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한국 제외’ 유감스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참모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참모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받을 것 다 받고 한국 기업 차별

정부 차원에서 불공정 강력 대응해야

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한국산을 배제하기로 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라 북미에서 조립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 여파로 현대자동차의 5개 전기차 모델은 미국에서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현대차는 올해 1분기 미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이 9%까지 오르며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보조금이 중단되면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지난 10일 미 의회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 등을 고려해 한국산 전기차가 세제 혜택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개정해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협회 측은 “한국에선 올해 상반기 기준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 437억원을 지급했고, 지난 30년간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에 130억 달러(약 17조원)를 투자해 근로자 10만 명 이상을 고용하는 등 미 경제에 기여해 왔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배터리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현재 미 자동차 업체들과 합작해 2025년까지 미국에서 10곳 이상의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 하지만 중국산 부품·소재가 들어가면 보조금에서 역시 차별을 받는다.

사사건건 대립해 온 여야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동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미 정부에 수입 전기차 및 배터리에 대한 세제 지원 차별 금지를 촉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검토하기로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전기차 업체들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회의 우려를 전달했다.

이런 우려가 반영되지 않으면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미 무역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우선 FTA 위반 가능성이 있다. 관세 장벽을 허물고 사실상 내국인 대우를 하는 규정에 위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방한 당시 현대차로부터 14조원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았다. 또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이어 반도체 협의체 ‘칩4’에 한국의 가입을 요청하고 있다.

자국의 국익부터 챙기는 것은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받을 것은 다 받고, 차별하겠다는 미국의 조치는 유감스러울 뿐만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미국 측에 여러 채널로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고 했지만, 범정부 차원에서 보다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투자와 협력에 상응해 미국은 한국에 무엇을 해주고 있는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