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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양산 내려가 文 예방하고 고충 들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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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경호처가 21일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의 경호구역을 확장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진 사저를 둘러싼 울타리까지가 경호구역이었는데, 이를 울타리에서 최대 300m까지로 넓힌 것이다.

경호처는 이날 오전 출입기자단에 이를 알리면서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의 집회 시위 과정에서 모의 권총, 커터칼 등 안전 위해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평산마을 주민들의 고통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경호처는 경호구역 확대와 함께 경호구역 내 검문검색과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교통통제, 안전조치 등도 강화할 계획이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이번 조치는 오는 22일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이번 조치는 윤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만찬의 성과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21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김진표 의장으로부터 관련 건의를 받고 경호 강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또 윤 대통령은 김종철 경호차장에게 직접 양산으로 내려가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집회·시위 관련 고충을 청취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이를 제안한 김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 간담회에서 만찬 당시 오갔던 내용 일부를 전했다. 만찬에서 김 의장은 “집시법상 1인 시위는 금지할 근거가 없는데, 전직 대통령의 경호구역은 현재 100m로 너무 가깝다”며 “주변 사람들이 소음으로 피해를 볼 뿐 아니라,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호구역 확대를 제안했다. 김 의장은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경호처장에게 현장 상황 파악을 지시해 대책을 세워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며 “윤 대통령께서 바로 현지에 경호처 차장을 파견해 조사하고 오늘 보도자료 형태로 발표한 걸로 안다. 그런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양산 사저 앞 시위는 지난 5월 10일 퇴임한 문 전 대통령이 양산으로 내려가면서 시작됐다. 문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확성기와 스피커, 꽹과리 등을 동원해 장송곡을 틀거나 욕설과 모욕, 협박이 뒤섞인 시위와 집회를 했다. 밤낮없이 계속되는 집회에 마을 주민 10여명이 불면증과 환청 등을 호소해 병원 정신과 등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통령실은 5월 말~6월 초 여러 경로를 통해 "시위를 자제해 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시위 주도 세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도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오히려 메시지는 논란을 키웠다. 지난 6월 7일 출근길에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시위 자제를 요청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반대로 '법대로'에 기운 이 메시지에 야당은 “시위를 부추긴다”(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고 강하게 반발했다. 윤석열 대선 캠프 전략기획실장을 지낸 금태섭 의원도 당시 “대통령은 법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고 정치를 하는 자리”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욕설 시위를 벌이는 보수 유튜버 안정권씨. JTBC 캡처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욕설 시위를 벌이는 보수 유튜버 안정권씨. JTBC 캡처

이후에도 관련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지난달에는 극우 유튜버로 시위를 주도해온 안정권씨의 누나가 대통령실 행정 요원으로 근무한 사실이 드러나 야당이 공세를 편 데 이어, 최근엔 안씨가 김건희 여사의 추천으로 지난 5월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번 결정엔 양산 사저 집회의 폭력성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8일엔 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위협성 발언을 하고 사저 관계자에게 흉기를 꺼낸 60대가 경찰에 구속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법을 위반해 전직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며 “경호처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인식이 두 달여 만에 변한 게 아니냐’고 묻자 “윤 대통령이 법치 기조에서 국민 통합을 위한 협치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그간 사저 주변에서 협박과 폭력 같은 위해 요소들이 많았던 상황에서 경호처의 이런 조치는 불가피했다”면서 “향후 경호 구역 확대에 따른 엄정한 법 집행과 관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 대통령과 평산마을 주민의 고통, 안전을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합당한 조치”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 대변인은 "윤 대통령과 김 의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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