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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육아 부추겨” vs “용돈 더 드리는 셈”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2호 12면

“부모님 용돈 더 드리는 셈이다.” vs “황혼육아 장려 정책 아니냐.”

서울시가 아이를 돌봐주는 조부모 등 친인척에게 돌봄수당을 주기로 하면서 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는 18일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돌봄수당 정책을 내놨다. 0~3세 손주·손녀나 조카를 돌보는 조부모 등 4촌 이내 친인척에게 최대 1년간 돌봄수당으로 매월 30만원을 주는 게 골자다. 아이가 두 명일 땐 월 45만원, 세 명일 땐 월 60만원을 받는다. 중위소득 150% 이하인 경우만 받을 수 있다. 친인척이 서울 외 지역에 살더라도 아이 부모가 서울에 거주하면 지원할 수 있다.

돌봄수당에 찬성하는 부모들은 “이미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더 드리면 좋지 않겠냐”며 반겼다. 맞벌이를 하는 이모(33, 서울 성북구)씨 부부는 평일에는 3살 딸을 차로 30분 거리인 친정집으로 보낸다. 정오쯤 어린이집에서 아이 픽업도 해야 하고, 빈 시간에 아이를 둘 곳도 마땅찮기 때문이다. 이씨는 “늘 죄송한 마음인데, 돈이라도 더 드릴 수 있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살 딸을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김모(35)씨도 “부모님이 없으면 일을 나갈 수가 없다”며 “매달 70만원씩 용돈을 드리고 있는데, 더 드릴 수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부모들은 황혼 육아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8개월 아들을 키우는 박모(32)씨는 “벌써 양가 부모님들이 ‘남에게 맡기느니 우리가 키우고 돈도 받는 게 좋지 않으냐’는 말씀을 하신다”며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보다 허리를 다치셔서 가뜩이나 죄송한 마음인데, 그런 말까지 나오니 거절하고 싶다”고 말했다. 1살 딸이 있는 이모(34)씨는 “굳이 몸도 좋지 않은 어른들께 육아를 부탁드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동 돌봄은 상당 부분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 양육 지원을 받는 사람 중 조부모(83.6%)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특히 자식과 따로 사는 비동거 외조부모(48.2%)가 손주를 돌보는 경우가 많았다. 조부모들은 무거운 손주를 들어 올리다 손목터널증후군, 허리디스크와 같은 ‘손주병’에 시달린다.

현금성 지원보다는 부모가 가족에 기대지 않고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정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막 돌 지난 딸을 키우면서 육아휴직 중인 박모(34)씨는 “일찍 퇴근해서 내 애를 내가 돌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며 “제도적으로 부모들이 유연근무제나 근로시간 단축제를 편히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려우니, 돈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같은 돌봄 관련 기관의 수를 늘리거나, 운영시간을 확대하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가 돌봄 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 것인지, 가족 내 돌봄이 옳은 방식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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