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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우리 국체인 핵은 경제협력 같은 물건짝과 흥정 안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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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호 04면

북 ‘담대한 구상’ 전면 거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코로나 방역에 투입된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코로나 방역에 투입된 군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이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북한이 19일 전면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면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날 직접 담화를 발표한 데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직함 없이 실명 거론하며 맹비난했다는 점에서 담대한 구상은 물론 향후 남북관계 개선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 부부장이 이날 ‘비핵화’ 의제는 남북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 부부장은 “가장 역스러운 것은 우리더러 격에 맞지도 않고 주제넘게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무슨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줄줄 읽어댄 것”이라며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란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상에는 흥정할 게 따로 있는 법”이라며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 협력 같은 물건짝과 바꿔보겠다는 발상을 보니 정말 천진스럽다는 것을 느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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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부부장이) 북핵은 남북이 아닌 북·미 사이의 협상 의제라는 설정을 거칠게 재확인한 것”이라며 “담대한 구상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구상 자체의 근본적인 전제를 거부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윤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6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측을 상대로 예고한 ‘대적 투쟁’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란 해석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즉각 입장문을 발표하며 응수한 것 외엔 내부적으로 동요하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예상된 반응”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의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합훈련 등 한·미동맹 강화 움직임이 활발한 상황에서 당장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김 부부장이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원”이라고 말한 부분에는 주목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담대한 구상을 구체화한 데 대해 북한이 곧바로 반응한 것 자체가 무관심이 아닌 관심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관건은 역시 핵 관련 이슈다. 김 부부장은 ‘국체’라는 표현까지 쓰며 ‘신성불가침’의 영역임을 재천명한 반면 윤석열 정부는 최소한 ‘비핵화 의지’라도 표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핵심 이슈에 대한 입장이 상반된 까닭에 당장 남북 간의 물꼬가 트이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경기도 포천의 한 훈련장에서 한·미 장교가 연합훈련 도중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경기도 포천의 한 훈련장에서 한·미 장교가 연합훈련 도중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정부 고위 당국자는 “담대한 구상은 일차적으로는 북한을 향한 것이지만 더 넓게는 국제사회를 향한 메시지”라며 “대북 정책의 기조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은 북한에 공을 넘긴 것임과 동시에 국제사회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국이 단독 플레이를 하기보다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직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북한을 자극할 필요 없이 담담하게 우리 제안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억제(Deterrence)·단념(Dissuasion)·대화(Dialogue)의 ‘3D’는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선결 조건으로 내건 데 대한 북한의 불만 표출이 미사일 발사 실험 등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여전히 유효한 상태다.

김 부부장이 이날 담화에서 “지난 17일 순항 미사일 발사 장소가 남측이 발표한 남포특별시 온천군이 아니라 평안남도 안주시였다”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한·미 정보 당국의 평가엔 변동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양국이 정보 자산으로 탐지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인 만큼 기존 평가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가운데 박진 외교부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오전 전화 통화를 하고 북한이 ‘담대한 구상’을 거부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두 장관은 굳건한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대화에 복귀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며 “블링컨 장관도 담대한 구상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네드 프라이스

네드 프라이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1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구상이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담대한 구상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 조치들이 있다고 믿는다”며 “북한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환영할 만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과정이 될 것이며, 그 첫째 단계는 북한이 대화와 외교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북한과 접촉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특히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조치로 북한의 광물 자원과 식량을 맞바꾸는 교환 프로그램을 제시한 게 유엔 대북 제재 위반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단정해서 말할 수 없다”며 “광범위하게 볼 때 우리와 국제적인 제재 체제는 식량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재에서) 면제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프로그램이 인도적 범위에서 이뤄질 경우 제재를 피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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