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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계절근로자 야반도주  ‘0명’…부여·홍천의 비결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20면

방울토마토와 멜론 주산지인 충남 부여군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 5월 말부터 6월 30일까지 5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120명이 입국했다. 모두 필리핀 세부 코르도바시(市) 주민으로 농가 26곳과 세도농협에 배치됐다.

부여군은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초청하면서 이탈 차단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입국 후 브로커의 꾐에 빠져 도주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코르도바시는 근로자 1인당 150달러의 보증금을 받아놓고 무단 출국 때는 필리핀 출입국관리소에 즉시 통보하도록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계절근로자가 무단 이탈하면 필리핀 현지 가족이나 친척은 다른 나라로 출국하지 못하도록 ‘연대책임’을 묻도록 했다. 비자발급도 중단된다. 이런 대책 때문에 필리핀 계절근로자 중 이탈자는 단 1명에 불과하다.

강원도 홍천으로 시집을 온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여성 아그니스(오른쪽)가 지난달 29일 계절 근로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도 홍천으로 시집을 온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여성 아그니스(오른쪽)가 지난달 29일 계절 근로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부여군은 농장에 배치된 계절근로자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현장 관리·감독도 강화했다. 계절근로자의 근무 시간은 월 228시간을 초과하지 못하고 매달 이틀은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부여군 장암면에서 배불뚝이농원을 운영하는 최종길(54)·김선주(55)씨 부부는 “손이 빠르고 성실해 조만간 우리나라 근로자 수준까지 능률이 오를 것 같다”며 “그동안 사람 하나를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우리가 원하는 근로자를 4명이나 배치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10월 말로 예정된 계절근로자의 귀국이 가장 큰 걱정이다. 최종길 대표는 “(계절근로자가) 돌아가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 뒤에야 다시 입국할 수 있다는 데 그사이 공백을 어찌 메울지가 고민”이라고 걱정했다.

강원 홍천군은 2017년부터 필리핀 산후안시에서 계절근로자를 받고 있다. 2017년 81명을 시작으로 2018년 312명, 2019년 354명, 2022년 534명 등 모두 1281명이 입국했다. 매년 인원이 늘고 있지만, 이탈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계절근로자 이탈이 ‘ZERO’인 건 홍천군청 농촌인력지원TF팀에서 일하는 아그니스(47·여)의 역할이 크다.

2002년 결혼이주여성으로 한국에 들어온 아그니스는 계절근로자가 입국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를 맺은 뒤 실시간으로 민원을 접수한다. 지난 5월 16일에는 복통과 심한 구토증상이 나타난 조엘그렌(47)의 연락을 받고 춘천의 대학병원으로 그를 이송했다. 간농양 판정을 받은 조엘그렌은 9일간의 치료를 마치고 무사히 일터로 복귀했다.

홍천군과 산후안시는 2009년 우호친선 교류협력을 맺은 뒤 신뢰관계를 이어왔다. 계절근로자 파견 때 산후안시는 공무원 8~10명으로 구성된 선발위원회가 농업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고 배우자와 부모 앞에서 귀국 선서와 가족 보증 절차도 진행한다. 홍천군이 직접 근로자를 초청하기 때문에 별도의 수수료도 들지 않는다. 비용은 항공권과 건강검진·비자발급·교통비·귀국보증금 등 123만원 정도다. 중간 수수료(브로커비)가 들어가지 않아 5개월간 일한 뒤 1인당 900만원 정도를 벌어갈 수 있다.

강원도는 최근 외국인 계절근로자 체류 기간을 5개월(E-8)에서 8개월로 연장하는 방안과 성실 근로자 재입국 추천 때 출국 없이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법무부에 보냈다. 부여군도 농장주나 자치단체의 초청장이 있는 경우 귀국 후 1개월 이내에 다시 입국할 수 있도록 관련 부처에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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