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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경율이 고발한다

고공농성이란 돈벌이...'삼성에 승리했다'는 2년전 그날 부끄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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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율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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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의 심각한 수익구조를 보면 노동자의 임금 30% 인상 요구가 얼마나 허황된 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당과 시민단체는 파업을 부추겼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우조선해양의 심각한 수익구조를 보면 노동자의 임금 30% 인상 요구가 얼마나 허황된 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당과 시민단체는 파업을 부추겼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파업투쟁, 화물연대의 하이트진로 본사 점거 농성…. 대규모 노조 파업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힘없는 파업노동자들이 직면한 안타까운 현실과는 별개로 2020년 5월 그날의 찜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많은 이들은 아마 기억도 가물가물하겠지만 노동계로선 '삼성의 사과'라는 "승리"(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 표현)를 얻어냈던 바로 그 사건 말이다. 참여연대 시절 삼성과 날을 세웠던 내 이력 때문인지 노동자 측이 부탁을 해와 삼성과의 협상 막바지에 참여했다. 그들은 승리라고 말했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지금 돌아보니 온갖 의혹을 덮고 침묵을 택한 당시의 선택이 부끄럽다.

삼성에 승리했다고?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1991년 삼성에서 동료 성폭행을 사유(※본인은 삼성의 공작이라고 주장)로 해고당한 노동자 김용희씨는 20여년 동안 복직 투쟁을 벌이다 2019년 서울 강남역 CCTV 철탑 위로 올라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355일만인 2020년 5월 29일 삼성 측이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와 지리한 협상 끝에 '해고 이후 노동운동 과정에서 회사와 갈등을 겪었는데 회사가 아픔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내용의 공개사과문을 발표한 데 따라 농성을 풀었다. 양측은 사과문 이외에 다른 합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당시 김용희씨는 삼성으로부터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상당한 보상금을 받았다. 돈.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명분도 과정도 모두 잘못됐다.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얘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다음날인 2020년 5월 7일 서울 삼성 사옥 인근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이날 이인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삼성과 이 부회장의 결자해지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다음날인 2020년 5월 7일 서울 삼성 사옥 인근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이날 이인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삼성과 이 부회장의 결자해지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당시 김용희씨 본인은 물론 공대위는 "고공농성 투쟁은 김용희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등 크고 작은 파업 때마다 노조 측이 내세우는 명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당시 협상 결과는 이와 판이했다. 당시 농성장에는 김용희씨 외에 또 다른 해고노동자 이재용씨(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동명이인이다)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1997년) 삼성에서 해고당해 함께 복직 투쟁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김용희씨가 철탑 위로 올라가는 걸 말렸지만 강행하자 그 아래서 천막을 치고 동조 농성을 했다. 하지만 협상 타결 한 달여 전에 건강 등 여러 이유로 자진해서 농성을 풀었다.

이재용은 왜 배제했나 

김용희씨가 1년의 고공농성으로 보상금을 받을 때 이재용씨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초기 협상팀원이었던 김진철 당시 고공농성 개신교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 본인 페이스북에 올렸듯이, 김용희씨가 삼성 보상금을 이재용씨와 나누기를 원치 않았던 게 주된 이유가 아닌가 싶다. 당초 삼성은 김용희씨와 이재용씨에게 각각 4억씩(치료비 등 플러스 알파는 별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재용씨는 김용희씨의 건강을 걱정해 본인 몫 4억원 가운데 2억원을 김용희씨에게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하지만 김용희씨, 그리고 이후 새로 꾸려진 협상팀에서는 이재용씨를 배제한 채 당초 삼성이 이재용씨 몫으로 책정해놓은 보상금까지 독식했다. 농성에 우호적인 인사와 단체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공대위는 '삼성이 이재용씨 건을 협상의제에서 제외하려 했다'며 삼성에 뒤집어씌우는 입장문까지 냈다. 또 협상 마무리 단계에선 당시 한 교섭위원이 이재용씨에게 전화해 "이 돈은 삼성과의 싸움에 대한 보상이 아닌 고공농성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말해 결국 그로부터 "고공농성을 하지 않은 나는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끌어냈다. 모든 노동자를 위한 농성이라고 여론전을 펼쳤지만 실상은 협상 과정은 물론 보상금 배분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다른 노동자를 완전히 배제했다.

