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춘푸(李春福) 중국 난카이(南開) 대학 교수는 지난 16일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중 관계는 중대한 전략적 조정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직면한 불확실성과 제한적 요인을 통제하고 긍정적 요인을 확대해야 미래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 교수는 한국 정부가 ‘칩4’ 등 미국 주도의 공급망 체제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선 “사실상 중국에 대한 제재와 포위 행렬에 가세하는 것”이라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난카이대 한국연구센터 부주임으로 재직 중인 리 교수는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관한 중국내 전문가로 꼽힌다.
- 한·중 수교 30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 “단연 경제와 무역 분야다. 양국은 이미 무역 동반자가 됐다. 중국은 18년 연속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고, 한국은 중국의 최대 수입국이자 제3대 수출국이다. 올해는 일본을 넘어 미국 다음으로 2위 무역 상대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 외에도 정치·외교·인문 등 전방위적으로 양자 관계 발전의 모범으로 평가받는다.”
- 윤석열 정부의 대중 노선을 어떻게 보는가.
- “윤석열 정부가 외교와 대북 정책을 조정하면서 한ㆍ중 관계도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전략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한반도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 상황에서 ‘제로섬 게임’의 성격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갈등에 내재한 안보 문제와 이념 차가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면서 관계 발전을 제약하고 있다.”
리 교수는 수교 30주년을 맞은 현 시점을 한ㆍ중 관계를 새롭게 조정할 시기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문구를 인용해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현재 상황을 위기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 “많은 불확실성과 제한적 요인 때문에, 양국 관계는 ‘강물을 거슬러 배를 몰지 않으면 퇴보(逆水行舟 不進則退)’하고 마는 국면에 집입했다. 양국 관계를 재구축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제한적 요소를 통제하고 긍정적 요인을 공고히 해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양국민 사이의 불신이 관계 발전을 막는다는 분석도 많다.
- “한ㆍ중 관계는 ‘선린우호’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 다음이 협력ㆍ동반자관계다. 양국은 서로 이사를 갈 수 없는 이웃이다. 적으로 대하거나, 상호 대항을 해선 안 된다. 가장 먼저 양국은 각자의 제도와 체제를 상호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상대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안보 관련 우려를 존중해야 한다.”
리 교수는 “차이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상대의 핵심이익과 안전을 존중해야 한다”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역시 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사드를 중국의 핵심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 사드 문제 해결이 어려운 이유가 뭔가.
- “사드는 한ㆍ미동맹의 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한ㆍ미 동맹은 한반도 정세를 넘어 제3자의 주권과 안보 등을 겨냥해선 안 된다. 한국은 미국과 협조해 레이더 관측의 각도, 사정거리 등을 제한해 중국 등을 겨냥하게 해선 안 된다. 중국도 남북과 소통하며 정세 안정과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리 교수는 ‘칩4’ 등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대해선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라고 규정하며, 한국의 참여 움직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 한국이 ‘칩4’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 “한국의 주관적 의사는 존중한다. 그러나 IPEF와 칩4는 본질적으로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그 안에서)한국이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이나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참여는 사실상 중국에 대한 제재와 포위 행렬에 가세하는 것이고, 결국 이를 통해 한국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 대만 문제도 주목받고 있다.
-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다. 물론 한국의 시각에서 보면 대만 문제가 한ㆍ미동맹의 적용 범위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 ‘주한미군이 대만 문제에 휘말려선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고 천명했다. 현재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저지를 노골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중국 억지전략에 휘말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
-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 “한반도 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기본 입장은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대화와 평화로운 방식을 통한 해결 등 3가지다. 아직 북한의 7차 핵실험 여부나 시기를 판단하기 어렵다. 북한은 윤석열 정부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완전히 형식을 갖춘 뒤 본격 가동되길 기다린 뒤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본다.”
-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평가는?
- “윤 대통령이 광복절 연설에서 대북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는데, 여전히 이명박 정부 때 제시했던 ‘비핵개방3000’의 진부한 생각에 머물렀다고 본다. 대북 정책은 구체적 정책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가령, 하반기 한ㆍ미 연합 군사훈련의 규모와 강도, 시기가 과거 규모를 유지한다면 북한에 긍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담대한 구상’은 단지 구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