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북쪽 해상에 이상하게 생긴 선박 한 척이 발견됐다. 가로 12m·세로 6m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의 배에는 빈 그물과 닻이 잔뜩 실려 있었고 사람은 타고 있지 않았다. 인천 연안과 한강하구 일대 어부들이 고기 잡을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소형 어선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었다.
바지선, 고양 행주나루서 폭우로 떠내려가
교동도에 사는 주민 A씨는 이를 보고 “북한서 배가 떠내려온 것 같다”며 해경에 신고했다. 그는 평소 신고 정신이 투철했던 주민이다. 앞서 인천해경·인천강화경찰서·해병대 등은 교동도와 북한 사이 남북 중립수역에 표류하고 있던 이 빈 바지선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정황상 폭우로 한강에서 유실된 배로 추정하는 가운데 접근이 불가능한 중립수역에 배가 있던 터라 직접 조사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해경 등은 바지선이 우리 측 수역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지역 어민들과 교동도 남산 선착장으로 배를 예인해 접안했다. 조사 결과 이 배는 대공 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선박이 아닌 한강에서 폭우에 떠내려온 어업용 바지선으로 추정됐다.
수소문에 나선 경기도 고양시 어민들에 의해 이 선박은 행주어촌계 소속 한 어민의 바지선으로 확인됐다. 이 바지선은 어민들의 그물과 닻 등을 물 위에서 보관하거나 강과 뭍으로 실어나르는 용도의 선박이었다. 발견 이틀 전인 이달 9일 폭우로 한강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정박지인 경기도 고양시 행주나루에서 하류로 떠내려간 것이었다.
이틀 후 100여 ㎞ 하류 강화 교동도 해상서 발견
행주어촌계는 바지선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뿐, 배를 원래 자리로 가져갈 방법이 신통치 않아 고민이다. 심화식(행주어촌계 어민) 한강살리기비상대책위원장은 19일 “바지선을 떠내려간 뱃길을 거슬러 되가져올 수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남북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인 남북 공동이용수역이라 가져올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바지선이 떠내려온 100여 ㎞에 달하는 구간 중 절반 이상 구간은 선박이 다닐 수 없는 구역이다. 남북 공동이용수역인 남측 김포반도 동북쪽 끝점부터 교동도 서남쪽 끝점까지, 북측 개성시 판문군 임한리부터 황해남도 연안군 해남리까지 길이 70km, 면적 280㎢ 수역이다. 6·25 전쟁 이후 현재 남북 모두 어로 활동은 물론 선박 통과가 불가한 지역이다. 이 지역 한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강 가운데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비무장지대(DMZ)다.
자유 항행 안되는 남북 중립수역, 뱃길 가로막아
앞서 남북은 2007년 10·4 선언에서 한강하구의 공동이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데 합의했고 2018년 9월 판문점 선언군사 분야 이행 합의에 따라 그해 11∼12월 한강하구 수로 공동조사에 나서기도 했지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와 관련 어선 33척에 50여 명의 어민이 소속된 행주어촌계는 “2017년 9·19 군사합의에 규정된 공동이용수역이 말 그대로 평화적으로 남북이 공동 이용할 수 있는 수역이 돼 자유 항행이 이뤄진다면 한강을 통해 바지선을 쉽게 되가져올 수 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행주어촌계는 이에 따라 우회 뱃길을 통해 이 바지선을 행주나루로 끌고 오기로 했다. 수백만 원을 들여 교동도에서 5∼6t짜리 어선을 빌린 다음 경인운하(아라뱃길)로 바지선을 되가져온다는 계획이다. 바지선은 가로세로 폭이 너무 길어 차량으로 운반이 불가능하다.
조선 시대엔 한강하구 뱃길로 곡식을 운반하는 선박인 세곡선이 전라남도 나주에서 출발해 강화와 김포·고양을 거쳐 한양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한강 어민, 시조 지어 끊어진 한강 뱃길 한탄
한편 어민이면서 시조 시인이기도 한 심화식씨는 이번 일을 놓고 시조 한 수를 지어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한강 뱃길’
호우로 떠내려간 한강빠지
강화섬 교동에서 구조됐네
남과북 막힌강을 우회하여
운하와 갑문열고 끌어오네
세곡선 밀물썰물 오고가던
끊어진 행주나루 서해바다
언제쯤 이어질까 하염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