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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 통증에 사망까지…천적도 없다, 中서 몰려오는 그놈 공포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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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전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 이곳은 파도가 잔잔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인기가 있다. 그런데 갑자기 해변 쓰레기를 정리하던 미화원 3명이 큰 소리로 “해파리! 그 앞쪽에!”라고 외친 뒤 뛰기 시작했다.

이들이 바닷물에 떠 있는 것을 본 것은 길이 1m가 넘어 보이는 대형 노무라입깃해파리. 성인 남성이 맨손으로 끌어내기 어려워 갈고리로 토막을 낸 후에야 모래밭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이를 처리하던 미화원은 “최근 해파리 출현이 부쩍 잦다. 수거된 해파리는 마대에 담거나, 백사장에 묻어버린다”고 했다.

지난 18일 부산 일광해수욕장에서 미화원들이 수거한 해파리 잔해를 처리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지난 18일 부산 일광해수욕장에서 미화원들이 수거한 해파리 잔해를 처리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2m 해파리 사람 쏘고 그물 찢고

해수욕장에 해파리가 늘었다는 현장 미화원 증언은 통계로 입증된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부산 해수욕장 7곳에서 발생한 해파리 쏘임 사고는 443건이다. 5년 전(129건)보다 4배 가까이 는 숫자다. 쏘임 사고는 지난 4년간 매년 100건대를 유지하다 올해 갑자기 400건대로 뛰었다.

해파리는 자극을 받으면 독성이 있는 쐐기세포를 쏘는데, 이 독성 물질에 접촉하면 대개 할퀴는 듯한 통증, 두드러기 반응이 나타난다. 심하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실제 2012년 8월 인천 을왕리해수욕장에서 8세 여자아이가 노무라입깃해파리에 쏘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8일 부산 임랑해수욕장에서 소방대원이 해수욕장으로 유입된 대형 노무라입깃해파리를 걷어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지난 8일 부산 임랑해수욕장에서 소방대원이 해수욕장으로 유입된 대형 노무라입깃해파리를 걷어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입욕객 안전을 위해 소방대원들이 긴급 포획한 해파리 개체 수도 5년 전 645마리에서 올해 1267마리로 2배가량 급증했다. 일광해수욕장에서 만난 소방대원은 “해파리 포획에 나선 대원이 쏘임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잦다. 수상구조대 사무실에 고무장화와 앞치마 등 해파리 수거를 위한 장비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어민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국립과학수산원에 따르면 경북과 전남 연안에서는 독성을 지닌 보름달물해파리가, 경북과 강원에서는 그보다 독성이 강한 노무라입깃해파리가 극성을 부린다. 노무라입깃해파리는 최대 길이 2m, 무게 150㎏까지 자란다. 이들 해파리는 조업에 나선 어민 그물에 무더기로 걸려든다. 해파리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는 피해가 발생하기 일쑤라고 어민들은 전한다. 기장어촌계 관계자는 “다행히 그물이 상하지 않더라도 어획물과 함께 섞여든 해파리를 분류하는 데 평소보다 2배 이상 시간이 더 든다. 해파리에 쏘여 비늘이 상한 물고기는 상품가치가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경남 고성군 앞바다에서 선박 자망어업으로 전어 등을 잡는 이모씨는 "요즘 전어 대신 해파리만 잡고 있다"며 "남해안은 해파리와 전쟁 중"이라고 했다. 일부 어민은 아예 조업을 포기하고 있다.

