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꾸욱 ~ ” 민어떼 소리에 잠설친 임자도, 일제땐 목포보다 유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20면

지난 9일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에서 민어를 경매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9일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에서 민어를 경매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야~ 미터(m)급이다!”

지난달 23일 오후 2시쯤 전남 완도군 대신리 앞바다. 3t급 낚싯배 레인보우호에 앉아있던 손선초(59) 선장이 벌떡 일어섰다. 선미에 설치해놓은 낚싯대에 민어 입질이 와서다. 10여년간 낚싯배를 운행한 그는 “민어가 잡힐 땐 재미가 그만인데 기름값만 생각하면 바다에 나오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당시 면세유 경유 1드럼(200ℓ) 가격은 지난해(14만 원)보다 배 이상 높은 34만 원에 달했다.

지난 9일 오전 6시30분 전남 신안군 임자도 내 송도위판장. 수산물 경매장을 찾은 중매인과 식당 업주 등의 얼굴이 어두웠다. 매년 이맘때면 민어를 실은 어선이 줄지어 배를 댔던 것과는 달리 위판량이 크게 줄어서다. 수산물센터 대표인 정성찬(54)씨는 “기름값 때문에 출어를 포기하는 어민들이 많아지면서 경매가가 크게 높아져 사는 것도 파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위판된 민어 중 최고가는 8㎏짜리가 ㎏당 7만8000원인 62만4000원에 낙찰됐다.

잡은 민어를 들어보인 손선초 선장. 프리랜서 장정필

잡은 민어를 들어보인 손선초 선장. 프리랜서 장정필

22일 전남 신안군수협에 따르면 8월 들어 위판된 5㎏ 이상 민어(활어)의 ㎏당 가격은 5만~6만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당 위판가 3만5000원~4만 원보다 50%가량 높다. 송도위판장의 지난 7월 한 달간 민어 위판량이 지난해 7월(7750t)의 61% 수준인 4702t까지 감소한 여파다.

수협 등은 올해 민어값이 오른 원인을 고유가와 수온 상승 속에 물때가 예년보다 한 달가량 늦게 온 것 등이 맞물린 결과로 본다. 이현후(40) 신안군수협 송도위판장 판매과장은 “8월 중순부터 추석까지는 민어가 잘 잡히는 물때여서 어획량이 상당히 늘어나고 가격도 다소 내려갈 것”고 말했다.

임자도는 ‘민어의 섬’이라고 불릴 만큼 국내 최대 민어 어장이 형성되는 곳이다. 인근에 민어가 좋아하는 새우 어장이 있어 여름철이면 알을 낳으려는 민어 떼가 몰려든다. 주민들은 “어릴 때는 민어 떼가 오면 ‘꾸우욱, 꾸욱’ 우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많았다”고 회상한다.

임자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바다 위 시장인 파시(波市)가 섰다. 여름철이면 어부와 상인들이 몰리면서 요릿집과 기생집 등이 불야성을 이뤘다. 지금도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에는 민어 조형물이 외지인을 맞는다.

신안군 등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임자도는 도시 유흥가를 연상케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전라도나 목포는 몰라도 타리섬(대태이도)은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타리섬은 당시 파시가 섰던 임자도 앞섬인 대태이도를 말한다. 당시 상인들은 모래밭에 초막(草幕) 등을 지어 놓고 잡아 온 민어를 팔았다. 당시 기생집 중 일부는 일본 게이샤(기생)들이 한복을 입고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한·일 강제병합 직후에는 일본인 횡포로 기생 50여명이 집단 자살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민어는 단백질과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여름철 보양식이다. 노인이나 긴 병을 앓은 환자들의 체력 회복과 어린이의 발육촉진, 산모의 건강에도 좋은 어종이다. 옛날 서울 양반들은 “여름철 삼복더위를 나는 데 민어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민어는 회로 먹어도 좋고 탕을 끓이거나 찜으로 해 먹는 등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민어 껍질과 부레도 별미로 꼽힌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민어는 익혀 먹거나 날것으로 먹어도 좋으며, 말린 것은 더욱 좋다. 부레는 아교를 만든다’고 기록돼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