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장사' 비판 속 논란을 빚었던 은행권의 예대금리차가 베일을 벗었다. 22일 은행연합회 홈페이지를 통해 예대금리차 공시가 시작되면서다. 첫 공개 결과 전체 은행 중에선 전북은행, 5대 시중 은행 중에선 신한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가 가장 컸다. 앞으로 19개 은행의 예대금리차가 매달 공시된다.
공시 효과? 7월 가계대출 예대금리차 감소
22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7월 가계대출 예대금리차(가계대출 금리-저축성수신 금리)는 평균 1.37%포인트다. 전달(1.82%포인트)보다 하락세가 뚜렷했다. '이자장사 1위' 오명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이 수신금리(예금금리)를 빠르게 인상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7월 예대금리차는 은행별 단순 평균치로, 전체 금액을 가중 평균한 예대금리차 통계는 한국은행에서 오는 30일 발표할 예정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예금금리는 원래 기준금리 결정에 맞춰 움직이는 데, 7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면서 큰 폭으로 올랐다”며 “다만 예대금리차 공시를 의식해서인지 기준금리가 결정되자마자 은행들이 종전보다 발 빠르게 수신금리를 올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대금리차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로, 은행권 '이자장사'의 핵심 지표다. 과거에는 각 은행의 홈페이지에만 예대금리차를 공시해 찾아보기가 불편했다. 이번 정책으로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서 19개 전체 은행의 지표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됐다. 공시 주기도 석 달에서 한 달로 줄었다. 신용평가사의 신용점수 구간별 예대금리차도 확인할 수 있다.
가계 예대금리차 1위는 전북은행, 토스 뒤이어
이날 처음 공개한 7월 가계대출 예대금리차가 가장 높은 곳은 전북은행으로 6.33%포인트까지 벌어졌다. 그다음은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로 5.6% 포인트를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에서는 신한은행(1.62%포인트)으로 차이가 가장 컸다.
은행별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는 우리은행과 농협은행 1.4%포인트, KB국민은행 1.38%포인트, 하나은행 1.04%포인트였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케이뱅크 2.46%포인트, 카카오뱅크 2.33%포인트를 기록했다.
예대금리차가 큰 은행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은행은 "금융취약계층에 대출을 지원하다 보니 대출 금리가 높아졌다"며 “예대금리차가 높다고 해서 단순히 이자장사를 더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다.
전북은행 측은 “2금융권으로 흘러갈 중·저신용자들을 폭넓게 지원하다 보니 대출금리가 높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빚어졌다"며 "외국인 등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영업하다 보니 대출 금리가 오른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전북은행은 올해 초 은행권에서 외국인 대상 신용대출을 업계 최초로 시작했다. 전북은행의 외국인 대출은 최고 연 15%로 금리가 상당히 높다.
신한은행도 "햇살론과 새희망홀씨 등 서민지원대출에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저신용 및 중신용자 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서민지원대출금액은 신한은행(9751억원)이 가장 많았다. 우리은행(6660억원)과 KB국민은행(5946억원), 하나은행(5485억원) 순이다.
토스뱅크 역시 “대출 고객 중 중·저신용자 비율은 약 38%로(7월 말 기준) 모든 은행 중 가장 높고, 6월 말 공시 기준 타 인터넷은행과 비교해도 1.5배 이상 높다 보니 대출 금리가 높아졌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기를 끌었던 ‘2% 파킹 통장’이 수시입출금통장으로 분류돼 예금 상품에서 배제되면서 예대금리차가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표면적 숫자에 집착하면 취약 차주 밀려날 수도
금융소비자에 대한 정보 제공이라는 긍정적 측면에도 전문가들은 공시 ‘부작용’도 우려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예대금리차 숫자로 줄 세우기를 하다 보면, 수치의 이면에 있는 지원 대상이나 각 은행의 정책이 무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하는 저신용 차주(대출자)의 대출을 줄이는 것”이라며 “예대금리차로만 은행을 압박하면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대출 문턱만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의 초점이 가계대출에 맞춰져 있는 만큼, 기업대출에서 풍선효과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주주가 있는 회사인만큼 무조건 손해를 볼 수는 없다”며 “향후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생긴 손실을 기업대출 쪽에서 메우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대금리차 공시로 은행들이 현재의 예대금리차가 과도한 지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제어하는 효과는 분명 있다”며 “다만 저신용 차주를 제외하고 (예대금리차를) 산출하거나 평균 차주 등급을 정해 비교하는 등 개선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