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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로스쿨 진학하는데"…존폐 갈림길 선 외고 운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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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만 5세 입학’ 정책에 책임지고 물러났지만 외국어고 폐지를 둘러싼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교육부는 외고는 폐지 또는 전환을 검토한다면서 자사고‧국제고에 대해서는 존치를 암시해 외고 학부모들의 반발이 커졌다.

“대부분 로스쿨 진학”…설립 취지 무색해진 외고

지난 1일 교육부는 “외고가 미래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어 폐지 또는 외국어 교과 특성화 학교 등으로 전환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외고가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와 달리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2018년 5년간 특수목적고등학교 설립목적에 따른 대학진학률이 과학고와 영재학교는 각각 91%, 90%에 달한 데 비해 외국어고는 36%에 불과했다.

일부 졸업생들도 외고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우려했다. 한 국제중‧외고 졸업생은 “학생들이 전공언어보다는 수능 공부에 더 집중했다”며 “외국어에 대한 관심보다는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해 외고에 입학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졸업생은 “결국 외고 동창들 대부분이 로스쿨에 진학했다. 오히려 국제중 동창들은 이공계 분야로 유학을 간 친구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인재 양성 위해 필요” 반론도

반면 외고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외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향근 전국외국어고등학교장협의회 회장(안양외고 교장)은 “학생들이 언어를 도구로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도록 하는 게 외고의 역할”이라며 “일반고보다 수업시수가 많아 외국어를 좀 더 전문적으로 교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외고 학부모는 “자녀가 외고에 재학 중이지만 인공지능(AI)에도 관심이 많다. 학교에서 배운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어학이 아닌 다른 전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비 부담 늘고 경쟁률은 떨어져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의 외고 폐지 정책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전국외고학부모연합회 회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정부의 외고 폐지 정책 즉각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앞서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외고가 학교 간 서열을 조장하고 사교육 부담을 키운다는 이유로 일반고 전환을 추진했다. 2020년 서울교대 연구진의 ‘교육체제 발전을 위한 빅데이터 분석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가 특목고에 진학할 확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서 외고와 일반고의 학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18년 기준 전국 사립외고 16개교의 학부모 부담금은 평균 1154만 원에 달했다. 지난해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외고‧국제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8만6000원으로 일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학생의 평균 사교육비 37만7000원보다 약 1.5배 높았다.

학령인구 급감과 이공계 선호 현상으로 외고가 자연 폐지나 전환 수순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22학년도 전국 30개 외고의 경쟁률은 0.98 대 1에 그쳤다. 이 중 17개 학교는 정원보다 지원자가 적어 미달했다. 올해 대원외고에 이어 대일외고와 한영외고도 내년부터 영어과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했다.

30년만 폐지 위기…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특권학교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육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특권학교 폐지를 촉구하는 전국교육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4월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외고 폐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5일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외국어 교과 특성화 학교 등 미래사회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발전적인 방향에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교육부는 외고와 자사고의 존치 여부를 담은 고교체제 개편 방안을 12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외고 폐지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고교 과정 전반에 걸쳐 외국어 교육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외고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이 됐다”며 “과학고‧영재학교처럼 해당 전공계열 입학을 원칙으로 하면 누가 외고에 가겠나”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외국어 교육은 별도의 고교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이 원하는 외국어 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연구소장은 “만 5세 취학은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고교 서열화 해소에 대한 공감대는 이미 상당하다”며 “앞으로 여론을 수렴해야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 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에 현 정부가 반대로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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