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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수교 30년, 단교 3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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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오는 24일로 중국과 수교한 지 30주년을 맞는다. 아울러 대만과 단교한 지 30주년을 맞기도한다. 한중 관계와 한-대만 관계가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보인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대만과는 단교를 선언했지만, 한-대만 간 실질적인 관계는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한중 간 인적 교류가 코로나 19 사태 이전 1000만 명에 달했다면, 한-대만 간도 250만 명에 이른다. 중국 14억 인구에 비해 대만 인구가 2300만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대만 간 교류가 더 활발한 셈이다. 한중 교역액이 지난해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면, 한-대만 간은 300억 달러를 넘는다. 이 역시 작지 않은 규모다.
그러나 한-대만 관계가 단교 이후 정상화되는 데는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93년 비공식관계 수립에 합의했지만, 단교로 중단됐던 항공 노선이 다시 이어진 건 2004년 9월에 이르러서였다. 단교 당시 대만의 분노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지난 3월 국내에서 출간된 『대만 단교 회고』는 중국과의 수교 및 대만과의 단교 과정을 당시 대만에 근무했던 우리 외교관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지난 1992년 9월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태우 대통령이 지난 1992년 9월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양상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36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5년 은퇴한 조희용 전 캐나다주재 대사가 저자다. 그는 대만과의 단교 당시 1등 서기관으로 대만에 근무했던 자신의 경험에 더해 한국은 물론 중국과 대만에서 관련 자료를 꼼꼼히 수집해 기록을 남겼다.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가 낙관만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외교에 크게 세 가지 교훈을 던지고 있다.

조희용 전 캐나다주재 대사가 지난 3월 펴낸 도서 『대만 단교 회고, 중화민국리포트 1990-1993』 표지. [중앙포토]

조희용 전 캐나다주재 대사가 지난 3월 펴낸 도서 『대만 단교 회고, 중화민국리포트 1990-1993』 표지. [중앙포토]

첫 번째, 우리는 곧잘 시간 싸움에서 패한다는 것이다. 협상은 느긋하게 밀고 당겨야 하는데 우리는 늘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얼 이루려 한다. 그리고 이런 입장을 상대에 들키다 보니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이다. 30년 전 한중 수교 협상에 나선 우리 대표단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하나는 조기 수교, 다른 하나는 노태우 대통령의 방중 성사였다. 노 대통령이 직접 수교 성명을 발표하면 더욱 좋은 일이었다. 수교하던 해인 92년은 사실상 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에 해당하는 해이다. 그해 12월 대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웠다. 이걸 인정 안 하면 더는 대화가 없다는 식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해 수교를 성사시키고 노 대통령의 방중까지 이뤄야 하는 우리 외교는 중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첫 번째 수교국인 대만을 상대적으로 배려하지 못했다.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 사실을 북한에 7월 15일 통보했지만, 우리는 단교 사흘 전인 8월 21일에야 그 사실을 대만에 공식 통보했다.

한국은 30년 전 중국과의 수교 교섭 당시 ‘조기 수교’에 집착하느라 대만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한국은 30년 전 중국과의 수교 교섭 당시 ‘조기 수교’에 집착하느라 대만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앙포토]

그동안 중국과의 수교 여부를 집요하게 문의하는 대만에 “새 친구를 사귀어도 옛 친구는 버리지 않는다” “한중 수교에 관한 시간표는 없다”는 등의 애매한 말로 둘러대 이후 대만으로부터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렸다(忘恩負義)”는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중국과의 조기 수교에 집착하느라 대만에 대한 배려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였다.
한중 간 첫 무역 갈등인 2000년의 마늘 분쟁 사건 때도 그랬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중국으로 떠나는 우리 협상팀에 “당당하게 빨리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당당한’이라는 수식어가 있었지만, 방점은 ‘빨리’에 찍혔고, 당시 중국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돼 한국 협상단의 백기투항이란 말까지 나왔다.
여기서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은 중국과의 협상에선 되도록 마감 시한을 갖지 않는 게 좋다는 점이다. 어느 대통령의 임기 내 무엇을 이루려고 서두르다 보면 중국에 많은 양보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중국은 특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가 아닌가. 언제나 시간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서울 명동에 자리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정문 앞 모습.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기 이전에는 대만의 중화민국대사관으로 쓰였다. [뉴스1]

서울 명동에 자리한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정문 앞 모습.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기 이전에는 대만의 중화민국대사관으로 쓰였다. [뉴스1]

두 번째 교훈은 중국에 한국은 밀면 밀린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점이다. 중국은 수교를 위한 한국과의 첫 번째 공식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중국에 대한 기본 입장과 태도를 단기간에 경험하며 한국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나름의 접근법을 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수교 교섭 2차 예비회담 때 ‘하나의 중국’ 원칙에 관한 중국 측 입장을 거의 다 수용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의 주요 함의인 정부 승인, 대사관 철수, 외교재산 이전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이 2차 예비회담 이후 한국의 마지막 패를 다 읽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이후 마늘 파동이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 등 분쟁이 생길 때마다 중국이 보이는 강경한 태도의 배경에 혹시 과거 수교 당시 한국은 밀면 밀린다는 인식을 갖게 됐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지 30주년 되는 날이다. 동시에 대만과 단교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지 30주년 되는 날이다. 동시에 대만과 단교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세 번째는 우리 외교의 고질적인 문제로서 단기 성과에 대한 집착이다. 매 정권마다 단기적 성과를 내기 위해 외교 당국이 매달리면서 대국 및 북한 중심의 외교를 하다 보니, 여타 국가들에 대한 배려와 투자를 소홀히 하게 된다.
특히 그때그때 정치권의 단기적인 계산에 영합해 불과 몇 년 전의 관계나 약속을 저버리고 대외 관계를 처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익을 해치고 국위를 손상하는 일이라고 조 전 대사는 말한다. 수교 30주년을 축하하되 단교 30주년의 상처를 돌아보며 과거의 잘잘못을 되새겨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4일은 중국과 수교 30주년이자 대만과의 단교 30주년 #중국과 시한 내 ‘조기 수교’ 목표 집착해 대만 배려 소홀 #중국에 한국은 밀면 밀린다 인식 심어주지 않았나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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