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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병주의 시선

‘검수완박’(검찰청법)과 ‘검수완복’(시행령)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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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문병주 논설위원

‘신의 한 수’인가 ‘꼼수’인가. 다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이 불거졌다. 다음달 10일 시행되는 검수완박법(검찰청법ㆍ형사소송법 개정안)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시행령 개정이라는 맞불을 놓으면서다. 검수완복(검찰 수사권 완전 복원)을 노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검사의 수사개시 규정과 관련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2월 여야와 검찰ㆍ경찰은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대형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제4조 1항)에 대해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할 수 있게 한 검찰청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민주당이 단독으로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열어 ‘부패범죄와 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했다.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비껴가기 위해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비교섭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된 일이 발생했다. 꼼수 탈당 논란은 민 의원의 민주당 복당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이재명 의원)는 복당 지지 발언도 나온다.

검찰 수사권, 시행령으로 복원

법안 개정을 위해 형식적 절차를 다 지켰다 주장하지만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애초 ‘부패범죄, 경제범죄 중(中)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제한했던 검사의 수사권한은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등(等)’으로 바뀌었다. 박주민ㆍ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나서서 확대 해석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경제ㆍ부패라고 법률에 명시해놓은 상태에서, 하위법인 시행령이 이를 거스르고 수사 범위를 늘릴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나오면서 수정이 이뤄졌다. 당시 본회의장에선 “검사가 부패범죄와 경제범죄에 한하여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법의 취지에는 다름이 없다”는 민주당 의원의 취지 설명이 있었다.

그러나 ‘법 기술자’들은 과감히 틈새를 노렸다. 한동훈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 회견을 열고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예고하고 설명했다.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를 재분류해 검찰 수사 범위를 2020년 개정법률 상태로 돌렸다. 공직자의 허위공문서 작성이나 직권 남용, 선거 범죄에 해당하는 매수 및 이해 유도, 기부 행위를 부패 범죄로 규정해 검찰 수사가 가능하게 했다. 마약 유통이나 방위 산업 관련 범죄도 경제 범죄에 포함시켰다. 한 장관은 “개정안 내 ‘등’의 취지가 대통령령에 범죄 유형을 구체화할 권한을 준 것이 명확하다”며 “시행령 개정은 법률이 위임한 범위 안에서 이뤄진 것이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국회 입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는 ‘시행령 쿠데타’이자 국회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법문을 해석한 ‘법 기술자’들의 꼼수”(이수진 원내대변인)라는 반발이 나왔다.

헌재 심판 미루는 새 논란 커져

오늘(22일) 법사위에 출석할 예정인 한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은 ‘등’ 이라는 한 글자를 두고 설전을 예고했다. 어학사전식 해석 논란도 있다. 국어사전들은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두 개 이상의 대상을 열거한 다음에 쓰여, 대상을 그것만으로 한정함을 나타내는 말’로 설명한다. 법무부는 전자의 해석에 근거해 이번 시행령을 마련했다. 2020년 개정법 역시 6대 중요범죄 뒤에 ‘등’이란 글자가 있었지만 이를 두고 더 많은 범죄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는 식의 논란은 없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의겸, 기동민, 박범계,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의겸, 기동민, 박범계,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스1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헌법재판소의 책임도 크다.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된 건이라서 헌재에서 빨리 결정을 해줘야 하는데 답답하다”(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 교수)거나 “법률에 문제가 있더라도 헌재의 결정이 필요하다”(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는 법무부가 국회를 상대로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행위에 대해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 공개 변론을 법 시행 17일이 지나는 다음달 27일에야 연다. 법무부가 시행령을 서둘러 만든 이유 중 하나가 헌재의 지체된 논의다.

대법원이 위법 여부 결론 가능성  

헌재가 국회의 손을 들어 검수완박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법무부는 시행령을 강행했을 것이다. 새 시행령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헌법은 ‘명령ㆍ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제107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새 시행령에 근거해 검찰 수사를 받은 피의자가 법원에 위법 여부 판단을 요청할 수 있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국회에서 “결국은 재판에서 문제 될 가능성이 있다고는 본다”며 “그 사건 담당 재판부가 당사자의 주장과 심리를 거쳐서 판단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꼼수 법’에 대항하려 만든 시행령이 ‘신의 한 수’도 ‘꼼수’도 아닌 ‘패착’으로 결론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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