줄만한 수준이 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세계관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하려 한 시도와 기술적 성취는 높게 평가할 만하며, 관람료가 아깝다는 비난을 받을 영화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이 영화의 흥행 실패를 보며 ‘미스터 고’(2013)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VFX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영화계에서 김용화 감독은 털 한 올 한 올까지 생생한, 야구 경기를 하는 고릴라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 등의 문제로 영화는 외면받았지만, VFX 기술은 한국영화의 훌륭한 자산이 됐다. 김 감독은 그때의 기술과 경험을 발전시켜, 실제로 있을 법한  저승 세계를 스펙터클한 스크린에 펼쳐냈다. 그 성과물이 쌍천만 신화를 이뤄낸 ‘신과함께’ 시리즈다.

기술적 성취만 있다면, 서사나 개연성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의 장점까지 싸잡아 매도하며 ‘돈 아깝다’ 운운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벌써 영화계에선 ‘외계+인’ 참패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그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영화가 고꾸라지는 걸 보면서, 어떤 투자자가 새로운 시도의 영화에 돈을 넣으려 하겠나. ‘안전빵’ 영화에만 돈이 몰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개봉 초반 악플이 참으로 뼈 아프다”고 말했다.

극장 관람료 인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때문에 관객이 영화 선택에 더 신중해졌다. 개봉하자마자 올라오는 관람평의 영향력도 함께 커지고 있다. ‘초반 입소문이 흥행 성적표가 되는’ 현실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 해서 ‘즙(눈물) 짜는 신파’라느니, ‘돈 버렸다’라느니 낙인을 찍는 건, 그 영화의 흥행뿐 아니라 영화 산업 전체에 큰 타격을 준다. 요즘 영화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관람평이 ‘소중한 돈 아끼세요’라고 하니, 이에 비하면 예전의 ‘핵노잼’이란 악플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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