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이야오 "韓, 美주도 대중봉쇄 전략 최전선 되지 말아야" [한·중 수교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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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이야오(王輝耀ㆍHenry Huiyao Wang) 중국국제화센터(Center for China and Globalization) 회장은 미ㆍ중 대결 구도 속 한국 정부가 지향한 방향으로 ‘싱가포르 모델’을 제안했다. 한국과 중국이 급부상하는 아세안(ASEAN) 지역에서 공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미ㆍ중간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주장이다.

헨리 왕 중국세계화센터 설립자가 지난달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헨리 왕 중국세계화센터 설립자가 지난달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는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을 너무 코너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했다.

왕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0일 그의 방한에 맞춰 중앙일보 서소문 사옥에서 진행됐고, 이후 서면ㆍ통화 인터뷰를 추가했다. 왕 회장은 중국 집단 지도체제의 핵심인 국무위원회에 수년째 자문하고 있는 경제학자이자 한·중 관계의 전문가로 꼽힌다.

24일로 한ㆍ중이 수교한 지 30주년이 된다. 30년간의 양국 관계를 평가한다면.
“그간 상당한 교류와 무역, 경제협력이 있었다. 한ㆍ중은 유사점이 많다. 상호 교류하고 있는 유학생도 많고 관광도 활성화돼 있다. 특히 한ㆍ중 교역 규모는 한국의 대미ㆍ대일 교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많다. 지난해 한ㆍ중이 함께 가입한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에 이어, 가입을 검토 중인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관련한 움직임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왕 회장은 이 대목에서 한ㆍ중의 문화적 유사성을 강조하며 “젓가락도 함께 사용한다”고 예를 들었다.

한국 입장에선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간의 경쟁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이 추진하는 대중(對中) 봉쇄 전략의 최전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은 미국의 위성(satellite) 국가가 돼선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나 파이브아이즈(Five Eyesㆍ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뤄진 군사 동맹 및 정보 네트워크)에 발을 담그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ㆍ중간 교역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이 미국에 경도돼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저버릴 이유가 없다. 한국이 균형을 찾아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길 바란다.”
지난달 29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지난달 29일 오후(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칩4(미국이 주도하는 일본, 대만, 한국의 반도체 공급망 체인)를 비롯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등은 어떻게 보나.
“IPEF는 아직 알맹이(substance)가 없다. 관세나 시장 접근에 있어 혜택이 없다. 원칙과 가이드라인에 대해서만 얘기할 뿐이다. IPEF가 어떻게 나아갈진 아직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듯 미국은 정권에 따라 정책을 바꾼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 선거에서 패배가 유력하다. IPEF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RCEP와 CPTPP가 보다 공고하고 훨씬 견고하다고 본다.”
미국 주도 움직임에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은 있나.
“IPEF가 진정으로 개방된 협의체고 중국의 가입을 환영한다면 오케이다. 그러나 중국만을 배제하기 위한 경제 협의체는 바람직하지 않는다. 만약 IPEF가 모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거라면 중국도 일원이 될 수 있다. 중국도 인도·태평양에 속하는데 왜 가입을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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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에 비해 미국을 더 중시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경향이 있다고 본다. 물론 한국이 파이브아이즈에 가입하고, 나토와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토는 유럽에 있는 기구다. 같은 아시아에 있는 중국의 입장에선 정말 이상한 현상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각국의 안보 전략을 타국이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지난 2017년 1월 17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시 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 만났다. 신화통신=연합

지난 2017년 1월 17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시 조 바이든 미 부통령과 만났다. 신화통신=연합

한ㆍ중의 경제적 협력은 어떻게 보나. 한국이 참고할 사례가 있다면.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 특히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할 만 하다. 물론 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에는 북한 문제가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면 아세안, 특히 싱가포르는 미ㆍ중 간의 균형을 맞추며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관광과 문화적 유대감이 강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왕 회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싱가포르'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미ㆍ중 사이에서 '중간 지점'(middle ground)을 찾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꼭 참고해달라고 재삼 요청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한 중국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나.
“한국에는 이미 주한미군이 있다. 사드 배치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먼 태평양에서 핵잠수함을 논하는 오커스(AUKUSㆍ미국, 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 중국이 어떻게 코앞의 사드를 받아들일 수 있나. 실제 몇 해 전 사드로 인한 중국 내 불매운동도 경험하지 않았나.”
한국 내에선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런데도 중국은 공식적으론 보복 조치가 아니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보복 등 그런 현상은 이미 잦아들었다. 중국은 특히 한국 문화를 더욱 많이 접하고 싶어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인의 반중 감정이 80%라는 한국 내 인식조사 결과도 있다.
“코로나로 인한 고립의 영향이 크다. 3년 가까이 관광 등 인적 교류가 끊기다시피 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진력 전략으로 긴장감이 급상승했다. 코로나 이후 인적 교류 활성화와 아시아라는 유대감을 기반으로 서로에 대한 반감은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핵실험은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 역시 한반도의 비확산을 원한다. 그러나 해결 방식과 관련해선 반드시 과거 6자회담이 아닌 남ㆍ북ㆍ미ㆍ중의 4자회담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들은 한국전 참전의 당사국들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4자회담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2019년 6월 21일, 1박 2일 간의 북한에 대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주민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는 시 주석과 펑리위안(彭麗媛)여사를 공항에서 직접 배웅했다. 중국 인민망(人民網)

2019년 6월 21일, 1박 2일 간의 북한에 대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귀국을 위해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주민들의 환송을 받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 여사는 시 주석과 펑리위안(彭麗媛)여사를 공항에서 직접 배웅했다. 중국 인민망(人民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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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지 않아 대북 전략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코로나로 인해 이미 자연스럽게 중국의 대북 제재를 하는 게 됐다. 그런데 모두가 역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선 북한처럼 GDP가 매우 낮은 국가들의 고통이 더욱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무조건 코너로 몰아가선 안 된다. 체제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놓이면 북한이 오히려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핵무기를 가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자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잘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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