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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청기 끼고 밭일"…文사저 경호 강화 첫날 풍경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2일 오전 11시쯤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입구 쪽 마을버스 정류장(청수골가든).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약 300m 떨어진 이곳에는 “여기는 경호구역입니다. 교통관리와 질서유지에 적극 협조 바랍니다. 대통령 경호처·양산경찰서”라고 적힌 알림판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도로에는 마을 출입 차량을 통제하는 철제 펜스가 놓여 있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광봉을 든 대통령 경호처 직원과 경찰은 마을 출입 차량을 검문·검색하고 있었다. 방문객 행선지·방문 목적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소지품 검사도 했다. 화약 등 인화성 물질, 총포·도검류, 폭발물 등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검문 후 이상이 없으면 펜스를 치워 차량을 들여보냈다. 마을 뒤쪽인 마을버스 종점(지산 만남의 광장) 부근에서도 경호처 직원과 경찰이 배치됐다.

대통령 경호처는 이날 오전 0시부터 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구역을 기존 사저 울타리에서 최장 300m까지 확장했다. 이는 질서유지, 교통관리,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안전조치 등 위해(危害)에 필요한 안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조치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새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100여일 만에 되찾은 일상 

 22일 오후 대통령 경호처와 경찰이 검문검색 중인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300여m 지점. 일반 차량은 진입했지만 확성기가 달린 차량은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오후 대통령 경호처와 경찰이 검문검색 중인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300여m 지점. 일반 차량은 진입했지만 확성기가 달린 차량은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호처와 경찰은 확성기·스피커 부착 차량 진입도 막았다. 앞으로 마을에서 확성기를 동반한 소음 집회가 차단된다는 의미다. 그간 마을에서는 장송곡·찬송가·군가 등을 틀고, 욕설 방송이 섞인 집회가 잦았다.

경찰 관계자는 “법적으로 보장하는 집회·시위는 가능하다”면서도 “경호 구역이 넓어지면서 흉기 소지 등 통제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욕설·소란 등 행위도 막는다”고 말했다.

그 결과 이날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약 100m 떨어진 맞은편 마을버스 정류장(불곡도예) 부근은 조용했다. 이곳은 지난 5월 10일 문 전 대통령이 사저에 들어온 뒤 100여일 동안 집회·시위가 이어졌던 곳이다.

22일 오전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약 100m 떨어진 도로변에 경호처 직원과 경찰만 있다. 이곳은 지난 5월 10일 문 전 대통령이 낙향한 이후 집회 등으로 사람이 붐볐던 장소다. 송봉근 기자

22일 오전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약 100m 떨어진 도로변에 경호처 직원과 경찰만 있다. 이곳은 지난 5월 10일 문 전 대통령이 낙향한 이후 집회 등으로 사람이 붐볐던 장소다. 송봉근 기자

평산마을 주민들은 오랜만에 마을이 조용해졌다고 반색했다. 주민 김모(67)씨는 “오랜만에 보청기를 끼고 밭일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 8년 동안 문 전 대통령 사저 바로 앞에 있는 밭에서 고추 농사를 지어왔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 사저 입주 이후 집회·시위 때문에 보청기도 끼지 못하고 일을 했다고 했다. 김씨는 “확성기에서 소음이 들리면 머리가 아프다"며 "이 때문에 보청기를 뺀 상태로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불러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 사는 도예가 신한균(62)씨도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며 “지금 마을에 새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고성·욕설 집회 때문에 들리지 않던 소리”라고 했다. 이어 “옛날에 평화로웠던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며 “평화가 계속 유지됐으면 한다”고 했다.

文 반대단체 “전 대통령 1명이 이동 자유 제한”

22일 오전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한 유투버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맞은편에서 방송을 하려다 경호원들에 의해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가고 있다. 송봉근 기자

22일 오전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한 유투버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맞은편에서 방송을 하려다 경호원들에 의해 폴리스라인 밖으로 나가고 있다. 송봉근 기자

평산마을 경호구역 안팎에서는 이날 문 전 대통령 반대 성향 단체 관계자 또는 유튜버 약 10명이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었다. 확성기 등을 사용한 고성·욕설 방송은 하지 않았다. 이들은 “경호원을 동원해 우리를 겁박한다” “(경호 강화가) 어이가 없다”는 내용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해온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마을 입구에서 출입을 제지당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앞서 이 단체는 평산마을에서 지속해서 스피커를 활용한 집회와 인터넷 방송을 해왔다. 이 단체 관계자는 “전 대통령 1명이 국민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마을 조용해지자 산책 나선 文

문재인 전 대통령이 22일 오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방문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YTN 유튜브 캡처

문재인 전 대통령이 22일 오후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방문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YTN 유튜브 캡처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쯤 평산마을 안에 있던 반대 성향 시위자들이 물러나자 비서진·경호원과 함께 마을 곳곳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반소매와 반바지 차림의 편안한 복장을 한 문 전 대통령은 이웃집을 방문해 담소를 나누고, 마을을 찾은 방문객과 기념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1시간가량 마을을 산책한 뒤 다시 사저로 돌아갔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9시쯤 문 전 대통령의 아내인 김정숙 여사도 사저 밖으로 나와 마을을 살피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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