사실 타결 이전부터 협상에 참여하면서 뒤늦게 챙겨본 자료만으로도 여러 의문이 있었다. 석연치 않은 김용희씨의 과거 행적이야 그렇다 치고, 20년 넘는 복직 투쟁 과정에서 이미 삼성으로부터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의혹도 있었다. 협상팀에 이런 걱정을 전달했다. 하지만 "(삼성과의 싸움이라는) 대의 앞에서 그게 무슨 대수냐"는 답이 돌아왔다. 이재용씨를 배제한 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김용희씨 개인으로부터 교섭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라는 변명 이외엔 아무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놓고는 혹시라도 향후 보상금을 나눠 갖게 될 경우 내야 할 세금 상담을 회계사인 내게 해오기도 했다. 분명 문제였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 역시 침묵했다. 노동자는 선이고, 기업은 악이라는 프레임을 건드릴 수는 없으니까.

대의를 위해 침묵 강요 

국내 최대 기업을 상대로 한 의로운 전쟁이라는 슬로건 이면에 이처럼 의문스럽고 불투명한 어떤 진실이 있다는 걸 누가 알 수 있을까. 아니, 사적 이익을 취하든 아니든 투쟁에 참여한 이들이 '더 큰 무엇'이라는 허상을 내세워 모두 약속이나 한듯 침묵한 결과 이런 더러운 진실이 수면 아래로 침몰했다는 걸 어떤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점거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찾아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7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점거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1도크를 찾아 유최안 대우조선 하청지회 부지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2년도 더 지난 이 얘기가 떠오른 건 51일 만에 끝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때문이다. 22개 하청업체 노동자가 소속된 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지회는 30% 이상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하청노동자 부지부장을 맡은 한 하청노동자는 한 달 넘게 가로세로 1m 철장에 스스로를 가두고 파업에 동참했다. 지난 2020년 김용희씨의 고공농성 때처럼 정당과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 숱한 세력이 이 모습을 절박함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파업을 지지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4.5% 인상과 파업 피해와 관련한 민·형사상 면책은 추후 협의하는 선에서 파업은 마무리됐다. 사안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봤다면 애초에 30% 인상안이라는 게 실현불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청지회 소속 노동자 90%가 찬성해 4.5% 인상안이 받아들여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를 위한 파업인가 

그래서 묻고 싶다. 역대급 호황이라는 일부 주장과 달리 산업은행의 자금줄 없이는 연명이 어려운 회사의 현실, 그리고 하청지회 소속 노동자 400여 명을 제외한 1만 명의 노동자는 이미 4% 안팎의 임금인상을 확정한 상태에서 평소 파업을 지지하든 아니든 이건 불가능한 요구사항이라는 걸 노동자들에게 조언해준다는 여러 분야 인사들은 몰랐을까? 오해 없기를 바란다. 다시 적지만, 나는 앞서 철장에 자신을 가둔 그 하청노동자가 주장한 '20년 차 용접공 시급 1만원'에 분노한다. 하지만 과연 정당과 시민단체가 이런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파업에 동조한 건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반론보도]해고노동자 김용희 씨 관련

본 신문은 8월 2일 및 9일 3일자 오피니언면 '김경율이 고발한다''김경율의 댓글 읽어드립니다' 코너에서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여성 직원을 성추행하여 해고됐고, 지난 2020년 고공농성 과정에서 다른 해고노동자의 보상금을 독식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용희 씨는 " 여직원을 성추행하지 않았고, 관련하여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사실도 전혀 없다" " 삼성의 보상금을 부당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 일부 및 정신적 위자료이며, 다른 해고노동자의 보상금을 빼앗은 것이 아니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