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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끌며 표 우려먹을 심보"…심상찮은 분당·일산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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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중앙포토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 일대 아파트 밀집지역 전경. 중앙포토

정부의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 발표가 뒤로 밀리자 입주 30년을 맞은 분당, 일산 등 주민들의 불만이 끓어 오르고 있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납득할 조치가 없으면 1기 신도시가 연대해 집회도 불사할 계획”이라며 반발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6일 2024년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날 발표한 ‘5년간 270만 가구 공급’이란 목표에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따른 물량을 포함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정대로 재정비 계획을 2024년까지 수립하더라도 윤석열 정부 마지막 해인 2027년까지 주택 건설 인허가 등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이번 공급 계획에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따라 발생할 공급 물량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김동연 경기지사가 “사실상 공약 파기”라며 반발여론에 올라타면서 주민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한다고 해 기대했는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등 5개 1기 신도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입주 시기가 가장 빨랐던(1991년) 경기도 성남 분당신도시 주민들의 불만은 특히 격렬하다. 분당구 서현동 주민 이모(61)씨는 21일 “1995년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주거 환경은 간간이 내부 수리를 하는 정도로는 개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졌다”며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답보 상태가 길어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분당신도시 시범단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991년 9월 30일 한 입주자 가족들이 이사짐을 옮기고 있다. 중앙포토

분당신도시 시범단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991년 9월 30일 한 입주자 가족들이 이사짐을 옮기고 있다. 중앙포토

분당구 이매동에 사는 김모(37)씨는 “1993년에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데 건물 구조상 최신식 와이파이 설치도 안 되고 주차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분당구 야탑동 분당신도시에 사는 김모(33)씨는 “선거 땐 표를 얻으려고 공약을 내세우다가 당선 뒤엔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며 “임기 내 실행이 어려운 2년 뒤에 계획을 낸다는 건 결국 공약 철회와 같지 않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당구 금곡동에 20년 넘게 거주한 김모(60·여)씨는 “임기 내 실행은 포기하면서 총선용 공약으로 재탕하겠다는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모습. 사진 고양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모습. 사진 고양시

고양시 아파트대표회의 “납득할 대책 마련” 촉구  

분당신도시 입주 개시 1년 뒤인 1992년부터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 주민들의 정서도 다르지 않았다. 채수천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1기 신도시 재정비 계획을 2024년 중 수립하겠다는 건 분명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과 어긋나는 내용”이라며 “정부는 계획 발표 시기를 늦춘 이유를 조속히 설명하고, 계획 마련 전에 무슨 노력을 할지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양시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는 이번 결정에 대한 정부의 설명과 보완 대책이 미흡할 경우 다른 1기 신도시 주민들과 연대해 서명운동 등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산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1992년 8월 30일부터 시작됐다. 중앙포토

일산신도시 아파트 입주가 1992년 8월 30일부터 시작됐다. 중앙포토

1기 신도시 지역 맘 카페 등에서 감지되는 온라인 여론도 심상찮다. 지난 19일 분당 주민이 모이는 한 맘 카페에는 “‘안 되겠다. 지지율’ 이거라도 던져보자는 심보” “이번에도 ‘어떻게’가 빠져있는데 혼란스럽다” “무정부 상태” “시간 끌면서 표 우려먹다가 아니면 말고 식” 등의 글들이 쇄도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사실상의 대선 공약 파기”  

반발 여론이 비등하자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경기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에나 수립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선 공약 파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와 별개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해 경기도 차원에서 먼저 1기 신도시 노후화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TF를 만들기로 했다”며 “용적률 등 건축규제를 풀고, 꼭 필요한 기반 시설 확충을 지원하기 위해 국회와 협력해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주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주민 83.8%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사업방식으로는 재건축(48.4%)과 리모델링(35.1%)의 선호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1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1기 신도시 관련 글. SNS 캡처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1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1기 신도시 관련 글. SNS 캡처

서진형(경인여대 교수)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 문제는 대선 공약 파기라는 시선도 부담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적 사안”이라며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순차적인 재정비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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