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이병준 기자
전공 구분 없는 신입생 통합 선발, 9월 개학·연3학기제. 서울대학교가 지난달 발간한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에는 현재와는 판이한 교육과정의 뼈대가 담겼다.
최종적으로 2040년까지 모든 신입생을 별도의 소속 학과 없이 선발하고, 매년 3월에 새 학기가 시작해 12월에 한 학년이 끝나는 현행 2학기제가 아닌, 매년 9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한 학년이 마무리되는 3학기제로 학사 일정을 재편하자는 것이다. 국내 주요 대학에서 시도된 적 없던 ‘파격’이다.
시민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관련 뉴스에는 댓글이 쏟아지며 “서울대라면 해볼 만도 하다”와 “입시 대혼란이 예상된다”는 찬반양론이 격돌했고, 맘카페 등 지역 커뮤니티에는 “입학 전형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 “어차피 인기 있는 학과에만 몰릴 것”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대 입학본부에는 중장기발전계획의 시행 여부와 시행 시기를 묻는 전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장장 231쪽 분량의 서울대 2025-2040 장기발전계획 보고서는 교직원과 학생, 외부 전문가 등 85명으로 구성된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1년 3개월간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서울대의 현재 위기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중점 과제, 실행 계획 등이 상세히 담겼다. 발전위는 보고서에서 최근 서울대의 교육 품질 및 연구 성과 저하를 지적하며 “철저한 내부 개혁이 부재하다면 향후 서울대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숙 대학·해외 캠퍼스 설립도 제안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졸업생과 가족들이 학교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발전위를 이를 해결하기 위한 7대 중점 추진 과제로 ▶전공·학과·단과대학 간 장벽 허물기 ▶생애 전주기 교육 체계 수립 ▶도전적 융합 연구 지원 ▶사회 공헌 확대 ▶국제화 강화 ▶무장벽(배리어프리) 캠퍼스 조성 ▶대학 운영 혁신과 재정 확충을 제시했다.
이 틀에서 세부 과제로 나온 게 신입생 통합 선발 등 안이다. 발전위는 그 밖에도 기숙사에 기숙 대학을 설치해 생활 연계형 교육을 하고, 베트남 하노이 등지에 해외 캠퍼스를 설립하자는 내용과 함께 2040년까지 3조 3000억원의 재정 규모를 달성해야 한다는 재정 목표도 제시했다.
이번 발전계획은 지난해 서울대 법인화 10주년을 맞아 수립된 것으로, 발전위는 오세정 총장의 요청으로 구성됐다. 노정혜 발전위 공동위원장은 “이전 발전계획은 기한이 거의 만료돼, 상황에 맞는 새로운 중장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게 오 총장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는 2007년 ‘세계 10위권 대학 도약’을 골자로 하는 2025년까지의 장기발전계획을 수립·발표했었다.
교수사회 "학교가 일방 발표" 반발도
다만 서울대 교수사회 일각에선 “학교본부가 일방적으로 혁신안을 발표했다”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임정묵(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협의회장은 “그 자체로는 좋은 방안들이 많지만, 평교수들을 설득하고 공론화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발전계획 수립을 위해 공청회가 세 차례 열렸지만 평교수 수십 명이 참석하는 데 그치는 등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학교 혁신을 위해선 재정 자립과 교원 인사 혁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익명을 원한 서울대 전임 교수는 “무전공 제도를 시행하면 전공 선택 단계에서 학생들이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를 기피할 수 있다. 해당 학과에서 반발할 것”이라며 “학생들이 몰리는 학과 역시 별도 교원 확충 없이 이를 감당해야 해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단과대의 권한이 여전히 막강한 만큼, 이들의 협조 없이는 사실상 시행이 어렵다는 거다. 다른 교수는 “기숙 대학의 핵심은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멘토링을 해주는 것”이라며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가면서 연구 중요성 커졌는데, 어떻게 학부생 멘토링까지 다 할 수 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정문 항공 사진. 사진 서울대학교
반면 발전위에 학생 대표로 참여한 김지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교육 환경 등에서 학생들이 혼란이 생길 수 있지만, 교육적 함의를 담은 새로운 시도를 서울대에서 발표하는 데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올 2학기 중 발전위가 제시한 세부 과제 중 일부를 기획 과제(연구)로 선정할 방침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과제를 통해 검증을 하고, (실현)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차기 총장의 판단에 따라 해당 과제를 추진할 수 있다”며 “아직 어떤 걸 (연구할지) 선정은 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오세정 총장의 뒤를 잇는 신임 총장은 현재 선출 절차가 진행 중으로, 2023년 2월 1일부터 임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