지난 18일 부산 일광해수욕장에서 미화원들이 수거한 해파리 잔해. 김민주 기자

지난 18일 부산 일광해수욕장에서 미화원들이 수거한 해파리 잔해. 김민주 기자

중국서 제주 거쳐 유입, 천적도 없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11년부터 우리나라 바다로 유입되는 해파리를 모니터링해왔다. 매년 5월 동중국해에서 12일간 해파리 발생량을 살핀 뒤 7월 제주 일대에서 같은 기간 조사를 통해 한국으로 흘러들어올 해파리의 양을 예측한다. 동중국해는 특히 한국 해안에서 쏘임 사고 등 주범이 되는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4~5월 발생해 여름철 한국 해변까지 진출한다. 해파리 발생량은 해당 해역의 수온과 염분, 먹이 상태 등에 따라 결정된다. 모니터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3년에 유입량이 가장 많았고, 2019년 이후로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파리 관련 연구를 담당하는 김경연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해양생물학 박사)는 “동중국해 해파리는 조류를 타고 제주를 지난 뒤 한반도 연안으로 왔다가 다시 동해를 통해 빠져나간다”며 “개체 수 증가 원인은 수온과 염분 등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해파리 발생과 이동은 자연 현상이고, 바다에 ‘약물 처리’ 등을 통해 이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사는 이어 “일반적으로 거북이 등이 해파리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먹이가 풍부하면 굳이 해파리는 먹지 않는 경향도 있다"며 "결론적으로 뚜렷한 천적은 없다”라고 했다.

지난 5월 국립수산과학원의 동중국해 해파리 조사에서 포획된 해파리가 갑판을 가득 메웠다.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지난 5월 국립수산과학원의 동중국해 해파리 조사에서 포획된 해파리가 갑판을 가득 메웠다. 사진 국립수산과학원

해파리 발생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강화되고 있다. 2019년 도입된 ‘해파리 신고웹’(https://www.nifs.go.kr/m_jelly/index.do)은 누구나 해파리 사진을 찍어 실시간 올릴 수 있도록 구성됐다. 신고 건수가 첫해 60건에서 2020년 660건, 2021년 1523건으로 급증했다. 김 연구사는 “국립수산과학원은 이들 신고를 통해 해파리의 발생과 분포를 인지하고, 입욕객 대피 등 필요한 경보 조치를 빠르게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는 ‘해파리 모니터링 요원’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해파리에 관심 있는 국민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신고가 급증한 것은 신고자에게 답례품으로 ‘해파리 무드등(해파리 모양 조명등)’을 준 게 영향을 줬다고 국립수산과학원측은 설명했다. 2020년 제주 신혼여행을 갔다가 해파리에 쏘인 한 신혼부부가 신고 웹에 해파리 사진을 찍어 보냈다가 해파리 무드등을 받은 사연이 온라인에 퍼졌다. 김 연구사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자 무드등을 따로 살 수 있는지 수과원에 연락이 올 정도였다”고 했다. 이듬해 신고 웹에 사진을 보낸 150명에게 해파리 무드등을 감사 표시로 줬다. 올해도 해파리 출몰이 잦은 7~8월에 신고한 400명(매달 200명)에게 선착순으로 무드등을 주고 있다.

현장에선 “차단막 효과적” 호평도

해파리 차단 장치도 눈길을 끈다. 매년 개장 시기 해수욕장에서 근무하는 현장 소방대원들 사이에서는 수중에 해파리 차단막을 설치한다. 해운대구는 매년 6월 해운대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 해변에서 약 100m 떨어진 수중에 촘촘한 그물 형태로 된 차단막을 깐다. 이 차단막은 1.5㎞에 이르는 해운대해수욕장 전체 해변에 해파리 유입을 막는 역할을 한다. 해파리 퇴치 전용 선박도 수시로 드나들며 차단막 안쪽으로 침투한 해파리를 걷어낸다.

지난 5년간 해운대·광안리·일광해수욕장에서 개장 기간 수상구조대로 활동한 강현진 부산 북부소방서 부대장은 “현장 근무를 통해 차단막 효과가 크다는 걸 체감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해파리가 입욕 구간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드물고, 혹시 발견되더라도 크기가 작은 해파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차단막 설치가 다른 해수욕장으로 확대되면 개장 기간 해파리 쏘임 사고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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